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구독해주오”…넷플릭스가 시작한 OTT 전쟁

윤준호(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0.03.27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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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던진 ‘큰’ 돌…먹히느냐 버티느냐!

'킹덤' 시즌2, 사진제공=넷플릭스'킹덤' 시즌2, 사진제공=넷플릭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모두가 복지부동하는 상황 속에서 부각된 키워드는 두 가지다. '킹덤'과 '사냥의 시간'.

1년여 만에 시즌2를 내놓은 '킹덤'(극본 김은희, 연출 박인제)은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며 ‘K-좀비’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또한 베를린국제영화제 공식 초청까지 받으며 주목받았던 영화 '사냥의 시간'(감독 윤성현, 제작 싸이더스)의 경우, 투자배급사가 극장 상영을 포기하고 이를 온라인 공개로 돌리는 ‘일대 사건’이라 불릴 만한 결정을 내리며 영화계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다름 아닌 넷플릭스. '킹덤'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로 제작돼 공개됐고, '사냥의 시간'은 ‘극장 상영작’이 아니라 ‘넷플릭스 공개작’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됐다.

아주 조심스러운 표현이지만, "코로나19의 최대 수혜자는 넷플릭스"라는 말도 나돈다. 코로나19로 인해 바깥 출입이 줄어든 요즘 대중은 넷플릭스 콘텐츠를 파고 들고,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극장 개봉이 어려워진 '사냥의 시간'이 결국 넷플릭스라는 탈출구를 택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넷플릭스의 시간, 더 나아가 OTT의 시간이다.



#OTT 전쟁이 뭔가요?

20년 전 지하철을 타면 적잖은 이들이 신문이나 책을 읽고 있었다. 신문을 활짝 펴고 보는 이들의 매너 문제가 가끔 뉴스에 오르기도 했다. 10년 전 지하철에서는 무가지를 보는 이들이 많았다. 신문은 ‘돈주고 사보는 존재’가 아니라 ‘무료로 보는 존재’로 여기게 된 셈이다. 그리고 현재, 지하철 역 앞에서 더 이상 무료 신문을 올려놓은 가판대를 볼 수 없다. 대신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타인에게 불편을 끼칠 염려가 없는 공간만 할애하면 되는 그 작은 화면 속에는 신문, 책, 게임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OTT(Over the top·온라인동영상서비스)의 정확한 개념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동 중에 스마트폰으로 여러가지 콘텐츠를 즐기고 집에서도 TV보다 휴대폰에 몰두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OTT 세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넷플릭스는 그 선두주자다. 전세계 190개국에 공급되며 유료 회원수만 올해 초 기준 1억 6700만 명에 육박한다. 이에 넷플릭스가 국내 론칭되던 2016년만 해도 넷플릭스가 내미는 손을 마다하던 국내 업체들도 위기감을 느끼고 토종 OTT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왕좌의 게임'을 서비스하며 주목받은 왓챠플레이를 비롯해 웨이브(지상파 3사), 티빙(CJ ENM+JTBC),시즌(KT) 등이 가세했다. 적잖은 누적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는 이들은 국내 영화와 드라마 소비력이 높은 한국의 시장 특성을 무기로 넷플릭스를 견제하고 있다.

이들의 첫 번째 싸움은 ‘가격 전쟁’이다. 기본형(1달)을 기준으로 볼 때 넷플릭스의 이용료는 8.99달러(1만1650원-3월25일 환율)이고 애플TV플러스와 디즈니플러스는 각각 4.99달러(6140원), 6.99달러(8600원)다. 반면 국내 플랫폼을 살펴보면 웨이브와 왓챠플레이 모두 7900원이다. 여기에 신규 가입자 첫 달 무료 이용 서비스나 장기 결제 시 할인 혜택 등을 고려할 때, 일단 가격 면에서 국내 OTT 업체가 더 매력적이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으로 볼 때, OTT 전쟁은 가격 전쟁을 넘어 ‘콘텐츠 전쟁’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대중이 TV를 통해 무료로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아니라 굳이 비용을 지불하면서 영화를 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점점 더 삶의 가치가 높아지고 콘텐츠를 바라보는 대중의 눈높이도 높아지면서, 더 비용을 내더라도 그에 합당한 재미를 보장하는 신선한 콘텐츠를 보기 원한다는 것이다. 결국 토종 OTT가 TV에서도 볼 수 있는 드라마를 OTT 플랫폼에서 재방송하는 행태로는, 신규 콘텐츠를 쏟아내는 넷플릭스를 이길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킹덤' 시즌 1, 2를 본 이들은 벌써 "'킹덤' 시즌3를 보고 싶다"고 아우성이다. 실제 제작이 된다면 당연히 그들은 또 다시 넷플릭스를 찾게 될 것이다. 할리우드 배우 케빈 스페이시가 출연했던 자체 제작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가 큰 성공을 거두며 넷플릭스가 미주 지역에서 엄청난 구독자를 늘렸다는 것은, 콘텐츠가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것을 알린 단적인 예”라며 "국내 콘텐츠는 TV를 통해 보고, 해외 콘텐츠는 넷플릭스에서 본다는 인식이 정착되면 토종 OTT는 승산이 없다"고 꼬집었다.

