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정부가 내놓은 100조원 규모의 민생·금융안정 프로그램 패키지에서 산은은 16조6000억원을 책임지기로 했다. 추가경정예산 11조7000억원보다 많은 금액이다. 산은은 막대한 지원에 나서지만 추경에서 한푼도 지원받지 않는다.
이중 중소·중견기업 대출 프로그램과 증시안정펀드를 제외한 13조원은 한은이 회사채를 인수하면 산은이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된다. 이동걸 산은 회장이 지난달 20일 이례적으로 “아직 한은의 문제의식이 안일해 보인다”고 말한 이유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은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며 한은법을 개정했고 한은법 80조에는 민간회사를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넣었다.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4명 이상의 찬성으로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자금조달에 중대한 애로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 영리기업에 자금을 지원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외국에서 보면 산은을 중앙은행으로 오해할 정도로 산은이 회사채 지원을 위해 돈을 풀고 있다”며 “한은법에는 한은이 미국 중앙은행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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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이 우회적으로 회사채 시장과 단기자금시장 안정에 나서면서 구축효과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한은이 공개시장운영 RP 대상증권에 산업금융채권(산금채) 등을 추가하면서 산은이 자금을 조달하는데 어려움은 줄었다. 하지만 산은이 산금채를 발행하면 상대적으로 산은이 지원하려는 회사채 수요는 줄 수 밖에 없다. 기관투자자가 리스크가 커진 회사채보다 산금채를 살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3월 한달간 산은은 산금채 5조7800억원을 발행한 반면 일반 회사들이 발행한 회사채는 3조7600억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3월엔 산은이 1조5600억원을 찍은 반면 회사채는 5조4500억원이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산금채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건 역설적으로 회사채가 제대로 발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증표”라며 “한은은 고뇌만 하고 실행은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