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광의 디지털프리즘]통신 데이터로 팬데믹 막을 수 있다면

머니투데이 성연광 정보미디어과학부장 2020.03.2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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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에서 질병관리본부 국립검역소 직원들이 중국발 항공기를 통해 입국하는 승객들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인천국제공항에서 질병관리본부 국립검역소 직원들이 중국발 항공기를 통해 입국하는 승객들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전세계가 ‘코로나 패닉’에 뼈졌다. 코로나19(COVID-19) 확진자 수가 20만명을 넘어섰다. 급기야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스페인 독감, 신종플루에 이어 세 번째 팬데믹이다. 중국 지방도시에서 발현한 바이러스 하나가 채 석 달 만에 지구촌 곳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어떤 곳이든 하루이틀이면 갈 수 있을 정도로 발달한 항공노선과 세계적 여행 자유 확대가 오히려 인류를 심각한 바이러스 위협에 빠트렸다. 바이러스도 변했다. 증상 없이도 숙주를 옮겨 다닌다. 막힌 공간에선 삽시간에 여러 명을 전염시킨다. 방역망을 일시에 허무는 가공할 만한 전염력이다.

 아무리 그래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역병이라니. 의료기술은 논외로 첨단 IT기술로 전염병과 맞설 순 없을까. 사실 코로나19에 대항하는 사투현장에선 IT기술들이 보조수단으로 맹활약 중이다. AI(인공지능)기술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 백신·치료제가 절박한 상황에서 대체 후보물질을 찾고 자가격리자들에게 전화해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용도다. 신약 개발과 유전체 분석·진단에도 활용된다. 로봇과 드론은 바이러스 감염 우려가 높은 현장에서 의약품을 나르거나 건물방역 용도로 속속 투입된다. ‘드라이브스루’(승차검진)로 대표되는 진단 시스템, 투명한 정보공개 시스템, 자가진단앱 등 ‘K-방역’ 시스템을 세계가 주목한다.



 재조명받아 할 한국의 IT 방역기술이 하나 더 있다. KT가 4년 전 글로벌 사회에 제안한 GEPP(글로벌 감염병 확산방지 프로젝트)다. 원리는 간단하다. 휴대전화 로밍 데이터와 기지국 이동정보를 검역에 활용해 전염병 확산을 막자는 게 요지다.

 가령 휴대전화 로밍 데이터를 보면 발병지 혹은 오염지역을 다녀왔는지 알 수 있다. 이들 지역으로 출국하는 여행객들에겐 전염병정보와 예방수칙을 알리는 동시에 입국시 능동감시 대상자를 추려낼 수 있다. 당국은 대상자 정보를 미리 파악할 수 있어 공항 도착시 놓치지 않고 검역할 수 있다. 잠복기엔 증상유무를 관리할 수 있다.



 통신사들은 로밍데이터뿐 아니라 이용자들의 기지국 정보도 갖고 있다. 감염예방법에 따라 이 정보를 활용하면 확진자 동선정보를 빠르게 찾아내 제2, 3의 추가감염을 막을 수 있다. 우리 보건당국은 2016년부터 이 개념을 도입한 스마트검역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그 결과, 발생국 경유자 검역률을 2017년 5월 36.5%에서 지난해 8월 90.4%로 끌어올렸다. 그렇다면 코로나19 방역에는 효과가 있었을까. 이를 따지기엔 아직 이르다. 그럼에도 입국 전면제한 조치 없이 이 정도 선에서 막아낼 수 있었던 건 이 시스템 덕분이다.
[성연광의 디지털프리즘]통신 데이터로 팬데믹 막을 수 있다면
 이탈리아 등 유럽국가도 우리와 같은 스마트검역 시스템을 조기 도입했더라면 피해가 이 정도까지 커지지 않았을 수 있다. 유럽인들은 솅겐조약(국경개방조약)에 따라 권역 내 제약 없이 국경을 넘나든다. 휴대전화 데이터를 활용한 검역·방역 시스템이 작동했더라면 감염 증가세를 충분히 늦출 수 있지 않았을까. 전세계 주요 국가들이 동참한다면 GEPP는 보다 강력한 방어막이 될 수 있다. 내국인뿐 아니라 해외 방문자도 여행지 추적이 가능하다. 청정지역 입국자라도 직전 바이러스 오염 국가와 지역에 다녀왔는지 파악할 수 있다. 확진시 이전 여행국가의 동선을 지역단위로 알 수 있어 빠른 역학조사를 할 수 있다.

 KT는 그동안 유엔, 다보스포럼, 아시아통신협의체 등에 GEPP를 여러 차례 제안했지만 실제 동참한 곳은 케냐, 라오스 등 일부 국가에 머문다. 중국, 일본, 미국 등은 주저했다. 통신데이터 자체가 워낙 민감정보인 데다 프라이버시제도도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자존심 문제도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상황이 달라졌다. 적어도 글로벌 방역 시스템 공조가 왜 절실한지 깨닫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나라별로 따로 방역체계를 갖추고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와 같은 비상시 일부 데이터만 공유한다면 어떨까. WHO 사무총장이 팬데믹 선언 후 강조한 것처럼 코로나19는 과학기술에 대한 지구 공동체의 신뢰와 연대의 시험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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