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바뀌니 2년 적자에서 바로 '흑전'…현대일렉트릭에 무슨 일이?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2020.05.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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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 현대일렉트릭 사장/사진=이기범 기자조석 현대일렉트릭 사장/사진=이기범 기자


지난달 27일 현대일렉트릭 (230,000원 ▼9,500 -3.97%) 1분기 실적이 발표되자 증권가의 현대일렉트릭 담당 애널리스트들이 바빠졌다. 적자폭을 어느 정도 줄이기만 해도 선방이라고 봤는데 아예 '흑자 전환'을 했기 때문이다. 이날 애널리스트들은 현대일렉트릭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하며 의외의 실적개선에 의미를 부여했다.

단비같은 흑자전환은 현대일렉트릭 직원들의 표정도 밝게 했다. 지난 2년간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직원들 사이에선 불안감이 높았다. 그러나 코로나19(COVID-19) 위기 속에서도 흑자로 돌아선 것은 직원 사기를 올리기에 충분했다.



사실 현대일렉트릭의 1분기 영업이익은 43억원. 지난해 매출액이 1조7700억원을 훌쩍 넘는 기업에서 고작 43억원 영업이익을 낸 것이 대수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일렉트릭은 창사 첫 해를 빼곤 2년 간 누적 영업손실이 2500억원을 넘으며 곧바로 비상경영체제를 이어가야 했다. 창사하자마자 위기를 맞으며 직원들의 실망감도 컸는데, 이 악순환을 끊은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대체 현대일렉트릭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어떻게 흑자 전환을 한 것일까?



실적발표 다음날 경기도 성남시 분당사무소에서 현대일렉트릭 조석 사장을 직접 만났다. 조 사장은 현대중공업그룹이 계열사의 적자난을 보다 못해 지난해 말 외부에서 급히 영입한 '구원투수'다. 조 사장은 기자를 맞아 자리에 앉자마자 "흑자 전환 후 직원들의 일하려는 열의가 커진 것 같다"고 운을 뗐다.

"현대일렉트릭 호의 선장이 바뀌어서 흑자 전환한 것이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조 사장은 "흑자 전환은 내가 (사장으로) 선임되기 전에 진행한 비상경영 효과"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가 지난 4개월간 현대일렉트릭 재건을 위해 뛴 면면을 보면 '조석 효과'가 절대 작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규모'에만 치중했던 수주 전략부터 뜯어 고쳤다. 자체 수주 심사를 강화해 손실이 예상되는 수주는 아예 입찰을 못하게 했다. 수익성 있는 수주에만 집중하다보니 올 초부터 서서히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 조 사장이 직접 '원가절감'을 강조한 것도 흔들리던 현대일렉트릭을 바로 세웠다. 조 사장은 임직원들의 아이디어를 한데 모아 회사 체질을 완전히 바꾸는 '원가절감' 운동을 폈다. 이런 변화들은 차곡차곡 숫자로 증명됐고, 직원들의 일하려는 열의를 깨웠다.


기업 분위기를 쇄신한 조 사장은 이제 다음 목표인 '연간 흑자전환'에 도전한다. 조 사장은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한 수주 전략과 스마트팩토리를 통한 공정 효율화, 상시적 긴축경영이 긍정적인 시너지를 내고 있다"며 "올 1분기 흑자 전환이 연간으로도 흑자로 이어지도록 온 힘을 쏟아붓겠다"고 밝혔다.

조 사장은 코로나19 위기가 현대일렉트릭 흑자 전환의 방해물이 아니라 '기회'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대일렉트릭의 국내외 전 사업장은 단 한번의 셧다운(일시 가동중단)도 없이 안정적으로 생산을 이어가고 있다"며 "최악의 코로나 상황에선 고객들이 이처럼 안정적인 공급업체를 더 찾을 수 있어 현대일렉트릭에는 기회"라고 말했다.

다음은 조 사장과의 일문일답.

-비상경영체제 속에서 사장으로 취임했다. 막상 부딪쳐보니 어떤 것이 한계였고, 문제였나?
▶외부적으로 초고압기기 시장의 침체로 회사 매출이 주저 앉았다. 주력 시장인 중동 국가들은 유가 하락과 재정 악화로 대규모 신규 발주는 물론 교체 발주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인도의 후발 업체들이 원가 경쟁력을 무기로 현대일렉트릭과 경쟁하며 '출혈 수주'가 다반사였다. 한국 시장도 한전의 경영적자로 투자가 위축됐고, 탈원전 기조로 한수원 같은 발전사들의 발주가 줄며 실적 악화가 계속됐다.

이런 상황인데도 시장 환경을 무척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이 현대일렉트릭의 가장 큰 문제였다고 본다. B to B(기업 대 기업) 거래가 주력이다보니 시장 침체의 대안 마련에 부족했고, 신시장 개척에서 수익성과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도 미흡했다.

