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사관 '제2 벵가지' 악몽 피했다…이란 "트럼프 무력해"

머니투데이 뉴욕=이상배 특파원 2020.01.02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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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시아파 민병대·지지자, 이라크 美대사관 진입 시도·화염병 투척 후 철수…2012년 벵가지서 리비아 대사 등 미국인 4명 사망

시위대가 이라크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 외벽에 불을 지르고 있다./ 사진=뉴스1(로이터)시위대가 이라크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 외벽에 불을 지르고 있다./ 사진=뉴스1(로이터)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관에 대한 친(親)이란 시아파 민병대와 그 지지세력의 공격이 이틀만에 끝났다. 미국이 이번 습격의 배후로 지목한 이란의 최고지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아무 것도 못할 것"이라고 조롱했다.

親이란 민병대·지지자, 美대사관 진입 시도·화염병 투척 후 철수
1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라크의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 '하시드 알사비'의 조직원과 지지자 수백명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바그다드 주재 이라크 대사관을 둘러싸고 시위를 벌이다 이날 밤 전원 철수했다. '하시드 알사비' 지도부의 철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번 시위를 주도한 하시드 알사비 산하 시아파 민병대 '카티이브 헤즈볼라'(KH)는 "우리는 하시드 알사비의 명령에 따르기로 했다"며 "우리는 누구도 하지 못한 어마어마한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했다.

최근 미군이 KH의 거점을 공습한 데 분노한 시위대는 이날까지 이틀에 걸쳐 미 대사관 앞에 모여 내부 진입을 시도하고 대사관 시설에 돌과 화염병 등을 던졌다. 보안 카메라와 창문 등 기물을 파괴하고 대사관 외벽에 반미 구호를 적기도 했다. 시위대 일부는 전날 해산하지 않고 대사관 앞에 천막 약 50개를 치고 밤샘 농성을 벌였다.



미 대사관 경비를 담당하는 미 해병대는 1일 오후 시위대 규모가 커지고 안내실 지붕에 불이 붙자 최루탄을 발사했다. 통신은 해병대의 최루탄 발사로 인한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전했다.

이후 이라크 군인과 연방 경찰, 대테러 병력이 미국 대사관 외벽을 지키며 시위대가 미국 대사관으로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이라크 군경과 시위대간 마찰은 없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미국 대사관은 검문소가 설치돼 외부인의 접근이 어려운 이른바 '그린존' 내부에 있지만, 이라크 군경은 전날 시위대가 미국의 공습으로 사망한 민병대원의 장례식을 끝낸 뒤 그린존으로 행진하는 동안 이를 막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1일 시위에도 뚜렷히 개입하지 않았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알자지라는 검문소에서 일반인 통행은 엄격히 제한된 상태이지만 하시드 알사비 조직원들과 지지자들은 통과시켜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 정부는 미국이 이라크 준군사조직을 공격한 것은 주권 침해행위라고 항의한 바 있다.

2012년 벵가지서 리비아 대사 등 미국인 4명 사망
한편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전날 이라크 주재 대사관이 공격을 받자 82공수사단 소속 병력 750명을 중동에 즉각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신속하게 추가 파병을 결정한 것은 '벵가지 사건'과 같은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벵가지 사건이란 2012년 9월12일 이슬람 무장세력이 무슬림 모독을 이유로 리비아 북동부 벵가지의 미국 영사관을 공격,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당시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 등 미국인 4명이 숨진 일을 말한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의 최대 외교 참사로 기록됐다.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은 2016년 대선에서 이 사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 진영의 혹독한 비판을 받아야 했다.

한편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바그다드 사태에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다"며 "그러나 첫째, 당신(트럼프 대통령)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둘째, 당신이 논리적이라면, 실제로 그렇지 않지만,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저지른 범죄가 두 국가로 하여금 당신들을 증오하게 만들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이라크 주재 미 대사관 습격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따른 반미 정서 때문이라고 주장한 셈이다

또 하메네이는 "우리가 만일 어떤 나라에 맞서기로 결정한다면 공개적으로 할 것이다. 누구든 우리나라의 이익을 위협하는 자가 있다면 우리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맞서 싸울 것"이라며 미국을 향한 항전 의지를 강조했다.

하메네이가 '공개적'이란 표현을 쓴 것은 지난달 27일 발생한 이라크 키르쿠크 군기지 로켓포 공격과 이라크 주재 미 대사관 습격의 배후에 이란이 있다는 미국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당시 로켓포 공격으로 미국 민간인 1명이 숨지고, 미군 4명이 다쳤다. 미국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지난달 29일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군사기지 5곳을 공습했고, 이 과정에서 민병대원 25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대의 미 대사관 급습을 놓고 배후로 의심되는 이란을 강력 규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이란은 미국의 도급 업자를 살해했다. 많은 이들이 다쳤다. 우리는 강력히 대응했고 항상 그렇게 할 것"이라면서 "지금 이란은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관에 대한 공격을 꾸미고 있다. 그들은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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