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Eat]미국 밥도둑 스팸, 하와이선 '화폐'라고?

머니투데이 강기준 기자 2019.12.2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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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인싸'되는 '먹는(Eat)' 이야기]
美매출 5년 연속 신기록 세운 스팸
한국·하와이 등 전쟁 지역서 '문화'로

/사진=스팸 공식 SNS./사진=스팸 공식 SNS.


[인싸Eat]미국 밥도둑 스팸, 하와이선 '화폐'라고?
'뜨끈한 흰 쌀밥 위에 스팸 한조각'

한국인에겐 '밥도둑'으로 알려진 통조림 햄 '스팸(Spam)'이 올해 놀라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스팸을 보유한 미국 호멜푸드사가 올해 결산실적 발표에서 스팸 매출이 5년연속 신기록을 경신했다고 밝힌 것입니다.

웰빙이 대세가 되면서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작품에 등장했던 캠벨수프, 하인즈 케첩 등 오랜 전통의 업체들이 줄줄이 부진을 겪고 있는 데, 올해 82살인 통조림 햄은 여전히 홀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호멜푸드는 올해 매출이 전년보다 1% 감소했음에도 스팸이 주도하는 사업분야에서는 2%의 성장세를 나타냈습니다.



미국이 사랑하는 스팸
CNBC에 따르면 호멜사는 올해 미국에서만 스팸을 2억2000만달러(약2600억원)어치 판매했습니다. 2015년이후 약 3%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공식품이 전반적으로 하향세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기록입니다.

지난 9월엔 미국에서 시즌한정제품인 펌킨스파이스 스팸이 출시되자마자 '완판'된 데 이어 이베이 같은 온라인사이트에는 개당 25달러에 재판매 되는 등 인기몰이를 했습니다. CNBC방송에서도 진행자가 이 신상 스팸이 '얼마나 맛있는가'를 보여주겠다며 숟가락으로 파먹는가 하면, 자신의 커피 머그잔에 스팸을 넣어 먹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습니다.



스팸은 미국 통조림 햄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리서치업체 모닝스타는 스팸의 매출이 호멜 전체 매출의 4%에 불과하다고 추정하지만, 스팸이 미국 외에도 한국과 필리핀, 호주, 영국 등 세계 각국에서도 인지도가 매우 높아 호멜이 해외로 사업을 확장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CNBC는 최근 10년사이 미국내에서 한국계 미국인, 필리핀계 미국인 요리사들이 요식업계에 주목을 받으면서 이들이 식재료로 가끔 내놓는 스팸의 인기가 올라간 덕도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사진=스팸 공식 SNS./사진=스팸 공식 SNS.

'스팸'이 화폐로 통용되는 하와이
미국에서 스팸의 성장세에는 하와이가 가장 큰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하와이에서는 매년 수천명의 사람들이 모이는 '스팸 축제'가 열립니다. 와이키키에서 열리는 '스팸 잼 페스티벌'에는 스팸을 이용한 커리, 옥수수, 핫도그, 사탕, 무수비 등 스팸을 응용한 수많은 음식들이 팔립니다. 무수비는 일본식 초밥이 하와이로 넘어가서 탄생한 것으로 얇은 스팸 한장을 주먹밥 위에 얹은 뒤 김으로 감싼 형태입니다. 하와이에서 무수비는 편의점에서도 볼 수 있고, 학교 도시락으로 싸가기도 하고, 레스토랑 메뉴에도 있을 정도로 흔하고 인기있습니다.

/사진=스팸 잼 페스티벌 SNS/사진=스팸 잼 페스티벌 SNS
게다가 하와이는 최근 인구와 식당 모두 늘어나면서 미국의 다른 주들과 비교했을 때 식당들의 스팸 소비가 10배이상 높다고 합니다.

레스토랑 마카나의 셰프 조시 메디나는 CNBC에 "스팸과 밥의 조합은 천국에서 만든 맛"이라면서 "밋밋한 밥이 스팸을 만나면, 환상의 조화를 이뤄낸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하와이에서도 '밥도둑'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CNBC는 하와이에서는 유통업자들이 스팸을 화폐처럼 사용하고 있다고도 전했습니다. 한마디로 스팸이 하와이 경제와 문화를 모두 상징한다는 얘기입니다.

/사진=스팸 공식 SNS./사진=스팸 공식 SNS.
한국, 스팸 매출의 60%가 '명절선물'
한국은 스팸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 중에 하나기도 합니다. 호멜과 기술제휴 및 로열티 계약을 통해 스팸을 생산하고 있는 CJ제일제당은 지난 1월 스팸 출시 32년만에 누적 매출액이 4조원을 넘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여태껏 팔린 스팸만 12억개, 한국인 한 명당 스팸 24개를 먹은 셈입니다. 연매출도 4800억원까지 올라섰습니다.

