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재임 시절 기자간담회에서 검찰조서 증거능력 제한과 관련, "증거 능력에 관해서는 효율성도 중요하지만 적법성도 중요하다. 제도를 바꿀 때 오는 공백이 우려되는 부분이 있어 보완제도도 필요하다"며 우려의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지난 22일 뇌물 등 혐의로 징역4년을 선고받은 이동호 전 고등군사법원장의 판결이 이를 잘 보여준다. 법원은 함께 기소된 뇌물 제공자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지만 검찰조서를 그대로 인정했다. 제공자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얼마를 줬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등 조서 내용을 일부 부인했으나 법원은 당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조서 내용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8월부터 검찰조서의 증거능력이 제한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1심에서 증거로 채택됐던 검찰조서가 증거 목록에도 올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신빙성을 따져볼 수 없게 된다. 이에 따라 오는 8월부터 검찰조서 증거능력이 제한되면 이 전 법원장과 유 전 부시장은 항소심에서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다. 법조계에선 현재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재판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조직범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최근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일명 'n번방' 사건 관련해서도 검찰은 조주빈 일당에게 범죄단체조직죄 적용을 검토 중이다. 범죄단체조직죄는 범죄자들이 단순 공범이 아니라 일정한 보고·명령 체계를 갖추고 조직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입증해야 적용이 가능하다. 검찰은 현재 검거된 피의자들의 진술을 통해 범죄단체를 구성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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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검찰조서 증거능력이 제한되면 이같은 방식으로는 더이상 법원으로부터 범죄단체로 인정받는 게 불가능해진다.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조서 내용을 부인하고 그런 적 없다고 하면 그만기 때문이다. 이 경우 검찰 입장에서는 조직 계보도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대화, 문자메시지 등을 충분히 확보해야 하는데 조직범죄처럼 은밀히 이뤄지는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법조계에서 검찰조서 증거능력 제한 문제가 형사재판에 큰 변화를 가져올 사안인데 너무 성급히 추진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특히 처음에는 유예기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던 법원이 별다른 사정변경 없이 즉시 시행이 가능하다고 입장을 바꾼 것도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검찰조서 증거능력을 대체할 대안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문 전 총장 재임 시절 대검찰청은 검찰조서 증거능력 제한에 대비해 서면조사 방식을 탈피하자는 차원에서 여러가지 시도를 했다. 한 예로 일선청에 영상녹화 등 다양한 조사기법을 이용해 보라고 권고했으나 별다른 성과는 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