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J 따라서 크게 '한입만'"… 폭식 조장하는 먹방?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2020.01.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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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사진=이미지투데이


과거 떡볶이는 그 자체로 먹거나 순대, 튀김 등과 조합해 먹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요즘은 그렇게 하면 유행에 뒤떨어진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요샌 배달 떡볶이에 설탕 뿌린 핫도그를 토핑으로 먹거나, 매운 떡볶이에 쟁반 짜장을 부어 함께 섭취하는 게 트렌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여러가지를 한 입에 잔뜩 넣고, 한번에 모두 맛보는 게 요즘 진정한 맛을 느끼는 방법이다.



11일 다수의 유튜브·아프리카 TV BJ(Broadcasting Jockey)들의 먹방(먹는 방송의 줄임말·출연자가 직접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청자의 관심을 끄는 방송 프로그램) 애청자들에 따르면 최근 SNS(사회연결망서비스) 등을 중심으로 한 음식 소개 콘텐츠나 먹방의 유행으로 음식을 더 맛있게, 더 많이 조합해먹는 방법이 공유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이 먹을 경우 칼로리, 포화지방, 나트륨 등을 일반적으로 권장되는 섭취량을 넘겨 섭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먹방이 '폭식'(暴食)을 조장하는 분위기가 생겼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폭식 조장하는 꿀조합
유명 먹방 BJ들은 먹방을 통해 '꿀조합'(함께 먹으면 더 맛있는 조합)을 소개하고 있다.

BJ '입짧은 햇님'은 배달 떡볶이에 피자를 얹어 함께 먹는 것을 최고의 맛으로 꼽았고, 홍사운드는 배달 떡볶이에 당면사리를 넣고 동시에 주먹밥을 함께 먹는 먹방을 선보였다. BJ '밴쯔'는 짭짤한 쟁반짜장 위에 매운 배달 떡볶이를 섞어 먹거나, 치킨 브랜드에서 나온 치즈볼을 수십개 주문해 배달 떡볶이에 찍어 먹는 것을 즐긴다.

BJ 프란은 '꿀조합'으로 유명한 먹방 BJ다. 그는 △호떡으로 소시지를 감싸 '호또그' 만들어 먹기 △크림이 가득한 콘치즈를 만들어 핫도그를 찍어 먹기 △피자에 양념치킨을 올려 상추처럼 싸먹기 △따뜻한 생크림에 몰티져스(초코볼)와 커스타드를 곁들여 먹기 △크림치즈에 김치볶음밥 올려먹기 △불닭볶음면에 자메이카 통다리 치킨 함께 먹기 △크로아상에 누텔라와 생크림 발라 먹기 △ 찹쌀 도넛에 초코시럽 뿌려먹기 △까르보나라 파스타를 왕돈까스에 얹어 먹기 △김밥에 김치전 반죽 묻혀서 구워먹기 등의 먹방을 선보였다.


이들은 이 같은 먹방 한번에 수천 칼로리부터 수만 칼로리를 섭취하고, 적게는 3인분부터 많게는 30인분 넘게 음식을 먹는다. 많은 음식을 먹어치우기 때문에 이들은 최대한 입을 벌려 많은 양을 밀어 넣는다.

SNS(사회연결망서비스)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배달 떡볶이에 설탕을 뿌린 핫도그를 토핑으로 얹어 함께 먹는 사진 /사진=SNS인스타그램SNS(사회연결망서비스)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배달 떡볶이에 설탕을 뿌린 핫도그를 토핑으로 얹어 함께 먹는 사진 /사진=SNS인스타그램
자연히 콘텐츠는 자극적이다. 마치 포르노처럼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먹방엔 '푸드포르노'(food porn)라는 이름도 붙었다. 푸드포르노는 1984년 영국 저널리스트 로잘린 카워드의 '여성의 욕망'이란 책에서 처음 등장하는 용어로, 먹는 장면을 보며 식욕을 대리만족 느낀다는 뜻이다.

'나도 따라해볼까?'…푸드포르노의 그림자
포르노그라피적 먹방이 정말 문제인 건, 점차 이를 따라하게 된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먹방 애청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먹방을 따라하며 폭식이 일상화됐다고 토로했다.

의료계 종사자 이모씨(31)는 "먹방을 즐겨보는데, 원래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먹방에 떡볶이가 자주 메뉴로 등장하다보니 나도 즐겨 찾게됐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떡볶이와 치킨, 쟁반짜장을 시켜 BJ들처럼 먹은 날이 있는데 속이 부대껴서 토까지 했다"며 "다신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취준생 A씨도 먹방 시청 이후 음식 섭취량이 늘었다고 말했다. A씨는 "본래 적은 양의 밥을 느리게, 꼭꼭 씹어먹는 편이었는데 먹방 스타들이 수저에 음식을 잔뜩 올려 한입에 먹는 걸 본 뒤 그대로 따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때문인지 최근 소화가 잘 되지 않는 느낌이 난다"고 덧붙였다.

앞서 정부는 이 같은 먹방을 폭식 조장 미디어로 보아 규제에 나섰다. 2018년 6월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증진정책심의위원회를 개최해 '국가 비만 관리 종합대책'을 확정, 그 일환으로 폭식을 조장하는 먹방 등에 대해 모니터링 체계를 지난해까지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정부의 '먹방 가이드라인' 정책 구상안이 발표되자마자 비판 여론이 줄을 이었다. 비만 대책은 필요하지만, 먹방 규제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만 방지를 위해 먹방 시청을 금지한다는 건 국가주의적 발상이고, 먹방 시청과 폭식 사이 상관관계도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다.

예컨대 김병준 당시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먹방' 때문에 뱃살이 나온다고요? 그걸 규제한다는 정부가 국가주의 정부가 아니면 대체 뭡니까"라면서 "지금 시대는 개인과 기업은 자율적이어야 하고 자유로운 시민이 국가의 모세혈관이 돼야 하는 시대입니다. 남이 뭘 먹든 말든 놔둬야 합니다"라며 비판했다.

다시 힘 받는 '먹방 규제론'
하지만 먹방이 점차 더 자극적으로 진행되면서 2년 전 정부가 먹방 가이드라인 정책 구상안을 발표했던 때와는 여론이 변화했다.

서울대병원 김계형·강은교·윤영호 교수팀이 지난해 4∼5월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해 6월 국제학술지 'BMC 공중보건'(BMC Public Health)을 통해 발표한 결과 응답자 51.9%가 먹방에 대한 규제에 찬성했다.

유튜브, 아프리카TV 등 플랫폼에 별풍선이나 후원금액을 보내곤 했던 '먹방'의 팬, 직장인 신모씨(30)는 "BJ들 중 방송을 위해 많이 먹고 바로 토하는 분들이 꽤 된다고 들어 요즘은 먹방을 덜 본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아프리카TV 카테고리에서 먹방을 선택하면 '과식은 금물, 적당히 드세요'라는 안내가 나오는데, 먹방이 자극적인 데다가 따라할 소지가 있어 어느 정도의 규제는 필요해보인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이유에서 정부도 먹방에 대한 권고안을 세우려고 고심 중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전문가에 의뢰해 초안을 준비 중으로, 현재 기본 연구는 마무리 돼 이번달부터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다. 이를 토대로 오는 3월 내에 먹방 권고안을 확정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권고안이기 때문에 이를 따르지 않아도 처벌하는 등의 제재는 없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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