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파란 피가 아닌, '피떡'을 쏟아낸다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20.05.28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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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은 월경이다-①]어느 30대 직장인 여성의 일기 "진통제 먹어도, 누워도, 앉아도…아래가 꺼지듯 아프다"

편집자주 밥을 먹으면 똥을 쌉니다. 그게 '섭리'입니다. 그걸 에둘러서 '항문으로부터 기어이 빠져나오는 배설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똥싸는 겁니다.'내일까진 참고, 모레 오후 2시 33분쯤에 똥을 싸야지', 그렇게 안 됩니다. 마려울 때 싸는 겁니다.  월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은 누구나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무척 자연스러운 겁니다. 때가 되면 시작하고, 때가 되면 그만합니다.  원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참거나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그런 겁니다. 그런데 대관절 왜, 월경은 '그날', '마법', '생리'란 말에 숨어야할까요.  똥을 싸려면 휴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화장실엔 늘 휴지가 있습니다. 월경을 하려면 생리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왜 생리대는 어디에나 있지 않을까요.이 기획은 그런 고민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월경은 월경입니다.

영국 바디폼 생리대 광고. 생리혈을 검붉은색 그대로 표현했다./사진=bodyform 유튜브영국 바디폼 생리대 광고. 생리혈을 검붉은색 그대로 표현했다./사진=bodyform 유튜브


익숙해지지 않는 아픔
또 한 달이 됐다. 생리 첫날이다. 양이 많다. 앉았다가 일어났다. 피떡 같은 게 쏟아져 나왔다. 검붉다. 보라색 같기도 하다. 이게 내 몸에서 나온 '덩어리'가 맞나 싶다. 심할 땐 젓갈 같기도 하다.

아랫배가 아프다. X나 아프다. 장기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허리도 아프다. 심할 땐 머리까지 아프다. 누군가는 '배를 포크로 찍는 것'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뭐라 해야하지, 밑이 빠지는 통증이라 해야하나. 찝찝하고 불쾌하다.



여성은 파란 피가 아닌, '피떡'을 쏟아낸다
누워도 아프고, 앉아도 아프다. 생리통약을 먹어도 아프다. 맨날 겪는 아픔이다. 근데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무더운 여름도 다가온다. 최악이다. 생리와 여름 장마의 조합을 아는가. 8월에 패딩 입고 한라산 등반하는 느낌이다.

한 달에 한 번이라고, 무슨 하루만 하는줄 안다. 그런 이들을 위해 가수 비가 그랬다. "어떻게든 너를 때려야겠어." 아니다. 짧으면 3~4일, 길면 6일에서 7일 정도는 한다.

첫날, 둘째날은 양이 많다. 자궁점막이 두꺼워졌다가 떨어져 나가는 거니까, 출혈이 생기는 거다. 그게 배출되는 거다. 양이 서서히 줄어들면서 끝난다. 그리고 다시 새 점막이 생긴다. 다시 두꺼워지고, 그게 반복되는 거다.


파란 피, 샤랄라한 원피스
유한킴벌리의 생리대 광고./사진=유한킴벌리 CF유한킴벌리의 생리대 광고./사진=유한킴벌리 CF
찜질팩을 아랫배 위에 올려 놓았다. 남편이 묻는다. "그날이지, 많이 아파?" 그날은 무슨 그날이냐. 월경은 월경이다.

'여자는 한 달에 한 번 마법에 걸린다', TV 광고 여파인 것 같다. 피떡이 쏟아지는 게 마법인가, 해리포터처럼 "익스펙토 패트로눔"을 외치면서 생리대를 갈아야하나. 제주 바다를 닮은 파란 피는, 어느 지구인이 흘린 생리혈인가. 그렇게 표현하니 이온음료마냥 상큼한 건줄 안다.

