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을지면옥 "원형보존 거부"…박원순표 재개발 '제동'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최동수 기자 2020.02.07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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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을지면옥 "원형보존 거부"…박원순표 재개발 '제동'


을지로 세운3구역에 있는 유명 노포(老鋪·대대로 내려오는 음식점) '을지면옥'이 현재 점포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는 ‘보존’ 형태의 재개발에 반대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초 박원순 서울시장이 을지면옥 등 노포 보존을 이유로 세운 재개발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뒤 1년 넘게 사업이 표류 중이란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을지면옥 "원형 보존 거부, 단독 건물에 입주 희망"
6일 서울시와 중구청에 따르면 을지면옥은 최근 지역 재개발 방식과 관련, “원형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는 세운 재개발 재검토 과정에서 을지면옥 측에 원형 보존안을 제시했는데 을지면옥은 이를 반대한 것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을지면옥에서 서울시의 보존 제안에 동의하지 않았다"며 "을지면옥에서는 재개발을 진행하면 새로운 단독 건물에서 계속 영업하는 방법을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을지면옥이 그동안 영업한 장소의 특수성을 중시할 뿐, 노후화된 건물 자체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을지면옥이 원형 보존안에 대해 반대의사를 밝히며 결국 을지면옥과 서울시, 사업 시행사 등 을지면옥을 둘러싼 이해관계자 모두 다른 입장에 놓이게 됐다.


서울시와 중구청에 따르면 세운 3-2구역 사업시행사 한호건설은 을지면옥에게 새 건물의 점포로 들어오는 방안을 제안했었지만 을지면옥은 단독 건물에서 영업을 해야 한다며 제안을 거부했다.

[단독]을지면옥 "원형보존 거부"…박원순표 재개발 '제동'
재개발 찬성 을지면옥, 입장 바꾼 이유는
결과적으로 박 시장이 당사자 입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사업시행인가 등 정상적인 절차를 밟고 있던 재개발 사업을 중단시킨 셈이 됐다.



박 시장의 재검토 발언 이전까지 을지면옥이 속한 세운 3-2구역(시행면적 4874㎡)은 토지주 75% 이상 동의를 얻어 재개발을 진행 중이었다. 2017년 중구청에서 사업시행인가를 받았고 이후 토지보상을 거쳐 관리처분인가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을지면옥 측은 돌연 2017년 7월 3-2구역 사업시행인가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최초 일부 언론에선 철거 방식의 재개발을 반대한 이유로 봤지만, 토지보상금에서 비롯된 갈등이었던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세운 3-2구역 토지주모임에 따르면 을지면옥 이윤상(93) 선대 사장은 재개발 사업 초기 단계인 2006년부터 줄곧 찬성했다. 그와 현재 을지면옥을 운영하는 아들 이병철 대표는 모두 2014년 정비사업 계획서에 직접 서명했다.



을지면옥 소유주인 이병철씨와 부친 이윤상씨가 과거 세운3구역 재개발에 찬성했다는 내용의 정비사업계획동의서. /자료=세운3구역 중소토지소유자 모임을지면옥 소유주인 이병철씨와 부친 이윤상씨가 과거 세운3구역 재개발에 찬성했다는 내용의 정비사업계획동의서. /자료=세운3구역 중소토지소유자 모임
하지만 토지보상 협의가 어긋나자 을지면옥은 재개발 반대로 돌아섰다. 이들과 협상했던 신종전 한호건설 회장은 "당초 을지면옥 땅 소유주와 평당 5000만원 중후반대에서 보상가를 협의했는데, 3-2구역 사업시행인가가 결정된 2017년 4월 이후 평당 2억원을 요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을지면옥 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토지주모임에선 을지면옥이 세운 3-2구역에서 가장 많은 지분(약 11%)을 가지고 있고 재개발을 염두해 인근에 대체 사업장을 마련했다는 사실을 추가 공개하기도 했다.



대안 없이 허송세월…'토지주VS을지면옥' 갈등 불러
'노포 보존'을 이유로 사업을 중단시킨 박 시장이 수 개월간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자 세운3구역 토지주연합은 지난해 9월 법원 결정을 통한 강제 매입 절차에 들어갔다. 법원은 강제 매입을 전제로 토지매입 가격을 결정하는 절차를 밟고 있으며 3월쯤 철거가 진행될 전망이다.

그동안 보상 협의를 이어갔던 세운3구역 토지주모임과 을지면옥 측은 서울시 개입 이후 갈등이 커져 협상을 중단한 상태다.

결과적으로 서울시는 노포 보존이란 명분도 살리지 못했고, 을지면옥에도 외면받은 처지가 됐다. 을지면옥이 원형 보존안에 반대의견을 낸 이상 현재로서는 서울시에서는 기존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만약 을지면옥이 마음을 바꿔 원형 보존에 찬성한다면 현재 정비구역에서 을지면옥 필지만 따로 떼어내 정비구역을 해제하는 정비사업계획 변경을 추진해볼 수는 있다. 하지만 이 방안도 실현될 가능성이 낮다.

한편 을지면옥 측은 중구청에 전달한 입장이 사실이 맞느냐는 질문에 명확한 입장 공개를 거부했다. 을지면옥을 공동 운영하는 홍성숙 대표는 기자와 통화에서 “재정비 계획에 관심이 없다. 말하기 싫다”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결국 노포 보존 취지가 사라진게 아니냐는 지적에 "원형을 유지하는 것만 보존으로 볼 수 없다"며 "철거는 하더라도 을지면옥이 있던 자리의 흔적은 남겨달라고 토지주모임에 요청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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