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해외선 시위한류…정작 한국은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2020.01.0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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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시위 한류’라 할만 하다. 해를 넘겨 이어지고 있는 홍콩 시위 현장에서는 군데군데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들린다. 자식들을 잃은 한국 어머니들의 노래라는 소개와 함께 한국어 가사로도 불려지는 것이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같은 후렴구가 대표적으로 가장 큰 호응이 따른다.

바다 건너 지구 반대편 칠레에서는 K팝이 시위 요인으로 지목됐다. 지하철 요금 인상 등으로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면서 APEC 정상회의 등 국제적인 행사까지 취소될 정도인 그곳이다.



칠레 시위의 최초 원인에는 ‘지하철요금 50원(30페소) 인상’이 자리했는데 시위 격화의 또다른 요인으로는 정부의 섣부른 판단도 작용했다. 정부가 최근 시위 관련 소셜미디어 등을 분석한 빅데이터 보고서에서 온라인상에서 시위에 주로 영향력을 미친 5개 그룹을 제시하며 그중 ‘K팝 팬들’을 포함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칠레 내무부는 보고서를 통해 “시위 전까지만 해도 이들(K팝 팬들)은 정치·사회 이슈에 낮은 관심을 보였다”며 “(시위 이후) 이들은 주로 정부의 사망자 통계에 대한 의심을 던지거나 인권 침해, 언론 탄압 및 침묵 등을 지적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가 알려진뒤 서민생활과 직결되는 곳에는 돈 50원도 아끼면서 정부가 여전히 헛된 곳에 세금을 쓰고 있다는 비난이 폭주했다. 칠레 야당 의원 마르셀로 디아스는 “세금을 엉뚱하게 썼다”며 “우리한테 필요한 건 정책이지 K팝을 범죄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고 꼬집기도 했다. 실제로 K팝 팬들로 추정되는 여러 무리의 젊은이들은 거리로 쏟아져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시위와 K팝의 원조이자 본거지라는 대한민국의 과거로 시계추를 돌려보면 몇몇 시위에서 ‘촛불시위라면 양초를 사는데 드는 돈은 어디서 나왔는지 추적하라’고 했던 것과도 겹쳐진다. 홍콩 시위에서 불려지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의 배경이 된 남도의 한켠 광주에서는 여전히 수십년전 것으로 추정되는 백골이 쏟아져 나온다. 아직 그들이 누구인지, 왜 그렇게 묻혀질 수 밖에 없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대규모 군중 시위의 모범으로까지 평가받게 된데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냈다는 한국의 위상변화가 자리한다. 사실 과거에는 대한민국하면 떠올려지는 이미지가 한국전쟁의 폐허나 어깨띠나 머리띠를 두른 시위대와 이를 진압하는 경찰이나 군병력과의 극한 대치가 일반적이었다. 그랬던 것에서 탈피하게 된 데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이어진 평화적이고 수평적인 정권교체, 2016 ~ 2017년 탄핵 정국을 관통하는 천만명 촛불시위 등이 자리한다.

영화 ‘캣츠’ 홍보를 위해 내한한 영화감독(톰 후퍼)은 우리나라를 찾은 계기로 “(내 감독작품인)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민중의 노래’를 한국에서 촛불 시위를 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부르는 장면을 본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같은 찬사는 이제 유효기간이 다 했다. 해를 넘겨 이어지는 광화문과 국회 주변의 시위 풍경에는 극심한 편가름이 자리한다. 시위대와 진압대열 쪽 젊은이들에게 서로 꽃을 달아주고 의견이 달라도 차분히 상대방 목소리에 경청하는 이들을 찾기는 쉽지 않다. 시위 한류는 적어도 현재의 한국에는 없다는 말도 된다.

새해에 또다시 밝은 아침을 기대한다. 피맺힌 투쟁의 흐름 속에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이 모든 이의 머리 위에 ‘편가름 없이’ 이글거리기(김민기 작사, 송창식 작곡의 노래 ‘내 나라 내 겨레’의 일부분)를 말이다. 마침 민중의 노래 한 대목도 꼭 같다. ‘심장 박동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릴 때/내일이 열려 밝은 아침이 오리라’ 다시 모두가 눈부셔하는 새해 아침이다.

배성민 문화부장 겸 국제부장 /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배성민 문화부장 겸 국제부장 /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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