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분담 없는 이해관계자, 두산중공업 회사채 투자자[현장클릭]

머니투데이 이학렬 기자 2020.04.2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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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두산중공업에 모두 2조4000억원을 지원하면서 이해관계자의 고통분담 원칙을 천명했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게 회사채 투자자들은 예외가 됐다.

모회사와 대주주의 경우 두산그룹이 3조원 규모의 자구안을 내놨고 여기엔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이 포함됐다.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두산중공업은 지난 2월 명예퇴직을 단행했고 일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평균임금의 70%만 주고 일정 기간 쉬도록 하는 휴업도 추진중이다. 두산중공업의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들도 잃은 게 많다. 1년 전 2만원에 육박했던 주가는 최근 2000원대까지 떨어졌다.



반면 두산중공업의 회사채 투자자는 원리금을 찾아갔다. 예컨대 지난 27일 만기였던 외화사채에 투자한 투자자는 수은이 두산중공업에 빌려준 돈으로 원리금을 회수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두산중공업 외화사채는 PIMCO(핌코), 존핸콕파이낸셜서비시스 등 미국계 자산운용사들이 갖고 있었다.

다음달 만기가 돌아오는 사모사채와 외화사모사채는 물론 조기상환청구권 행사가 유력한 신주인수권부사채 투자자도 원리금을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신주인수권부사채는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붙어 있어 금리가 1.00%로 낮지만 사모사채 금리는 3.03%~5.10%에 이른다.



9월 만기인 공모사채(두산중공업56) 투자자도 돈을 떼이지 않을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두산중공업56 채권 가격은 3월초까지 1만원 이상에서 거래됐다. 두산중공업 위기가 불거지던 지난달 24일 9100원까지 떨어졌지만 최근 다시 1만원에 육박하고 있다. 국책은행의 지원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이 사라지면서 가격이 오른 것이다.

채권단은 두산중공업이 채무불이행 상태가 아닌 만큼 회사채 투자자에게 고통을 분담할 근거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채무불이행 이전에도 회사채 투자자에게 고통을 분담한 사례가 있다. 2007년 산은과 수은이 대우조선해양에 2조9000억원을 지원할 때 회사채와 CP(기업어음) 투자자도 채무조정을 받아들였다. 반발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특히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보유 회사채의 출자전환 등에 반대했지만 채권단의 끈질긴 설득에 출자전환에 동의했다. 당시 채권단이 이해관계자의 손실부담 원칙을 고수한 건 그래야 국민의 혈세를 조금이나마 아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통분담 없는 이해관계자, 두산중공업 회사채 투자자[현장클릭]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구조조정을 진행한 지 3년이 지난 지금 채권단은 대우조선해양 지원액에 버금가는 금액을 두산중공업에 쏟아붓고 있지만 무담보 회사채에 투자한 투자자들에게 어떤 고통분담도 요구하고 있지 않다. 그만큼 혈세는 낭비됐고, ‘이해관계자의 손실분담’이라는 구조조정 원칙은 3년 전보다 후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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