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외출금지' 1억명 갇힌 미국…마트에 타이레놀이 없다

머니투데이 뉴욕=이상배 특파원 2020.03.2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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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저지주 엥글우드 소재 약국형 마트 월그린의 화장지 진열대가 비어있다./ 사진=이상배 뉴욕특파원미국 뉴저지주 엥글우드 소재 약국형 마트 월그린의 화장지 진열대가 비어있다./ 사진=이상배 뉴욕특파원


미국에서 약 1억명이 사실상 '자가격리' 상태에 놓였다. 19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뉴욕, 펜실베니아, 일리노이, 코네티컷주에 이어 21일 뉴저지주까지 '외출금지'(stay-at-home) 명령을 발동했다.

전체 미국인 3억3000여만명 가운데 약 30%가 집에 발이 묶인 셈이다. 외출 사유는 식료품 구매나 치료, 산책 등으로 제한됐다. 식품, 의료, 금융 등 필수적이지 않은 업종의 사업장은 모두 폐쇄됐다.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20일 외출제한령과 비(非)필수 사업장 폐쇄를 발표한 기자회견에서 "뉴욕이 멈춘다"며 "어려움을 이해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호소했다.

사라진 타이레놀…손 소독제 3배 폭리
뉴욕이 '셧다운'된 20일 오전 10시30분, 뉴욕시에서 10km 떨어진 뉴저지주 엥글우드의 약국형 마트 월그린.



건장한 남성들이 입구에 주차된 트럭과 매장 사이를 바삐 오갔다. 냉장식품 선반에 우유가 빠르게 채워지고 있었다. 흑인 남성 한명이 우유를 집기 위해 진열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남성이 살 수 있는 우유는 최대 2통. 이 매장에선 1인당 우유 구매량을 2통까지로 제한하고 있었다.

코로나19(COVID-19)의 빠른 확산과 이에 따른 외출금지령의 확대로 외출이 점점 어려워지자 신선도를 요하는 제품인 우유까지 사재기 리스트에 올랐다.


예상대로 생수와 화장지를 팔던 진열대는 모조리 비어있었다. 선반에는 물건 대신 생수 등의 1인당 구매량을 2개씩으로 제한다는 안내문만 붙어있었다.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을 팔던 선반도 텅 비었다. 반면 이부프로펜 성분의 소염·진통제인 '에드빌'(Advil)은 넉넉히 채워져 있었다.

최근 WHO(세계보건기구)가 이부프로펜 성분이 코로나19의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대신 타이레놀과 같은 아세트아미노펜(파라세타몰) 계열을 추천하면서다.

그렇다고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의 약을 전혀 구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마트에서 자체 브랜드로 판매하는 타이레놀과 같은 성분의 약은 여전히 진열대에 남아 있었다.

최근 사재기의 주 타깃이 된 손 소독제 역시 찾을 수 없었다. 손 소독제 품귀에 일부 상점은 평소 가격의 2∼3배를 받으며 폭리를 취하고 있다.

뉴욕 인근의 한 한인 약국은 평소 3∼4달러(약 3700∼5000원)에 팔리던 퓨렐의 8온즈(236ml)짜리 손 소독제를 최근 10달러(약 1만2500원)에 팔았다. 심지어 손 세정제 한 통에 60달러(약 7만5000원), 손 세정제를 한번 눌러 쓰는데 1달러(약 1250원)를 받는 상점도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미국 50개주 가운데 최소 41개주에서 이 같은 폭리 사태가 벌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뉴저지주 엥글우드 소재 약국형 마트 월그린의 소독용품 진열대가 비어있다. 구매량을 2개까지로 제한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이상배 뉴욕특파원미국 뉴저지주 엥글우드 소재 약국형 마트 월그린의 소독용품 진열대가 비어있다. 구매량을 2개까지로 제한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이상배 뉴욕특파원
종업원 없는 식당들…"매출이 거의 사라졌다"
뉴욕시에 인접한 뉴욕ㆍ뉴저지ㆍ코네티컷주에선 식당들이 폐업 위기에 몰렸다.

이른바 트라이스테이트(Tri-State)로 불리는 이들 3개주가 지난 16일부터 공동으로 식당 등의 방문 식사를 금지하면서다. 이에 따라 지금은 드라이브스루 등을 통해 포장된 음식을 가져가거나 배달시키는 것만 가능하다.

이날 기자가 찾아간 뉴저지주의 한 일식당에선 종업원 없이 업주 부부만 가게를 보고 있었다. 이 업주는 "매출이 거의 사라졌다"며 "이게 도대체 무슨 난리냐"고 한탄했다.

인근의 다른 한식당도 업주와 조리하는 직원 한명만 나와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이 업주는 "음식을 '투고'(to go·픽업)로 가져가는 손님만 있으니 평소 서빙하던 직원은 나올 필요가 없어졌다"고 토로했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컬버시티의 한 총기 판매점 앞에 총기 또는 탄약을 구매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선 모습./ AP=뉴시스1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컬버시티의 한 총기 판매점 앞에 총기 또는 탄약을 구매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선 모습./ AP=뉴시스
'대량실업' 속 약탈 우려에 총기 구매 급증
자연스레 식당 또는 술집 종업원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실업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코네티컷주에서 지난 13일 이후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3만건으로 과거 평균 대비 10배로 뛰었다.

뉴욕주에선 접속 폭주로 한때 실업보험시스템 웹사이트가 마비되기도 했다. 통신은 현재 3%대인 미국의 실업률이 앞으로 3개월 내 8% 이상으로 급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각에선 대량 실업으로 생활고에 몰린 이들이 늘고 생필품 확보까지 어려워지면서 앞으로 절도, 강도 또는 약탈 등 범죄가 증가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이에 따라 미국 전역에서 호신용 총기와 탄약의 구매가 급증하고 있다.

LA타임스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이후 11일간 온라인 탄약 판매업체 아모닷컴의 판매량은 직전 같은 기간 대비 68% 급증했다.

미국 총기업체 하이엇건 래리 하이엇 회장은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총과 탄약을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에 따르면 21일 오후 6시40분 현재 미국내 코로나19 확진자는 2만4000여명, 사망자는 301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뉴욕주에서만 1만1000명 이상의 확진자와 60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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