마침 TV 광고가 나온다. 예쁜 배우가 베이지색 원피스를 입고, 웃으면서 목화솜을 딴다. 그 위에 웃으며 눕는다. 피부가 편안하단다. 웃기지 마라. 너무 꿉꿉하다. 편안한 월경 따윈 없다. 유기농 할아버지고 나발이고, 너무 힘든거다. 샤랄라한 하얀색 원피스 입고, 자전거 타며 방긋방긋 웃는 건 거짓이고 왜곡이다. 그딴 광고하지 말아라, 진짜 짜증나니까.

모를 수 있다. 예전에 구남친이 내게 그랬다. "생리가 그렇게 아파? 너무 예민하네." 속상했다. 그러나 화내지 않고 차분히 말했다. 얼마나 아픈 건지, 어떤 힘듦인지, 며칠간 고통스러워해야 하는 것인지. 그는 다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한 번도 배운적이 없었다면서.

평생 생리대 비용만 800만원…진통제 등 합치면
한 대형마트에 비치된, 1개에 790원짜리 생리대. 하루에 5개씩, 한 달에 30개만 써도 2만3700원씩 든다./사진=남형도 기자한 대형마트에 비치된, 1개에 790원짜리 생리대. 하루에 5개씩, 한 달에 30개만 써도 2만3700원씩 든다./사진=남형도 기자
생리대를 아는가. 누군가는 하루에 한 개 쓰는줄 안다. 이게 빤쓰인줄 아는가. 24시간 생리대 하나를 쓰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줄 아는가. 생리대에 피가 묻고, 그건 피부에 밀착돼 있는 것이다. 습해진다. 상상해보라, 그 냄새가 엄청나다. 피부가 짓무른다.

그러니 낮에는 3~4시간에 한 번은 갈아줘야 한다. 하루에 5개 정도는 쓴다. 첫날과 둘째날은 자주 갈아야 한다. 양이 많기 때문이다. 생리대는 보통 중형, 양이 많을 땐 대형을 쓴다. 대형 생리대가 엉덩이가 크다고 쓰는 게 아니다.

밤에 잘 땐 못 가니까, '오버나이트'라고 들어봤는가. 밤새도록 새지 않게, 착용하는 것이다. '팬티라이너'는 팬티가 아니다. 두께가 얇아 생리혈이 많지 않을 때, 끝무렵에 쓰는 생리대다.

생리대 파동이 났었다. 화학원료를 쓰니, 휘발성 유기화합물이니해서 몹시 불안했다. 성분이 뭔지도 모르겠다. 피부의 가장 예민한 부분에 닿는 것 아닌가.

여성환경연대 소속 회원들이 5일 오전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생리대의 모든 유해성분 규명 및 역학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사진=홍봉진 기자여성환경연대 소속 회원들이 5일 오전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생리대의 모든 유해성분 규명 및 역학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사진=홍봉진 기자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비싼 걸 썼다. 계산해보니 한 개에 597원쯤 된다. 하루 5개, 평균 6일이라 치면 한 달에 30개씩. 한 달에 1만7910원, 1년에 21만4920원쯤 된다. 그런데 젠장, 이것도 무슨 화학물질 논란이란다.

비싸다. 당연히 쓰는 생필품인데, 왜 이리 가격이 다 비싸나. 월경이 끝나는 나이가 평균 49세란다. 처음 시작한 나이가 12세였으니, 37년은 하는 셈이다. 그러니 평생 생리대 지출 비용이 795만2040원 정도다. 그런 걸 생각하면, 찝찝해도 좀 참을 때도 있다. 덜 갈게 된다. 서글프다.

거기에 진통제에, 어쩌다 피가 묻었을 때 사야할 속옷까지 하면, 2000만원 정도는 든단다(허핑턴포스트 2011년 조사).

그러니 '폐경'이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길고 긴,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던 월경을 다 마친 것이니까, 완수한 것이니까, 어쩌면 삶의 새로운 전환점인 것이다. 폐경이 아니다. '완경'이다.

※ 이 글은, 월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한 30대 여성을 인터뷰 한 내용을 일기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월경은 월경이다' 기획은 매일 기사 한 개씩, 31일까지 연재됩니다. [email protected]로 제보 주시면, 필요한 내용을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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