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상식의 무지함과 삼성의 위기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0.02.1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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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사회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Q: "넘버쓰리(No.3)죠?"
A: "아닌데요!"
Q: "회사 사장이면, 회장, 부회장 다음 세번째 힘 있는 자리 아닌가요?"
A: "아뇨. 삼성전자에는 저 말고도 사장이 19명 정도 더 있는데요."
Q: "그렇게 많아요?"

2017년 국정농단 특검 조사 과정에서 수사검사가 삼성전자의 모 사장에게 던진 질문이다. 넘버3 정도 되는 사람이 몇백억원이 움직인 그런 일을 왜 모르느냐며 묻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다.



당시 삼성전자에는 이건희 회장 아래 부회장이 4명, 사장이 20명 있었다. 자기 일도 바쁜데 다른 사장들이 뭘 하는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몇백억원이 오갔는데 상식적으로 윗선이 몰라요? 얘들 껌값도 아니고…"라고 물으면, 상식적으로는 모를 수 없지만, 특별한 기업 입장에선 '모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일례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사장)이 윗선인 부회장이나 회장의 결재 없이 독자적으로 결재할 수 있는 금액이 당시 3000억원 정도 됐다.

3000억원이면 큰돈이지만, 반도체 라인에 투입되는 극자외선(EUV) 장비 1대 값에 불과하다. 삼성전자 연간 매출의 0.1% 내외(약 3000억원)로 적은 돈이다. 겨우(?) 몇백억원의 처리는 오히려 모르는 게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상식이다.

지난해 12월 삼성전자서비스 하청 노조 활동 방해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지난 금요일(14일) 의장직에서도 물러났다. 당시 구속사유는 직접 보고받은 것이 아닌 '참조' 첨부로 전달받은 노사 관련 문건을 받았다는 것 때문이다.


2013년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경영지원실장: CFO)이 챙기는 국내 종업원만 10만명이고, 해외까지 합치면 30만명이 넘었다. 이 당시 이 사장에게 그 많은 업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고 묻자 "위임을 하지 않으면 못한다"며 위임 방법을 상세히 기자에게 설명해준 기억이 난다. 그게 기업의 현실이다.

재판부는 관리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고 했지만 글로벌기업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라는 지위를 감안할 때 대법원 확정 전까지는 방어권 보장과 함께 기업활동을 하면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과잉금지 원칙'을 지키는 것이었다는 생각이다.

이 의장이 사임의사를 밝힌 날 검찰은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사장도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해 소환 조사했다. 합병 당시 미래전략실 인사지원팀장이었던 정 사장은 전략팀이 맡은 합병과는 큰 관련이 없었다. 아니라고 해도 검찰은 상식적으로 알지 않았겠느냐며, 삼성의 거의 모든 최고경영자들을 불러서 조사 중이다.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토 아인슈타인은 "상식은 18살때까지 후천적으로 얻은 편견의 집합체다"라고 말했다. '시간'의 상식을 뛰어넘은 천재의 지적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기업인들의 말이 상식적으로 들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유사 이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삼성전자와 같은 큰 기업이 탄생한 적이 없었다. 그 여정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그 누구도 상식적인 경험이 없다.

당사자들의 얘기를 '비상식적'이라고 무시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삼성이 2017년부터 각종 재판에 얽힌 지 벌써 4년째다. 상식적으로는 이미 무너졌어야 할 시간이지만 잘 버티고 있다. 편견에 찌든 상식보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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