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암 보험금 두번 주라는 금감원, 제2의 '즉시연금' 되나

머니투데이 전혜영 기자 2020.05.12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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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암 보험금 두번 주라는 금감원, 제2의 '즉시연금' 되나


금융감독원이 고객에게 암 진단금을 두 번 지급하라고 보험사에 권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진단금을 최초 1회만 받는 일반 암보험 가입자와 형평에 맞지 않을 뿐더러 보험의 원칙을 깨는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문맥 없이 국어만 '현미경으로'…이상한 약관해석
11일 금융당국 및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열린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조위)에서 A씨가 동양생명을 상대로 신청한 ‘암보험약관상 원발부위 기준 조항과 보험자의 책임’ 건에 대해 암 진단금을 소액암과 일반암에 대해 각각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2013년 동양생명의 암보험에 가입한 A씨는 2016년 5월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고 2016년 목 림프절로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A씨가 가입한 보험은 △고액치료비 관련 암(이하 고액암) 진단 시 5000만원 △고액암 이외의 암(이하 일반암)은 1000만원 △갑상선암 진단 시 200만원이 지급되는 상품이다.

A씨는 일반암에 해당하는 1000만원을 청구했지만 동양생명은 갑상선암에 해당하는 200만원만 지급했다. A씨는 차액 800만원을 달라며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동양생명은 약관에 ‘원발암 기준으로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돼 있기 때문에 처음 진단받은 갑상선암을 기준으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맞섰다. 반면 A씨는 가입 당시 원발부위 기준 조항을 설명을 못 들었기 때문에 전이된 일반암 기준으로 보험금을 달라고 했다.

금감원의 분쟁조정은 양측의 쟁점을 벗어났다. 약관상 ‘일차성 악성신생물(암)이 확인되는 경우에는 원발부위(최초 발생한 부위)를 기준으로 한다’고 돼 있는데 암의 정의에 갑상선암이 빠져 있기 때문에 원발암 기준으로 했을 때 갑상선암을 원발암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약관은 소액암이 전이된 경우 암 보험금 지급 기준을 놓고 분쟁이 잦자 원발암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금감원 권고로 2011년 변경된 것이다. 문맥을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는 금감원이 암에 갑상선암을 포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본질에서 벗어난 결정을 한 것이다. 또 약관상 소액암과 일반암의 지급액수를 제한하는 조항이 없기 때문에 각각의 발병을 최초 1회로 보고 진단금을 각각 지급하라고 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분쟁조정 신청을 한 고객조차도 일반암 기준으로 보험금을 달라고 했을 뿐 둘 다 받겠다고는 하지 않았다”며 “결과적으로 당국이 소액암에 걸린 사람에게 일반암에 걸린 사람보다 더 많은 보험금을 주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일반암에 대한 차액 800만원을 받고 금감원의 조정 결정을 불수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차액만 달랬는데"…과도한 소비자보호, 즉시연금 '판박이'

이번 결정은 현재 법정에 가 있는 즉시연금 사태와도 닮아 있다. 즉시연금 민원은 당초 연금액이 가입설계서에서 안내받은 최저보증이율에 못 미친다는 것이었다.

당시 분조위는 예시된 최저보증이율에 미달하는 연금을 추가 지급하는 것을 넘어 약관에 ‘만기환급 재원을 뗀다’는 표현이 없다는 이유로 보험사가 영업비용으로 뗐던 사업비까지 다 돌려주라고 했다. 이 때문에 즉시연금은 비과세의 초고금리 원금보장 예금상품이 됐다.

더 큰 문제는 소비자 보호를 위한 금감원의 조치를 악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보험업계 다른 관계자는 “일부 브로커들이 암 진단금을 두 번 받을 수 있다고 소문을 내면서 관련 민원이 빠르게 늘고 있다”며 “동양생명과 비슷한 약관의 암보험이 이미 상당히 많이 팔린 상태라 분쟁과 소송이 더 잦아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동양생명 분쟁 조정 건은 보험사별로 약관이 다 달라 일괄구제 대상은 아니다"라며 "추가로 민원이 들어온다면 각사례별로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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