-그런데도 올 1분기 흑자전환을 했다. 원동력이 뭐였나?
▶전력기기는 수익성 위주의 선별 수주가 관건이라고 본다.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던 공정 효율화와 설계 개선을 통한 원가 절감 효과도 1분기에 속속 수치로 나타났다. 배전기기는 반도체와 석유화학 등 수익성이 양호한 프로젝트가 매출에 반영되며 이익 개선에 기여했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2년여에 걸쳐 실시했던 고강도 인력 효율화 작업도 흑자 전환의 배경이다.

-일부에선 현대일렉트릭이 과연 연간으로 흑자전환을 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는데.
▶연간 흑자 달성은 올해 최우선 과제다. 수익성 우선 수주 전략을 계속 추진하며 전사 차원의 원가절감 운동도 더 강화할 것이다.
지난 1월 가동에 돌입한 현대일렉트릭 울산 변압기 스마트팩토리 전경/사진제공=현대일렉트릭지난 1월 가동에 돌입한 현대일렉트릭 울산 변압기 스마트팩토리 전경/사진제공=현대일렉트릭
지난 1월 가동에 들어간 변압기 스마트팩토리가 안정되며 품질 및 원가 개선, 공정효율화에도 제대로 기여하고 있다. 상시적 긴축 경영으로 전 임직원이 흑자 달성 하나만을 위해 뛸 것이다. 연간 흑자 전환이 반드시 달성할 수 있도록 하겠다.
조석 현대일렉트릭 사장/사진=이기범 기자조석 현대일렉트릭 사장/사진=이기범 기자
-아무래도 그러려면 수출이 뒷받침돼야 한다. 수출 증진 전략은 뭔가?
▶글로벌 전기전자기기 시장은 발주 물량 감소와 업체 간 치열한 가격 경쟁으로 인해 수요자 중심의 '바이어스 마켓'(Buyer's market)으로 전환된 지 오래다. 게다가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후발 주자들의 도전도 거세 우리로서는 물량과 수익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존에 공급했던 전력기기의 증설, 교체 물량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또 수익성 확보가 쉽고, 수금 리스크가 낮은 개발도상국의 ODA(공적개발원조) 자금 공사 입찰도 늘리고 있다.

후발 업체와의 차별화를 위해 사우디 아람코의 '마르잔 프로젝트' 등 신뢰성과 기술력을 동시에 요구하는 공사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미 아람코 공사는 작년 말부터 3월 말까지 700억원의 물량을 확보고, 상반기 중 추가 입찰 결과도 희망적으로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 감염병 확산과 저유가가 실적의 복병이 아닌가?
▶아직 발주 취소 같은 직접적 충격은 없지만 주요 고객들이 위치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레이트는 국경봉쇄와 통행금지로 업무에 어려움이 많다. 일부 예정된 프로젝트 입찰이나 설치·시운전 일정이 연기되고 있어 발주 물량 감소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현지 영업망을 총동원해 실시간으로 시장 상황을 체크하고 있는 만큼 얼마든지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애프터 코로나'에 대비해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사업 변화도 모색하고 있다. 화상회의 인프라를 높이고, 비대면 검사 시스템을 마련하고, 온라인 전시회도 운영할 것이다. 이미 영업부문을 중심으로 TF팀을 구성해 활동을 개시했다.

-현대일렉트릭의 체질을 바꿀 새로운 개선활동도 진행중이라고 하는데.
▶2020년 흑자달성을 위해 무엇보다 전사 개선활동인 'DNA'(Do it Now, Action!!!) 프로젝트를 의욕적으로 하고 있다. 개선 아이디어를 가진 직원은 누구나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고, 프로젝트 참여자는 개개인별로 성과 보상도 받는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1000개가 넘는 개선 아이디어가 나왔다. 당장 개선이 가능한 부분부터 즉시 실행을 추진하고 있다.

조석 현대일렉트릭 사장/사진=이기범 기자조석 현대일렉트릭 사장/사진=이기범 기자
-어려운 상황이지만 중장기 미래도 준비해야 하지 않나?
▶당연하다. 눈 앞의 수치만 봐선 안된다. 디지털 플랫폼 기반 솔루션 사업으로 회사의 패러다임을 대전환 할 것이다. 현대일렉트릭은 2017년 독립법인 출범에 맞춰 '인티그릭(INTEGRICT)'이라는 자체 정보·통신기술 플랫폼을 런칭한 바 있고 에너지솔루션과 자산관리솔루션으로 카테고리를 나누어 활발하게 사업을 운영 중이다. 그 결과 LG화학과 현대중공업에 자산관리솔루션을, 고려아연과 솔라시도 태양광 발전단지에 에너지솔루션을 성공적으로 공급해 신뢰성을 검증 받았다.

제조 업체 입장에서 설비의 효율적 운영과 에너지 절감은 원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부분이므로 관심이 없을 수 없다. 고객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업의 전력설비를 진단해 분석하고 고객 시스템에 최적화된 에너지 효율화 장비 솔루션을 제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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