문명특급의 케이팝은 다르다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ize 기자 2020.05.2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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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특급의 케이팝은 다르다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의 3개월 이내 출연자 리스트를 보면 웬만한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이 부럽지 않다. 몬스타엑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오마이걸, 에이프릴, 에이핑크, 김세정, NCT127 등 4, 5월 컴백한 대표적인 아이돌 가수들이 모두 이 곳을 찾았다. 이러한 추세는 코로나19를 피해 잠시 활동을 멈췄던 케이팝신이 본격적으로 재가동 신호를 보낸 5월부터 부쩍 두드러졌다. 이 현상에 대해 문명특급은 최근 국내 굴지의 엔터테인먼트사에서 먼저 출연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뉴스 브리핑 형식으로 전하기도 했다. 어느 정도 검증되었다 생각하지 않으면 섭외 문을 쉽게 열지 않는 대형 엔터테인먼트사들의 특징을 생각하면 현재 문명특급이라는 콘텐츠가 케이팝신 내부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넌지시 짐작해 볼 만 하다.

사실 '문명특급'은 케이팝을 전문으로 다루는 채널은 아니다. 지금은 단독 채널로 독립해 운영 중이지만 시작은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SBS의 유튜브 채널 ‘스브스뉴스’였다. '글로벌 신문물 전파 프로젝트'라는 슬로건을 걸고 매일 같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신문물을 찾아간다는 취지로 시작된 프로그램은 그러나 이제는 케이팝을 다루는 예능 콘텐츠를 이야기하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콘텐츠가 되었다.



차근차근 쌓아 올린 명성의 시작에는 누가 뭐래도 숨어서 듣는 명곡, 일명 ‘숨듣명’이 있었다. 제작진도 지금의 ‘문특’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아이템이라고 이야기할 정도인 이 기획은 케이팝을 오랫동안 지켜봐 온 사람이라면 도무지 몰입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진또배기’였다. 말 그대로 나서서 듣기엔 나의 사회적 지위와 명성이 우려스럽지만 삶이 힘들고 지칠 때면 나도 모르게 몰래 꺼내 듣게 되는 명곡들을 모아 소개한 이 기획을 통해 남녀공학의 ‘삐리뽐 빼리뽐’, 파이브돌스의 ‘이러쿵 저러쿵’, 나르샤의 ‘삐리빠빠’, 제국의 아이들의 ‘마젤토브’가 ‘발굴됐다. 케이팝 역사도 20여 년을 훌쩍 넘긴 지금, 자의로든 타의로든 케이팝의 자장 아래에서 자라난 수 많은 이들이 뜨거운 공감의 환호를 보냈다.

그러나 만일 괴랄하다 못해 괴이하기까지 한 이 노래들을 단지 발굴하는 것에만 그쳤다면 ‘숨듣명’의 명성은 이렇게까지 오래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문명특급은 숨어서 듣게 되는, 숨어서라도 듣고 싶은, 사실은 그래서 성공이었다고는 할 수 없는 케이팝의 그늘에 놓인 이들을 직접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마젤토브’의 작곡·작사가 한상원, 남녀공학의 찬미와 수미, 파이브돌스의 은교가 그렇게 다시 대중을 만났다. 여기에 하나의 만일이 더 더해졌다. 만일 문명특급이 이들을 단순한 소모성 우스갯거리로 다루고 말았다면 이 역시 케이팝을 지금처럼 다루는 ‘문특’의 명성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문명특급의 케이팝은 다르다
이 수 많은 가정을 사전 차단한 건 다름 아닌 진행자 재재다. ‘유재석만큼 준비하고 신동엽처럼 진행한다’는 말이 재재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수식어지만 케이팝을 다루는 데 있어 그는 ‘재재처럼 애정한다’. 매번 가수들에게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아세요?’라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재재의 뛰어난 공감능력은 단순히 멤버 이름이나 생일, 노래 가사나 안무를 외우는 것이 아닌 자신이 다루는 대상을 정말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특유의 ‘바이브’에서 비롯된다. 멀쩡히 진행을 하다가도 출연자와 눈이 맞으면 시도 때도 없이 화음을 맞추는 그 때 노래들, 추억과 흥이 흐르면 그 곳이 SBS 로비든 고척돔이든 상관 없이 터뜨리는 춤과 흥은 케이팝을 도구로 쓰는 사람이 아닌 케이팝과 함께 삶을 영위한 사람만이 낼 수 있는 거대한 에너지다. ‘U Go Girl’을 ‘유교걸’로 치환해 외친 ‘삼강오륜 붕우유신 댓 걸’에도, 조연출 야니와 함께 연습생 컨셉트로 이어가고 있는 유닛 '패트와 매트'의 케미도 모두 이 ‘찐-케이팝’의 자장 아래 있다.

출연한 아이돌의 라인업은 같아도 문명특급이 하면 다르다는 느낌은 바로 이 지점에서 온다. 신문명을 발 빠르게 캐치하던 제작진들의 노하우와 케이팝 좀 들어본 케이팝 선배님의 능숙함이 결합된 문명특급의 케이팝 콘텐츠는 NCT127과 몬스타엑스를 불러 역으로 하는 팬사인회를 기획하고, 문명특급의 또 다른 킬러 콘텐츠 풀피리 선생님의 단독 사전 녹화에 투모로우바이투게더를 동원하며, 에이핑크와 MBTI 유형을 탐색해 새로운 스토리를 만든다. 지금의 ‘1일 3깡’ 붐을 실질적으로 만든 ‘숨듣명 총회’ 컨텐츠가 보여준 문명특급만의 고유한 매력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다루는 대상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과 관심 그리고 최소한의 존중. 가수와 팬들이 출연을 원하는 컨텐츠 만들기가 이렇게 쉽다. 그리고 이렇게 어렵다.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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