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Eat]日초밥집 갔더니 "니하오~"…무슨일이?

머니투데이 강기준 기자 2019.10.2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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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인싸'되는 '먹는(Eat)' 이야기]
日초밥학교 절반 외국인 차지
도제식 교육·낮은 실업률에 日젊은이 외면
전세계 일식 붐, 日은 뒷짐만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인싸Eat]日초밥집 갔더니 "니하오~"…무슨일이?
최근 일본 교토의 한 유명 초밥집을 찾은 한 일본인 손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본디 노포를 운영하며 초밥을 쥐던 주인장 대신 중국인 요리사가 초밥을 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인장은 "새로 후계자를 키우고 있다"며 손님을 안내했습니다.

세븐일레븐 같은 편의점이나 식당 홀서빙 등 단순노동직을 차지하던 외국인들이 일본 식당의 주방까지 진출하고 있습니다. 인구감소, 사상 최저 실업률 등으로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일본이 이민국가를 선포하면서 까지 해외 인력을 수입하자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지난 20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에 따르면 도쿄 세타가야구에 위치한 한 초밥 요리전문학교는 재학생의 절반을 외국인이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2016년 문을 열 당시만 해도 젊은 일본 요리사들을 키우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외국인들이 몰리자 학교측은 깜짝 놀랐습니다.

이 학교 1학년생인 필리핀 출신 마리사 아보가씨는 일본 교토여행을 왔다가 가이세키 요리를 맛본 후 일식을 배우고 싶어 이 학교에 입학했다고 합니다. 3학년이 된 중국 출신의 왕준펑씨는 초밥 장인이 꿈입니다. 그는 내년 봄부터 도쿄 긴자에 위치한 미슐랭 3스타 가이세키요리 전문점에서 초밥 만들기 실전에 돌입합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닛케이는 외식업계 종사자를 인용해 "일식을 물려받은 후계자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전했습니다.

일식당들이 일본인 요리사를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건, 앞서 말했듯 일본 인구구조와 사회경제적 배경 변화가 1차적 원인입니다. 인구는 감소해 젊은이들 숫자는 줄고, 여기에 일본 경제가 사상 최저 수준의 실업률을 누리는터라 굳이 고된 주방에 들어오려는 이들이 없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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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젊은이들이 초밥 배우기를 꺼리는 이유는, 좋게말하면 일본의 초밥에 대한 장인정신과 자부심, 나쁘게 말하면 '꼰대' 문화 입니다. 닛케이는 일본의 요리전문학교에서 이탈리아 음식을 배우겠다는 일본인 학생들은 꽤 많은편이라고 했습니다.

일본에선 초밥을 제대로 쥐고 주방을 맡을 때까진 약 10년의 긴 수련시간이 필요합니다. 최소 8년이 되기 전까진 생선 근처에도 가지 못합니다. 청소, 설거지, 야채 썰기, 밥짓기 등 몇년씩 단계를 거쳐야만 생선을 손에 쥘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기준은 처음부터 초밥집에서 요리를 배울 때 기준이긴 합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초밥학교들은 1~2개월짜리 속성 코스를 내놓고 요리사의 꿈을 가진 젊은이들을 유인하고 있는데,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개업하면야 상관없지만, 유명 식당에 들어가 경력을 쌓으려면 어차피 다시 고된 수련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일본에서 '쇼쿠닌'으로 불리는 스시 장인들이 이렇게 배워서 뭘 알겠냐며 무시하기 일색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힘들게 초밥을 만드는 이들의 연봉은 보너스까지 전부 포함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300만~500만엔(약 3200만~5400만원)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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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한 일식당 주인장 구리스 마사히로씨는 지난 8월부터 자신의 후계자로 싱가포르 출신의 탄 홍카이씨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후계자를 구하기도 힘든 데다가 홍카이씨의 초밥 열정을 보고 결국 승낙한 것입니다. 그는 하루종일 초밥에 들어가는 밥량을 손끝으로 느끼는 법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외국인 요리사들이 일본내 초밥 명맥을 계속 이어갈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외국인 요리사들에게 '기술 자격'을 부여해 체류토록 하는데, 인정 조건이 중국이나 프랑스 등 외국요리 기준입니다. 일식을 하는 외국인 요리사는 다른 비자를 사용해야해 일본 체류 기간이 짧을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자국 요리사들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라고 합니다. 하지만 현 상태가 지속되면 외국인들이 기술만 일본에서 배우고 해외로 나가 가게를 차리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전세계에 일식 붐이 일고, 일식당이 늘어나도 정작 일본이 여기서 얻는 이득은 별로 없는 셈입니다.

수년전 프랑스 파리에서 '에스카르고(달팽이 요리)' 맛집을 찾아 갔던 적이 있습니다. 나름 인터넷 블로그 추천글을 보고 간 곳인데, 들어가니 주방장이 외국인이어서 살짝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본에서도 이젠 중국인이 초밥을 만들고, 필리핀인이 돈까스를 튀기는 식당을 보기가 점점 흔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17년간 쌀 소비량이 반토막나고, 쌀보다 빵을 더 좋아하게 됐다는 일본. 일식의 위기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외국인들이 구원투수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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