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주장 했지만 신사 참배 1호…두얼굴의 전 日총리

머니투데이 김주동 기자 2019.11.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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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소네 야스히로 101세로 타계
美보다 한국 먼저 방문, 관계 풀어
일본의 강점 역사는 반성해왔지만
야스쿠니신사 참배 오점 남기기도

전두환 전 대통령(오른쪽)과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총리 /사진=청와대전두환 전 대통령(오른쪽)과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총리 /사진=청와대


"전 두환입니다."
"나 카소네요."

실제로 있었던 대화는 아니고, 1980년대 당시 돌던 '아재 개그'이다. 1983년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공식 방문한 역사적인 기록을 남겼다. 이때도 한일 관계가 좋지 않았던 시기. 29일 나카소네 전 총리가 101세의 나이로 타계하면서, 그가 꼬인 한일 관계를 풀어갔던 당시 상황도 눈길을 끈다.

1947년 28살에 중의원 당선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1982년 11월 총리 자리에 올랐다. 당시 한국에는 신군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이 12대 대통령 자리에 올라있었다.



전두환 정부는 정통성 확보가 필요했다. 당시 한일 외교의 실무자였던 오구라 카즈오는 2015년 출간한 책 '한일 경제협력 자금 100억 달러의 비밀'에서 그 돌파구로 전두환 정부가 1982년부터 시작된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웠다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5년간 경제개발을 하는 데는 500억 달러 넘는 자금이 필요했는데, 한국정부는 이때 일본에 100억 달러를 요구했다. 일본에서 나온 반응은 "미친 거 아니야?". 이해 7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가 이어지며 양국의 협상은 끊겼다.



이런 상황에서 총리 자리에 오른 나카소네는 취임 2달 만에 한국을 찾았다. 1965년 국교 이후 첫 일본총리의 방한이었다. 특이했던 건 그가 다른 나라보다 먼저 한국에 왔다는 것이다.

/사진=로이터/사진=로이터
그는 지난 2010년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일 문제를) 타개하는 것이 대미 관계를 푸는 첫걸음이고, 또 아시아 정책을 펼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했다"고 얘기했다.

일본총리의 첫 방한에는 인상적인 행동도 있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로 시작한 한국어 연설과 한국 가요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를 불렀던 일이다.


이에 대해 나카소네 총리는 아사히신문에 "목욕탕에서 발음을 반복해보고 노래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한 이유로는 "일본은 한민족에게 많은 폐를 끼쳤다. 반성과 협력을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보수의 원류'로 평가받는 인물이지만 그는 역사 문제에서는 반성을 주장해왔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은 40억달러의 경제협력자금 지원을 하기로 했다. 다음 해(1984년)에는 두 정상 사이의 직통회선이 설치됐고, 전두환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일왕과 총리를 잇따라 만났다. 이때 가진 정상회담에서 나카소네 총리는 "우리나라가 (한국에) 엄청난 고통을 줬다. 잘못이었다"고 역사 문제에 대해 발언하기도 했다.

1987년 11월 총리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한국과의 인연은 이어졌다. 한일월드컵을 한 해 앞둔 2001년에는 일한협력위원회 회장으로서 청와대를 찾아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만났고, 2006년에도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만나기도 했다. 박태준 포항제철 초대사장, 김종필 전 총리 등과도 가까웠다.

그러나 그의 행보가 우리나라로부터 박수만 받은 건 아니다. 1985년 나카소네 총리는 전쟁 이후 일본총리로는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공식 참배했다. 당연히 한국, 중국 등의 강한 반발을 샀고, 이후 참배를 보류했다.

개헌파이기도 했다. 신헌법제정의원동맹이란 초당파 단체 회장을 맡아 활동했고, 2017년 5월 발간한 저서에서는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에 규정하라'고 했다. 그의 별세 소식 이후 일본정부는 "나카소네 전 총리는 생전 헌법 개정에 의욕적이었다"면서 개헌론에 불을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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