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중학교 시절의 구자경 명예회장/사진제공=LG
1925년 경남 진양군(현 진주시)에서 LG 창업주인 연암 구인회 회장 슬하의 6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유가(儒家)의 엄격한 가풍 속에서도 실사구시를 중시한 능성 구씨 집안의 후손으로 자라면서 리더로서의 역할과 책임의식을 쌓았다.
당시 구 명예회장의 장래 희망은 교사였다. 지수초등학교를 다닐 때 과학을 접목한 농경법을 가르친 선생님의 영향으로 자연 친화적인 삶이 중요하다는 것과 교사의 길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하지만 일제시대 탄압으로 학교를 그만 둔 구 명예회장은 복숭아 나무를 가꾸며 농사일에 몰두하던 차에 모교인 지수초등학교의 부름을 받았다. 이렇게 모교에서 2년, 부산사범부속초등학교에서 3년을 교직에 몸담은 동안 그에게 붙여진 별명은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구 명예회장의 제자인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은 "체육시간에 호루라기를 불며 구령을 붙이는데 그 모습이 하도 엄해 우리는 벌벌 떨었다"며 "정말 호랑이 선생님이 오셨구나"라고 고인을 회상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무엇보다 '어떤 이유에서든 약속을 지키고 사치를 금해야 한다'는 그의 철칙은 장남인 고 구본무 회장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구 명예회장은 평소 비록 푼돈일지라도 사치나 허세를 위해 낭비하는 것을 큰 잘못으로 여기고 항상 '근검절약'을 생활신조로 삼으면서 이를 실천할 것을 고 구본무 회장에게 강조해왔다.
그는 1995년 장남인 고 구본무 회장에게 그룹 총수 자리를 승계한 이후 철저하게 평범한 자연인의 삶을 살았다. 충남 천안연암대학 캠퍼스 근처 농장 연구소에서 전통식품 개발과 난(蘭)과 분재, 버섯을 재배한 것에서 그의 소탈함을 엿볼 수 있다.
LG 관계자는 "구 명예회장은 은퇴 후 모교인 지수초등학교 후배들의 서울 방문을 직접 챙길 정도로 마음이 따뜻했던 사람이었다"며 "특히 25년 간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대기업 회장이었지만, 은퇴 후 일체의 허례와 허식 없이 간소한 삶을 즐기는 그야말로 '자연인'으로서 여생을 보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