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태어나자 "두 배 행복하고 20배 힘들다"

머니투데이 세종=박경담 기자 2020.01.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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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년생 아이를 두게 된 아빠의 육아 분투기②

짧은 독박육아 기간 동안 퇴근, 1호 할머니 댁 방문, 아내 면회를 모두 소화하면 1호를 너무 늦게 재우는 거 아닌가 걱정이 들 법도 하다.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세종시에 살고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시간은 금이 아니라 다이아몬드였다. 시간이 풍족해야 여유 있는 출근 준비, 아이와 함께하는 저녁, 병원 등 긴급 상황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아빠의 '독박육아' 시작…"주말은 지옥이다")

'시간 부자'들의 도시, 세종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민들이 출근을 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민들이 출근을 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세종시는 시간 부자들의 도시다. 집에서 고정 출근하는 출입처까지 자동차로 10분 안팎 걸린다. 어린이집, 1호 할머니 댁도 모두 근방이다. 반면 서울 직장인 평균 출퇴근 시간은 51분(통계청)이다. 세종 시민이 서울 시민보다 육아와 회사 생활에 쓸 수 있는 시간이 하루 80분, 1년(52주 기준)으로 환산하면 8.6일 더 많다는 의미다.



정부 산하기관에서 일하는 아내 덕에 이용하고 있는 정부청사 어린이집도 육아 스펙을 높였다. 가령 지난달 크리스마스 즈음 가정형 어린이집은 겨울방학을 시작해 직장인 엄마·아빠의 휴가가 불가피했다. 하지만 정부청사 어린이집은 보육 공백이 따로 없었다. 또 보육 수준, 음식, 시설 등도 다른 어린이집을 보내는 학부모가 부러워하는 점이다.

저출산 해법 사례로 세종시가 많이 등장한다. 맞는 말이다. 일부 지자체는 출산 가구에 돈을 왕창 주는 저출산 제도로 주목 받았다. 부모 입장에서 보니 당장은 좋지만 길게 봐선 큰 도움이 안되는 정책이다. 가장 필요한 건 세종시처럼 회사 생활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시간 보장과 믿고 맡길 만한 어린이집이다.



다른 부모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지난 2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가장 중요한 저출산 해소정책' 조사결과에 따르면, 아동수당·보육시설·돌봄정책 등 양육 부담 완화 정책(26.9%)이 1순위였다. 노동시간 단축 및 육아휴직 등 가정친화적 노동정책(18.6%)을 가장 필요한 정책이라고 답한 응답비율은 세 번째로 높았다.

5박 6일만에 가족 재결합
아내가 산후조리원에 있는 동안 아들 1호와 저녁 시간을 보내기 위해 키즈카페 등 매일 다른 곳을 찾았다. 사진은 고용노동부 기자단 송년회에 참석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오른쪽)과 아들 1호./사진=이원주 고용노동부 홍보기획팀장아내가 산후조리원에 있는 동안 아들 1호와 저녁 시간을 보내기 위해 키즈카페 등 매일 다른 곳을 찾았다. 사진은 고용노동부 기자단 송년회에 참석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오른쪽)과 아들 1호./사진=이원주 고용노동부 홍보기획팀장
일요일 아내는 산후조리원으로 이동했다. 우리 가족은 가족실에 머무르며 재결합했다. 육아에 쏠렸던 일과 생활의 균형도 점차 맞춰야 했다. 사실 1호를 낳으면서 가장 큰 변화가 생긴 건 일과 생활의 비중이었다. 아내와 둘이 지낼 때만 해도 취재원과의 저녁 자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1호가 탄생한 직후 '100일 금주'에 돌입했다. 곰이 웅녀가 되듯 100일 후엔 이전과 달리 저녁 약속을 조절하는 '새 사람'이 됐다.


아내가 2호를 임신하자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경우는 잦아졌다. 특히 회사 행사 참석이 어려울 경우 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내는 조산 위험이 있어 1호를 저녁 내내 혼자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괜히 찔렸다. 사람들이 '너만 애 키우냐'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진 않을지 의식했다.

회사 동료들은 기꺼이 배려해줬다. 하지만 주위의 안타까운 소식은 또렷하게 들렸다. 금융권 대기업에 종사하는 아내 친구는 출산 후 아이가 100일을 지나자마자 회사에 복귀했다. 육아휴직 1년을 모두 사용하면 원하지 않는 부서로 전출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아내 친구는 육아 치트키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아내 친구는 평일엔 남편과 떨어져 아이와 부모님 댁에서 지낸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면서도 주말에야 세 가족이 모이는 신세다. 아내 친구 부부 모두 야근이 잦은 상황에서 친정엄마에게 육아 출퇴근을 부탁하긴 너무 큰 부담을 지우는 것 같아 내린 결정이었다.

육아사회, 사장님의 한 마디가 필요합니다
아빠 육아휴직 등 모성보호제도 이용 추이/자료=고용노동부아빠 육아휴직 등 모성보호제도 이용 추이/자료=고용노동부
사실 육아와 관련한 제도는 꾸준히 보완되고 있다. 가령 아빠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육아휴직급여를 더 주고 지난해 10월부턴 배우자 유급 출산휴가도 3일에서 10일로 늘어났다. 하지만 현 제도만이라도 직장인이 제대로 누리고 있는지 생각하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고용노동부가 육아휴직자 경험자를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를 보면, 기업이 육아휴직 제도 개선을 위해 가장 노력해야 할 부분은 '최고경영자의 의지'라는 응답 비율이 가장 높았다. 회사 더 나아가 사회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의미일테다. 기업 대표가 '육아는 너의 권리이니 회사와 조율할 일이지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또 육아와 승진·평가는 무관하다'는 메시지를 직원에게 주면 우리 사회는 조금 더 전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네 가족은 집으로 돌아왔다. 1호와 2호의 공존도 시작됐다. 주변에선 조언이자 경고를 했다. 누구는 "둘 되면 훨씬 더 힘들겠지만 그만큼 행복해진다"고 했다. 다른 누구는 "딱 두 배 행복하고 20배 힘들다"고 했다. 가족이 하나 더 늘었으니 마음 먹기에 따라 행복은 더 커진다는 의미 아닐까 싶다. 요즘 행복은 나눌수록 커진다고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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