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공계 병역특례와 국가경쟁력

머니투데이 국양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총장 2019.12.02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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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나라 총수출의 20.9%를 차지한 반도체산업의 초석은 1980년대 초반에 마련됐다. 삼성, 현대, LG 총수들이 반도체사업에 투자를 결심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미국으로 가 이 분야의 한국 전문가들을 유치한 것이다. 미국 반도체 회사에 근무하던 10여명의 우리 과학기술자들이 먼저 귀국했고, 이들은 국내에서 막 배출된 수십 명의 석박사 인력과 함께 세 회사의 효율적 자본투자를 배경으로 초기 경쟁력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이들 수십 명의 석박사 인력은 그때 막 도입된 ‘전문연구요원’ 제도의 혜택 때문에 학업과 연구의 중단 없이 국내 대학원에서 배출될 수 있었다.

국양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총장/사진=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국양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총장/사진=대구경북과학기술원


40여 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이런 병역특례제도가 필요한가 하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 병역의무 공정성에 위배된다고도 주장한다. 세계 과학기술 선진국들이 서로 기술을 공개·공유하는 세상이 온다면 고급 과학기술인력 공급을 위한 이 제도는 필요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국가 간 과학기술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중요 기술을 넘기지 않으려 무역분쟁을 일으키고 일본 또한 강제징용 배상문제를 핑계 대지만, 내심 한국의 산업 발전속도를 늦출 속셈으로 일부 소재·부품 수출을 지연하고 무역분쟁을 야기하고 있다.

병역자원 감소로 대체복무제도를 전면 폐지하겠다던 국방부가 초기 안을 발표한 후 정부에선 관계부처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1년간 논의했다. 결과적으로는 지난 22일 현행 제도 골격을 유지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박사과정 전문연구요원은 유지하되 석사전문연구요원은 20% 감축한다. 하지만 중소·중견기업에 주로 배정하기로 했다. 산업기능요원은 일부 줄이고 기타 대체복무제도는 일부 복무관리기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수정됐다.



우리나라 고급 과학기술인력을 병역특례 방식으로 조달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는 국가경쟁력 관점에서 풀어야 한다. 2000년 초 10위까지 상승했던 국가과학기술 경쟁력은 아직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에선 환경, 인적 자본, 시장, 혁신생태계를 평가기준으로 우리나라는 15위에 위치했다. 인적 자본 분야는 25위로 매우 낮았다. 과학기술 투자에서 일본은 우리의 약 2.5배, 중국은 약 5배를 투자하고 있다. 이들이 우리의 경쟁 상대인 것이다.

석박사 전문연구요원제도 유지로 국내 우수 과학기술인력의 해외유출 일부를 막을 수 있다. 1980년 이전 많은 이공계 우수인력이 해외유학을 택했고, 학위 취득 후 일부는 해외에 계속 거주해 두뇌 유출문제가 국가적으로 제기된 바 있다.


이 제도는 우수 이공계 인력이 국내 이공계 석박사 과정에 진학해 국내 대학원 연구의 경쟁력 향상에 도움을 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국가산업 경쟁력에서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의 경쟁력도 중요하다. 석사전문연구요원의 중소·중견기업 배당과 산업기능요원 유지는 기술 집약적 중소·중견기업의 성장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40년 전 대한민국이 반도체 생산·판매 1위 국가가 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치 못했다. 이 성공의 배경에는 우수한 과학기술인력 양성이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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