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보카도, 퀴노아…식품사기에 가까운 ‘슈퍼푸드’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20.02.2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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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식사에 대한 생각’…세계는 점점 부유해지는데 우리 식탁은 왜 갈수록 가난해지는가

아보카도, 퀴노아…식품사기에 가까운 ‘슈퍼푸드’


요즘 식탁에서 포도를 먹어 본 사람은 안다. 입에 넣었을 때 씨가 없다는 사실에 편안함을 느끼고 전에 먹던 포도보다 훨씬 달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낀다. 씨 없는 포도가 대세가 되어 씨를 뱉어내야 하는 끔찍한 수고에서 벗어난 게 고작 20년 남짓이다.

오늘날 포도가 예외 없이 단 것은 자몽이나 핑크레이디 등 현대 과일처럼 포도 역시 달콤한 음식에 길든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재배되고 숙성되기 때문이다.



달다고 영양소가 적은 건 아니지만, 쓴맛이 제거된 현대과일은 식물영양소가 적게 들어있다. 과일과 채소가 건강에 이로운 것은 바로 식물영양소 덕분인데, 청포도는 대부분의 식물영양소가 씨에 들어있어 씨 없는 청포도가 주는 건강 기대효과는 미미하다.

우리는 현재 2000년 전 로마 황제나 먹을 법한 귀한 포도를 1년 내내 먹을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50년 전 만해도 특정 국가에서 자라고 특정 시기에만 먹을 수 있었던 포도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재배되고 사시사철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계 대부분이 사람들의 삶은 점점 나아지는데, 식단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식생활에 담긴 씁쓸하고 달콤한 역설이다. 몸에 해로운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것이 자유로운 현대사회에서 살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처럼 보일 정도다.

고기 아니면 채소, 탄수화물 아니면 지방, 슈퍼푸드 아니면 정크푸드…. 우리는 왜, 어떻게 지금처럼 먹게 됐을까. ‘포크를 생각하다’ ‘식습관의 인문학’을 쓴 저자는 이번에 우리 식사의 명암을 집중 조명한다. 혁명에 가까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한 식문화와 식산업 속에서 음식이 우리 몸과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다양한 사례와 통계를 통해 보여준다.

우리는 어느새 눈앞에 있는 음식을 잘 알아보지 못하게 됐다. 우리 문화가 권하는 음식 대부분이 겹겹의 포장지 속에 감춰져 있기 때문.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 모르게 됐을 뿐만 아니라 식사 방법에 대한 오랜 규칙 또한 잊어버렸다.


과거에는 서로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음식을 먹는 것이 인간 존재에 관한 당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비슷한 재료로 만든 비슷한 메뉴를 먹는다. 이를 ‘세계 표준 식단’이라고 부른다.

세계인들은 어디서든 유럽 축구를 보며 감자칩을 먹고 아침에는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디저트로 플레인 요구르트를 섭취한다. 전통적인 식단에서 세계화된 식단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는 데는 불과 두 세대밖에 걸리지 않았다.

음식 혁명 덕에 신선한 식재료를 구할 기회는 늘었지만 짭짤하고 기름진 스낵, 설탕을 입힌 시리얼, 한 번도 발효된 적이 없는 빵, 다양한 빛깔의 가당 음료 등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됐다.

이 과정에서 세계인들은 비만, 당뇨병, 심장병 같은 성인병으로 지구 곳곳에서 죽어가고 있다. 이는 풍요 속의 빈곤, 말하자면 ‘아보카도 치즈 토스트’ 같은 식생활의 결과다.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는 오로지 개인의 욕망이나 요구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의 욕망조차 우리를 둘러싼 세계, 즉 우리가 공급받는 식품의 양과 가격, 광고를 통해 주입받는 음식 이야기에 따라 형성된다. 인간의 본능을 이용해 더 많은 자극적인 음식(당분, 지방, 나트륨이 많은 음식)을 구입하도록 갖은 방법이 동원되면서 ‘쓰레기에 가까운’ 음식이 들어오는 것이다.

저자는 “서구인의 주식이자 삶의 질을 평가하던 빵이 이제 형편없는 값싼 공장제로 전락하는 등 건강을 고려한 음식이 아니라 간단하고 값싼 초가공식품이 범람하고 있다”며 “음식의 천국에 사는 듯 하지만 실제론 지옥에 빠진 것”이라고 지적한다.

식사 시간의 효율성도 음식을 가볍게 보는 시각을 부추긴다.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집단적 강박이 간식 소비를 늘리고 아침 식사를 간편식으로 바꾸게 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빈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일터에서 긴 식사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오늘날엔 점심시간을 쇼핑이나 운동, 잔업에 쓰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음식에 마땅히 써야 할 시간을 쓰지 않으면서 어떻게 TV 볼 시간은 내느냐”고 되묻는다.

문제는 또 있다. 짧은 시간 더 많은 영양소를 섭취해야 한다는 강박이 수많은 ‘슈퍼푸드’를 탄생시켰다. 퀴노아, 아보카도, 코코넛워터,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 글루텐 프리…. 이름도 복잡한 불가사의한 식품이 전문가 입을 통해 전해지면서, ‘효율적 영양식’의 메카로 떠오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슈퍼푸드들이 너무 비쌀 뿐 아니라 식품 사기에 가깝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저자는 우리가 구매하는 다른 물품과 마찬가지로 음식을 시장 원리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는 개인의 문제지만, 국민의 식습관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라며 “개인의 ‘선택’보다 ‘시스템’의 문제로 이 모든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식사에 대한 생각=비 윌슨 지음. 김하현 옮김. 어크로스 펴냄. 516쪽/1만7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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