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와 매크로, BTS와 독립선언서!

손선영(소설가) ize 기자 2020.03.1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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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조선 중기 문신 김상헌의 시조를 빌자면, 2020년 오늘은 ‘날이 하수상하다’. 코로나19가 불러온 국가적 파장은 이제 재난 수준에 달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텐트를 치고 밤샘도 불사하는 상황은 전시를 방불케 한다.

마스크는 코로나19가 불러온 국난의 상징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아우성을 지른다. 마스크를 내놓으라고. 하루 1.000만 장의 생산량으로 5200만 명에 달하는 국민 모두에게 일회용 마스크를 ‘입에 달게’ 하는 일은 그 자체로 구조적 모순을 부른다. 아쉽지만 그게 현실이다.



얼마 전 뉴스였다(3월 5일).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려 무려 9,000장이 넘는 마스크를 사재기한 20대 A씨가 적발됐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A씨는 2배로 판매한 정황도 드러났다. 마스크로 국론이 분열되고 정쟁이 심화하는 시점에 참으로 판박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매크로! 일반 국민이라면 듣거나 보지도 못할 프로그램이다. 소위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을 성취하는 자본 집약 산물의 정점이다. 최근에는 정치에도 이용되어 매크로 프로그램의 위력을 과시했다. 물론 우리는 경험칙으로 미루어 짐작한다.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라는.



판박이는 다른 곳에서도 벌어졌다. 바로 음원 시장이었다. 알고도 쉬쉬했고, 몰랐다면 이상했다. 여기에 불씨를 놓은 이가 박경이었다. 그는 대중 앞에서 잔다르크를 자청했다. 후폭풍은 만만치 않았다. 심지어 지상파의 고발 프로그램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내용 중에는 매크로 프로그램이 마치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음원을 사재기했다.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고는 하나, 그 모습은 압도적이었다. 누군가는 경악했고, 누군가는 기다렸다는 듯 억눌렀던 심정을 토해냈다. 박경이 지목한 대부분은 관련을 부인했고, 그들 스스로 수사를 촉구했다. 그러나 고발 프로그램에 나왔던 매크로 업자는 당당히 말했다. 아무리 수사해도 자신들을 잡을 수 없을 거라고.

최근 BTS가 신보를 내놓았다. BTS의 신곡 ‘ON(온)’은 시쳇말로 서버를 터뜨렸다. 레트로 단어 ‘길보드’처럼 가는 곳마다 이들의 노래가 들린다. 특히 유튜브에 공개된 뮤비 속에서 이들의 모습은 장관이었고, 화려했으며, 군무는 새로웠다. 무슨 말로 이들을 수식할 수 있을까?

모자란 단어로 이들을 문자화시킨다면, ‘20세기에 비틀스가 있었다면, 21세기에는 BTS가 있다!’라는 정도. 그리고 비틀스가 20세기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었다면 부디 이들 BTS가 21세기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었으면 하고 바랄 따름이다. 최대한 아름답게, 누구보다 멋있게, 그리고 어느 가수들보다도 오랫동안!


BTS의 흥행 뒤에 가려진 뉴스 몇 꼭지가 떴다. 매크로 따위의 도움 없이 정정당당하게 이뤄낸 결과라는 요지의 기사였다. 그렇다. 이들의 인기는 조작이 의심되는 몇몇 국내 순위가 아닌, 빌보드를 필두로 거의 모든 전 세계의 차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어떻게? 정정당당하게.

우리는 첨단사회, 선진 국가를 꿈꾸었다. 나날이 발전했다. 심지어 변화와 개혁마저 꿈꾸었다. 그런 중에 작지만 소중한 원칙이 치이고 바래졌다. 바로 ‘정의’이다. 사전은 정의正義를 이렇게 설명한다.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바른 의의.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라고. 나는, 그리고 우리는, 조금 편하고 더욱 빠르기 위해 정정당당, 즉 정의를 망각하고 살지는 않았을까.

며칠 전이었던 3월 1일, 이를 더 거슬러 101년 전 민족대표가 외친 ‘독립선언서 공약 3장’에는 이런 외침이 적혔다.
'모든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며,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오늘도 누군가는 마스크가 아닌 BTS의 ‘ON’을 ‘입에 달고’ 살지 모른다. 비록 마스크가 불러온 부박한 현실에 우리가 가로놓였다 할지라도 BTS가 외치는 것처럼 세상을 정정당당하게 ‘ON’해야 한다. 매크로 따위로 ‘OFF’가 되는 세상이 아니라.

손선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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