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정유업 비축유 사달라는데…재원이 없다

머니투데이 세종=민동훈 기자 2020.04.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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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 기간산업 뉴딜이 필요하다] (3)

GS칼텍스 여수공장 / 사진제공=GS칼텍스GS칼텍스 여수공장 / 사진제공=GS칼텍스


유가전쟁과 코로나19 여파로 사면초가에 내몰린 정유업계는 정부에 4가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당장 수요감소로 넘쳐나는 △원유 재고를 전략비축유로 국가가 매입해 주거나, △단기유동성 공급을 위한 적극적인 금융지원, △석유수입부담금 등 각종 준조세의 납부 유예, △관세 및 부가가치세 감면과 같은 세정 지원 등 실질적 지원책 등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5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정유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수요가 급격하게 떨어진 휘발유와 항공유 등의 재고 처리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업계와 대책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정유업계는 정부가 남는 석유 제품을 구매해 평택, 울산, 여수 등에 위치한 한국석유공사 비축시설에 보관하는 방안을 검토해 줄 것을 건의했다. 최근 정유업계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세계적으로 석유제품 수요가 급감하면서 재고가 급격히 늘어난 탓이다.

[리야드(사우디아라비아)=AP/뉴시스]지난 2019년 12월12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아랍 내셔널 은행에서 사우디 투자가들이 주식 시세를 보여주는 전광판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창궐은 국제 원유 및 에너지 시장에 있어 "진정한 블랙 스완"이라고 미국의 네드 데이비스 연구센터가 10일(현지시간) 밝혔다. 2020.2.11[리야드(사우디아라비아)=AP/뉴시스]지난 2019년 12월12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아랍 내셔널 은행에서 사우디 투자가들이 주식 시세를 보여주는 전광판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창궐은 국제 원유 및 에너지 시장에 있어 "진정한 블랙 스완"이라고 미국의 네드 데이비스 연구센터가 10일(현지시간) 밝혔다. 2020.2.11
여기에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증산경쟁까지 벌어져 원유가격이 급락했다. 기껏 원유를 정제해서 생산한 휘발유 등 석유제품 가격이 원유 도입가격보다 더 낮아져 손실을 보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달 국내 정유사의 일일 정제마진(석유제품 가격-원유 도입 가격)은 배럴당 2달러씩 손해를 보는 수준까지 악화했다. 국내 정유사 정제마진의 손익분기점은 4~5달러 수준인데 현실은 공장을 돌리면 돌릴 수록 손해가 커지는 수준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유업계는 정부의 재고매입과 함께 원유에 부과하는 관세와 벙커C유에 붙는 개별소비세, 석유 수입 부과금 인하 등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기획재정부와 산업부를 중심으로 대책마련에 나섰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앞서 정부는 관세 납기 연장을 신청한 대형 정유업체에 대해 관세를 2개월간 유예키로 했다. 관세법 제10조에 따르면 천재지변이 발생할 경우 법에 따라 세관장이 1년 이내로 기한을 연장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업계 요구사안인 전략비축유 매입도 검토대상이다. 문제는 국내 정유업체들이 생산한 석유제품을 정부가 구입해 비축하기 위한 실탄(예산)이 넉넉치 않다는 점이다. 정부는 올해 전략비축유 예산으로 314억원을 책정했다. 지난해 기준 약 30만배럴 정도 구매할 수 있는 규모다. 지난해 석유공사는 원유 15만배럴, 경우 12만 배럴 등 총 27만 배럴을 비축했다.


그나마 올 들어 국제유가가 연초대비 절반 이상 하락하면서 실제 구입할 수 있는 양은 당초 계획보다 2배 정도 늘릴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예산을 총괄하는 기재부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편성한 추가경정예산 재원 확보를 위해 유가 하락으로 소요가 줄어든 사업비를 깎겠다고 벼르고 있어 전략비축유 재원 확충이 쉽지 않다. 비축유(원유+석유제품) 구매는 국내 정유사를 포함해 국제 지명 경쟁입찰을 통해 이뤄지는 만큼 정유업계 요구를 받아들이기 위해선 정무적 판단이 필요하다.

이에 더해 현재 수입 원유와 석유제품에 리터당 16원씩 매기고 있는 석유수입부과금 부담을 한시적으로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석유수입부과금은 2006년 리터당 16원으로 고정된 이후 국제유가 변동에 관계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정유업계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관세와 마찬가지로 2개월 가량 납부를 유예하는 것도 방법이다.

석유수입부과금으로 쌓은 에너지 및 자원사업 특별회계(에특회계)를 정유업계 위기극복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할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에특회계는 석유 수입·판매 부과금 등을 모아 에너지 및 자원개발에 쓰자는 취지로 1995년 도입한 정부 기금이다.

올해 산업부 소관 에특회계 세입 예산안 5조4769억원 중 석유 수입·판매부과금을 중심으로 한 경상이전수입은 1조9385억원이다. 에특회계 여유 재원을 석유비축물량 확대 등에 활용할 경우 예산 부족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정유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인 만큼 코로나19, 저유가 등 급변동하는 시장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정유업계의 애로사항을 면밀히 파악해 국가경제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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