사진제공=리틀빅픽쳐스사진제공=리틀빅픽쳐스
#넷플릭스, "날 구독하라!"


구독경제가 시작됐다. 값비싼 물품을 덜컥 사기 보다는 매월 일정 금액을 납부하는 형식이 대세다. 정수기에 이어 요즘은 TV, 침대, 소파, 안마의자도 이런 식으로 ‘구독’한다. 과거 구독한 신문이 매일 새벽이 되면 대문 앞에 오듯, 이제는 넷플릭스가 수시로 구독자들에게 신규 콘텐츠를 선물처럼 안긴다.

넷플릭스가 설립된 1997년, 당시 콘텐츠 시장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DVD를 대여하는 ‘렌탈’(rental)의 시대였다. 약 9000개의 매장을 갖춘 공룡 업체인 ‘블록버스터’에 맞서 넷플릭스는 온라인 주문을 통해 DVD를 배달해주고 반납받는 시스템을 가동했다.

이후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업계 또한 빠르게 변했다. 고작 몇 메가짜리 파일을 보내기도 버겁던 인터넷 처리속도가 몇 기가짜리 파일도 순식간에 보낼 정도로 발달하면서 넷플릭스는 렌탈 사업을 분리한 후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 주력했다. 결국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블록버스터는 2010년 파산했고, 넷플릭스는 승승장구했다.

공룡으로 성장한 넷플릭스는 2016년 한국에 상륙했다. 시작은 녹록지 않았다. 넷플릭스 안에 한국 드라마는 거의 없었고, 한국 영화 역시 이미 몇 년 전 개봉한 작품 뿐이었다. 유독 토종 콘텐츠가 많이 생산되고, 대중의 충성도가 높은 한국 시장의 특성을 넷플릭스가 제대로 읽지 못했던 탓이다.

결국 넷플릭스는 전략을 바꿨다. 이듬해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서비스했고,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와 크리에이터들을 잇달아 영입했다. 봉준호 감독과 손잡고 영화 '옥자'를 만들었고, 방송인 유재석과 함께 '범인은 바로 너'라는 예능 콘텐츠를 제작했다. 이어 tvN 드라마 '시그널'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던 김은희 작가를 활용해 '킹덤'을 성공시켰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넷플릭스를 바라보는 한국 대중의 시선은 완전히 달라졌다.

더 이상 넷플릭스는 도전자가 아니다. OTT 시장을 선점한 넷플릭스를 상대로 국내 플랫폼 업체들이 오히려 도전장을 내밀어야 하는 형국이다. 게다가 한국의 유능한 크리에이터와 스타들이 넷플릭스에 줄을 서고 있다.

넷플릭스는 향후 한국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 제작에 더욱 힘을 쏟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디즈니플러스가 OTT 시장에 뛰어들며 '어벤져스' 시리즈를 비롯해 디즈니 기반 콘텐츠를 더 이상 공급받을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콘텐츠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비중을 높여야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시아를 넘어 미주, 유럽 등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한류 스타와, 검증된 콘텐츠를 다수 생산하는 재능을 보여준 한국 크리에이터들을 활용하려는 움직임 역시 거세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넷플릭스는 기존 지상파, 케이블, 종편 채널 등에 비해 제작비를 1.5∼2배 정도 더 책정하고, 정해진 편성 시기도 없기 때문에 출연진과 제작진 모두 높은 퀄리티를 낼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충분히 준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극장 상영을 전제로 제작된 '사냥의 시간'이 넷플릭스와 손을 잡은 ‘사건’을 시작으로, 향후 한국의 우수 인력과 콘텐츠들이 넷플릭스로 향하는 쏠림현상이 강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윤준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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