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외인에 안 진다"…1.7조 또 쏟아붓고도 '90조' 남은 개미들

머니투데이 김사무엘 기자, 반준환 기자 2020.05.05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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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철 디자이너 / 사진=임종철 디자이너임종철 디자이너 /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잠시 주춤한 듯했던 개인의 주식 투자 열기가 다시 불타오른다. 증시가 조정받을 때마다 '조'단위 자금 투입으로 주가를 방어한다. 이러다 자금이 바닥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지만 개인의 주식 대기 자금은 90조원 이상으로 연일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총알'도 두둑하게 갖춘 개미가 이제는 화력이 달려서 기관과 외국인에 지는 일은 없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하루에 1.7조 순매수한 개미…외인·기관 매도공세 방어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4일 코스피 시장에서 개인의 주식 순매수 금액은 1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기존 역대 최대치였던 2011년 8월 10일 1조5559억원을 넘어서는 역대 최고 기록이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일 대비 52.19포인트(2.68%) 하락한 1895.37을 기록했지만 그나마 개미의 매수세 덕에 폭락은 면했다는 평가다. 지난 1일 미국 증시가 3% 넘게 떨어지고 4일 홍콩 항셍지수는 4% 이상 하락한 것을 감안하면 선방한 수익률이다.

"기관·외인에 안 진다"…1.7조 또 쏟아붓고도 '90조' 남은 개미들


개인이 이날 역대급 매수에 나선 것은 증시 조정을 매수 기회로 활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달 반등장에서 매수 타이밍을 놓쳤거나 2차 충격을 예상하고 매수를 망설였던 투자자들이 이날 증시 조정을 틈타 매수에 나선 것이다.

지난 3월 코로나19(COVID-19) 충격으로 폭락했던 증시는 지난달 30% 이상 반등했는데, 이때만 해도 투자자들 사이에선 주가 상승에 반신반의하는 상황이었다. 폭락에 따른 기술적 반등인지, 코로나19 이후 경제 회복을 선반영한 가치 투자인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3월 11조2000억원 가량을 순매수한 개인은 4월 들어 3조8000억원으로 매수 강도가 약해졌다.

순매수 종목도 3월에는 삼성전자 (77,300원 ▲1,000 +1.31%), 현대차 (249,000원 ▼1,000 -0.40%), SK하이닉스 (177,600원 ▲7,000 +4.10%) 등 대형주와 레버리지 ETF(코스피200의 2배 수익률을 주는 상품) 같이 증시 상승을 기대한 종목들 위주였다면 지난달에는 'KODEX 200선물인버스2X (2,130원 ▼60 -2.74%)' 'KODEX 코스닥150선물인버스 (3,440원 ▼20 -0.58%)' 등 증시 하락시 수익을 얻는 상품이 순매수 상위에 올랐다.


그런데 증시 상승이 이어지고 1분기 기업들의 실적 서프라이즈도 이어지면서 투자 전망도 점차 증시 상승 방향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이날 개인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삼성전자(5089억원)였고 SK하이닉스(1689억원) KODEX 레버리지 (18,670원 ▲450 +2.47%)(1586억원) LG화학 (370,500원 ▼2,500 -0.67%)(923억원) 등이다.

국내에서는 코로나19 확산이 확연하게 줄었고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에서도 신규 확진자 증가 속도가 둔화 추세인 것도 증시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경제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기까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지만 증시에는 이미 모든 악재가 반영됐다는 점에서 앞으로 추가 하락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5월에는 (주식을) 팔고 떠나라"(Sell in may and go away)는 증권가 격언이 있지만 개인은 증시 조정이 있을 때마다 추가 매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그동안 반등장에서 증시 조정이 있을 때마다 개인은 이를 매수 기회로 활용했다. 지난달 1일 코스피가 3.94% 하락했을 때 개인은 1조1508억원 어치를 순매수했고, 1.88% 떨어진 13일에는 7588억원을 사들였다. 0.84%, 1% 하락한 20일, 21일에도 9560억원, 7094억원 어치 개인 자금이 유입됐다.

임종철 디자이너 / 사진=임종철 디자이너임종철 디자이너 /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개인 실탄 '90조' 넉넉…예전 '동학개미'가 아니다
개인은 올해 들어서만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쳐 31조원 어치를 순매수했다. 매일 이어지는 매수세에 추가 매수할 여력이 있을까 싶지만 아직도 실탄은 넉넉하다.

주식 투자 대기 자금으로 여겨지는 투자자 예탁금(고객이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 계좌에 넣어둔 돈)은 지난달 29일 기준 42조7263억원을 기록했다. 역대 최고치인 지난달 1일 47조6669억원 보단 다소 줄었지만 지난해 말 보다는 15조4000억원(56%) 가량 늘어난 수준이다.

대기 자금으로 또 눈여겨 볼 부분은 CMA(종합자산관리계좌)다. 이는 증권사가 고객 예탁금을 단기 채권이나 어음 등에 투자해 일부 수익을 주는 상품으로 수시 입출금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주식 대기 자금 성격이 강하다.

CMA 계좌 잔고는 지난달 29일 기준 47조7198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투자자 예탁금과 CMA를 합한 실질적인 주식 대기 자금 규모는 90조4461억원에 달한다.

주식 활동 계좌수도 지속적으로 늘어 지난달 29일에는 3127만개를 기록했다. 이 역시 역대 최대치 기록이다. 개인의 주식 투자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과거에는 개인이 기관이나 외국인에 맞서 이길 수 없다는 인식이 강했다. 정보 접근성이나 분석력의 차이도 있지만 무엇보다 수십조 원대 자금을 굴리는 외인·기관들과의 자금력 차이가 컸다. 외국인의 매도세에 맞서 연일 매수하는 개미를 동학농민운동에 빚대 '동학개미운동'이라고 표현한 것도 어떤 측면에선 자조적인 느낌이 있었다. 19세기 벌어졌던 동학농민운동은 결국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개미는 과거와는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예전보다 정보력이 향상됐고 투자 포트폴리오도 테마주 위주가 아닌 삼성전자 등 우량주 위주로 바뀌었다. 투자금도 충분해 이제는 '실탄이 없어서 진다'는 얘기는 하기 어렵게 됐다. 이날 기관과 외인이 역대 최대인 1조7523억원의 매물을 쏟아 내는데도 개인이 이를 다 받아내는 것을 보면서 시장에서도 '개미가 달라졌다'는 말이 나온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과거 개인이 '투자'보단 '매매'에 치우쳤다면 최근에는 우량주를 중심으로 중장기적 가치투자를 고려한 매수도 늘고 있다"며 "개인의 주요 투자처 중 하나인 부동산 시장의 열기는 최근 식고 있어 증시로 자금이 몰릴 가능성은 더 높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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