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돼지고기와 국가재난사태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김명룡 특파원 2019.12.20 03:13
글자크기
'돼지가 편안하면 중국이 편안한다(저량안천하·猪糧安天下)'

오죽했으면 이말이 나왔을까. 중국인의 돼지고기 사랑은 유별나다. 중국인의 돼지고기 소비량은 연평균 5500만t으로 전세계 돼지고기의 절반 이상을 먹어치운다. 중국인들의 육류 소비 가운데 돼지고기 비중은 60%가 넘는데 1인당 연간 돼지고기 소비량이 40㎏에 이른다.

그래서 소고기나 닭고기와 달리 특별한 대접은 받는다. 중국에서 고기(肉)라고 하면 돼지고기를 말한다. 탕수육 동파육은 돼지고기로 만든 음식이란 뜻이다. 세계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프로 골프 대회를 '디오픈(the open)'이라고 부르는 느낌이랄까?



이 돼지고기값이 난리가 났다. 지난해 8월 중국 북부 랴오닝성 농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해 1억마리 이상의 돼지가 죽어나갔다.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올해는 돼지고기 생산량이 1600만톤 이상 줄어들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당연히 중국 돼지고기 값은 폭등세를 이어왔다. 작년 8월 1kg당 20위안(3300원) 정도였던 돼지고기 가격은 10월말 50위안을 웃돌았다. 돼지고기값이 오르자 질병으로 죽은 돼지가 시장에 유통됐다거나, 개고기와 토끼고기의 소비가 늘었다거나 하는 뉴스도 나온다. 돼지고기 값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돼지고기가 주재료인 음식 값이 올랐고, 식재료에서 돼지고기의 양이 줄어들었다.



이후 완화될 기미를 보이면서 떨어졌다는 가격이 지난 1일 41위안이었다. 하지만 겨울철 돼지고기 수요가 늘어나고 있고, 다음달 춘제(설)때 돼지고기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면 가격이 다시 오를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저량안천하'라는 말은 결코 중국식 과장된 표현만은 아니었다. 중국 정부로서는 국민고기의 가격폭등은 민심의 동요로 이어질까 비상이 걸렸다. "돼지고기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치적 리스크(위험)로 떠올랐다"는 분석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최근 중국 정부는 일부 대두와 돼지고기에 대한 추가 관세를 유예한다며 미국에 꼬리를 내렸다. 중국 입장에서 돼지 사료인 대두와 돼지고기의 수입이 절실하다. 사료 비용마저 충당하지 못해 돼지 사육을 포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평가다.


중국 농업농촌부는 향후 3년 동안 돼지고기의 생산과 회복을 가속화시키고 발전시키는 방안을 담은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돼지고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ㅇㅇ개년'계획까지 나온 것은 흉흉해진 민심을 다독이고 물가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 방안의 핵심은 유통업체의 사재기나 가격담합, 농가의 공급조절에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또 중국 당국이 돼지고기 가격 안정을 위해 비축 돼지고기 4만t을 추가로 시장에 공급하기로 했다.

실제로 '국가적 재난 상황'이라 할 만한데 중국 정부는 그것만큼은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듯하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은 배부르게 하는 것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미션이다. 홍콩의 반정부 시위나 신장위구르 인권문제보다 돼지고기 값이 중국 공산당 체제유지에 더 큰 위협이란 얘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김명룡 베이징 특파원 /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김명룡 베이징 특파원 /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