재밌는건 스팸 판매량의 60%가 명절기간에 주고받는 선물세트에서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뉴욕타임스(NYT)조차 한국의 남다른 스팸 사랑을 조명하면서 "스팸은 백화점에서 수입산 와인, 버섯, 정육 등 고가 선물세트와 나란히 진열될 정도"라고 전했습니다.

한국 같은 경우 스팸 매출이 호멜사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진 않습니다. 호멜은 1986년부터 CJ와 스팸 기술제휴와 로열티 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CNBC는 전세계에서 이렇게 스팸의 인지도가 높아지는건 결국 해당국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오면서 다시 스팸 매출에 기여하는 효과를 낳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스팸을 먹는 한국인이 미국에 여행을 오거나 이민을 오면 결국 미국 스팸 매출에 다시 기여한다는 얘기입니다. 호멜 역시 "아시아와 히스패닉 소비자들이 미국 스팸의 주요 고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전쟁 구호식품이었던 '스팸'
/사진=스팸 공식 SNS./사진=스팸 공식 SNS.
하와이와 한국 등지에 스팸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건 전부 전쟁의 역사 때문입니다.

스팸은 1937년 미국 식품회사 호멜 푸드가 개발해 탄생했습니다. 호멜은 1891년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설립된 육가공업체였습니다. 20~30년대는 통조림 음식이 각광을 받는 시대였는데, 당시 육류 가격이 요동을 치는 시기였고, 노동자들의 파업도 빈번했습니다.

이 때문에 호멜은 인기가 다소 떨어지는 데다가 가격도 싼 돼지 목심 등의 부위를 이용해,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데다가 정육점 등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할 수 있는 통조림 고기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스팸이란 이름은 100달러의 상금을 걸고 사내 공모를 진행했는데, 여기서 '양념된 햄(Spiced Ham)'을 줄인 말이 나오면서 채택됐습니다.

'스팸의 일생'을 집필한 캐롤린 와이먼은 "크기를 줄이기 위해 돼지 어깨부위를 갈아 통조림 안에 꽉 채웠다"면서 "출시되자 마자 미국의 17%가 스팸을 점심이나 간식으로 먹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스팸은 출시 3년만에 도시에 사는 미국이 70%가 구입할 정도를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무렵 터진 2차 세계전쟁은 스팸이 전세계로 뻗어나가는 역할을 했습니다. 스팸 한 캔에는 42g의 담백질이 함유돼 있는데, 미국과 영국이 군용 식품으로 저렴한 데다가 보관도 용이한 스팸을 단백질 보충원으로 선택한 것 입니다. 이후 스팸은 미군 주둔지였던 미국 하와이와 괌, 일본 오키나와 등지에 퍼졌고, 자연스레 이들 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았습니다. 전쟁 동안에만 호멜은 일주일엔 1500만캔, 그러니까 한달에 6000만 캔의 스팸을 해외로 보냈습니다.

미군은 전쟁으로 피해를 입고 식량난에 허덕이는 국가들에게 구호물품으로 스팸을 나눠주기도 했는데, 한국은 1950년 한국전쟁 때 미군을 통해 처음 스팸을 접하게 됩니다. 당시만 해도 고기가 귀했던 시절이라 부유층이나 미군부대와 연줄이 있는 사람만이 누리는 특별한 음식이었습니다.

CNBC는 현재 스팸 최대 소비국가가 미국, 한국, 호주, 영국, 그리고 홍콩, 필리핀 등이라고 소개했습니다. CNBC는 한국에선 스팸이 들어오자마자 '부대찌개(budae jjigae)'라는 음식이 탄생했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사진제공=CJ/사진제공=CJ
스팸의 미래는?
호멜은 전쟁 구호물품으로 시작해 각국의 문화가 된 스팸의 씨앗을 거두려고 합니다. 한국처럼 직접적으로 매출은 없더라도 각국에서 인지도를 쌓으면서 신시장 개척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호멜은 2017년 역사적으로 스팸과 별 관련이 없는 중국 진출을 선언하고, 중국 자싱공장 생산량을 3배로 늘리기로 하는등 앞으로 중국에 집중한다는 계획입니다.

현재 육가공식품의 대세는 '고기 없는 고기' 대체육입니다. 오로지 식물성 재료만 들어가 실험실에서 진짜고기와 똑같은 맛을 내도록 만들어져 때로는 가짜고기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호멜은 올해 9월이 돼서야 이러한 대체육 대열해 합류해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호멜은 계획이 없다고 했지만, 전문가들은 '고기 없는 스팸'을 출시하는 걸 기정사실로 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현재 대체육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비욘드미트' 같은 업체들보다, '스팸 인프라'를 전세계에 깔고 있는 호멜이 무섭게 대체육 시장을 점령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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