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세요"…영덕 주민이 삼성연수원에 선물한 '대게 100인분'

머니투데이 영덕(경북)=이정혁 기자 2020.04.01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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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위기 기업보국 현장]국내 최초 기업 제공 '생활치료센터'-삼성 영덕연수원

경북 영덕군에 위치한 삼성 영덕연수원 정문/사진=이정혁 기자경북 영덕군에 위치한 삼성 영덕연수원 정문/사진=이정혁 기자


지난 30일 서울에서 4시간30분 차를 달려 도착한 경북 영덕군 병곡면 '삼성 영덕연수원'. 영덕군청에서도 27㎞나 떨어진 이 두메산골 연수원에 요즘 대형 택배상자가 부쩍 많이 배달된다고 한다. 이날 점심시간에도 영덕대게 100인분(300만원 상당) 박스가 연수원 경비실에 떡하니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COVID-19) 경증환자들의 생활치료센터로 쓰이는 이 연수원에서 영덕대게를 시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삼성연수원 관계자들은 택배상자를 누가 보냈는지 짐작한다는 듯이 익숙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이날 강구항에서 영덕대게 상자를 직접 날라온 영덕군청 공무원은 그제서야 기자에게 지역 상인들이 보낸 '작은 선물'이라고 귀띔했다.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는 박스 안에는 한 장의 편지가 담겨 있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삼성 의료진분들의 헌신적인 치료와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영덕대게 드시고 힘내세요! 대구·경북 파이팅!"

이 공무원은 "삼성연수원 의료진과 관계자들을 위해 대게죽을 보내주는 주민도 있고, 대게찜을 보내 주는 상인도 있다"며 "이 정도면 연수원을 내준 삼성과 영덕군청, 영덕주민들이 코로나 환자를 위해 서로 잘 도와주고 있는 것 아니냐"며 웃었다.



경북 영덕군 지역상인이 삼성 영덕연수원에 보낸 영덕대게/사진=이정혁 기자경북 영덕군 지역상인이 삼성 영덕연수원에 보낸 영덕대게/사진=이정혁 기자
222명 중 절반 이상 퇴원, 중증 악화 환자 '전무'
삼성영덕연수원에는 삼성의료원 소속 의사·간호사를 포함해 총 20명(의사 4명, 간호사 16명)의 의료진이 코로나19 경증환자 97명(30일 오후 기준)을 돌보고 있다. 이 연수원에는 3월초 222명의 환자들이 입소했지만 불과 한 달 새 절반이 넘는 125명이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했다. 경증환자이기 때문에 완치율이 높은 것일 수 있지만 과연 어떤 식으로 치료가 이뤄지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진환자가 아직 97명 있는 연수원 정문을 넘어설 용기는 솔직히 쉽지 않았다. 이날 기자는 삼성영덕연수원과 중앙방역대책본부 관계자의 동의를 받은 후에야 비로소 환자들의 치료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연수원 일부를 목격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중대본 관계자는 "아무리 경증환자라도 이곳에서 퇴원하려면 두 번씩 음성 판정을 받아야 한다"며 "의료진과 환자의 대면 접촉을 최소화하는 삼성 특유의 IT 기술력이 큰 도움을 줬다"고 강조했다.

경증환자들은 영덕연수원 입소와 동시에 삼성의료원이 만든 인터넷주소(URL)을 받게 된다. 환자들이 하루 두 번씩 문진표(자가진단 체크리스트)를 작성하고 이 URL을 통해 '전송' 버튼을 누르면 담당 의료진이 바로 확인한다.

간단해 보이지만 이런 비대면 시스템은 의료진이 착용하는 방호복과 마스크, 위생장갑 등의 사용도 최소화해준다. 그만큼 의료진이 환자 치료에 집중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임상 진료기록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환자 상태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도 소상히 알 수 있다. 이렇게 환자상태를 충분히 파악한 후 의료진은 더 효과적인 대면 관리에 들어간다.

연수원 시설이 최신식으로 환자 동선을 겹치지 않게 조치할 수 있는 것도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는 후문이다. 영덕연수원은 여전히 각각 분리된 5개동에서 환자들을 분산 수용하며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 환자들이 잠깐이라도 머문 곳은 진료실이나 복도 등 어느 곳을 막론하고 하루 3회씩 소독하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다.

영덕연수원 경증환자 관리를 지원하는 대구시 관계자는 "영덕연수원에서 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으로 이송된 중중환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며 "영덕군과 대구시, 중대본, 삼성의 노력과 의료진의 희생 덕분이다"고 말했다.
영덕주민·영덕군청·삼성이 합심해 지금도 코로나와 '사투'
영덕연수원은 환자 치료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다. 이는 완공한 지 얼마 안된 최신시설이라는 하드웨어적 장점 외에 영덕군과 삼성의 긴밀한 소통이 있기에 가능하다.

삼성그룹은 3월 초 영덕연수원을 코로나19 경증환자 생활치료센터로 제공한다고 밝히기 앞서 영덕군 관계자들과 수차례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이희진 영덕군수는 '주말 간담회'를 열어 지역주민을 설득했고, 삼성 직원들은 연수원 인근 마을을 돌며 주민들과 수시로 소통했다.

영덕연수원이 별다른 반대여론이나 특별한 민원 없이 코로나 생활치료센터로 문을 열고, 치료에 속도를 낼 수 있는 이유였다. 마을 주민들은 이곳에 경증환자 222명이 입소했지만 평상시와 전혀 다를 것 없이 칠보산 자락에서 나물을 캐거나 밭을 매는 등 평온한 일상을 이어갔다. 실제로 영덕 주민들은 이 연수원이 코로나 감염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날 만난 한 지역주민은 "지난해 영덕 일대가 태풍으로 큰 피해를 봤을 때 대구시가 많은 도움을 줬다"며 "경증환자들이 빨리 쾌유해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삼성영덕연수원 정문을 중심으로 한 칠보산1길에는 무려 2㎞에 걸쳐 코로나19 환자들의 입소를 환영하고, 쾌유를 기원하는 현수막이 11개나 걸려 있었다. 하나 같이 이장협의회와 어촌계, 상인회, 군민 등 지역주민들이 내건 플랭카드였다.

'코로나19의 어려움을 영덕에서 반드시 이겨냅시다'(병곡면 이장협의회)
'영덕군민은 대구시민들을 사랑합니다!'(고래불 어촌계)

영덕연수원에서 근무하는 중대본 관계자는 이날 "최근 경증환자 신규 입소자가 전혀 없지만 이곳은 단 1명이라도 코로나 환자의 도움이 필요할 때까지 생활치료센터로서 임무를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 영덕군 삼성 영덕연수원 입구에 붙은 병곡면 이장협의회의 코로나19 경증환자들의 쾌유 기원 현수막/사진=이정혁 기자경북 영덕군 삼성 영덕연수원 입구에 붙은 병곡면 이장협의회의 코로나19 경증환자들의 쾌유 기원 현수막/사진=이정혁 기자
경북 영덕군 삼성 영덕연수원 입구에 붙은 지역 상인회와 지역사회의 코로나19 경증환자들의 쾌유 기원 현수막/사진=이정혁 기자경북 영덕군 삼성 영덕연수원 입구에 붙은 지역 상인회와 지역사회의 코로나19 경증환자들의 쾌유 기원 현수막/사진=이정혁 기자
경북 영덕군 변곡면의 한 정자 앞에 있는 지역사회의 코로나19 경증환자 쾌유 메시지/사진=이정혁 기자경북 영덕군 변곡면의 한 정자 앞에 있는 지역사회의 코로나19 경증환자 쾌유 메시지/사진=이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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