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동물학대'로도 감옥 갑니다

머니투데이 김영상 기자 2020.01.2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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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이지혜 디자인기자./삽화=이지혜 디자인기자.


"피고인은 '토순이'가 주인을 잃어버린 강아지로 생각하고 자신이 키우기 위해 잡으려다가 이에 저항하자 죽였다. 범행 수법이 매우 잔혹하고 생명 경시 태도가 여실히 드러났으며 범행 동기에도 비난의 여지가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 망원동에서 반려견 '토순이'를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징역 8월을 선고받은 20대 남성에 대한 판결문 중 일부다. 동물을 학대해 죽음에 이르게 한 피고인에게 법원이 이례적으로 실형을 선고한 것이다.



최근 2달 사이 동물학대 범죄로 3건 이상의 실형 사례가 나올 정도로 법원이 잇따라 처벌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반려동물 인구가 1500만명에 달할 정도로 늘어나면서 사회적 인식도 달라진 만큼 생명존중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그동안 동물학대는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이 나오면서 현실적으로는 동물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실제로 강아지를 달리는 차에 매달거나 고양이를 고층 빌딩에서 던진 학대 사건에서도 대부분 벌금형에 그쳤다.



동물보호법 위반 사건 접수 건수는 2013년 164건에서 지난해 632건으로 4배 가까이 늘었지만 2017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동물학대 사건 중 가해자가 구속된 경우는 단 1건에 그쳤다. 현행법상 동물을 학대하는 행위를 할 경우 최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법원에서 조금씩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른바 '경의선 고양이 자두'를 살해한 30대 남성과 지난해 6월 수원에서 고양이 2마리를 이틀에 걸쳐 죽인 50대 남성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모두 동물을 잔혹하게 살해했다는 점이 중요한 양형 사유로 반영됐다.

동물 학대를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형량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두 살해범의 처벌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1만명이 넘는 시민이 참여했다. 동물자유연대는 "동물학대 사건이 반사회적 범죄로서 엄히 처벌돼야 한다는 시민의식 변화와 이에 기반한 동물단체, 시민 활동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지적한다. 동물보호법 위반 형량이 낮아 그 자체로는 강한 처벌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 대표적인 문제다.

최근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 역시 모두 타인의 재물을 손상했다는 재물손괴 혐의가 같이 적용됐다. 징역 3년 이하 혹은 7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규정한 재물손괴죄가 동물보호법 위반보다 형량이 무겁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주인이 없는 동물을 학대했을 때는 이번처럼 강한 처벌을 내리기 쉽지 않다는 뜻이 된다. 토순이와 자두 재판에서 학대 여부보다 이들이 주인이 있는 동물인지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던 것도 이런 이유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정부도 2021년부터 동물보호법 위반 처벌 수위를 높이고 동물학대 행위도 세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상해를 입히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으로 구분하고 처벌 수위도 높인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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