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극복 전문가 "어떻게 당신을 도울 수 있을까요"

머니투데이 이동우 기자 2019.11.2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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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주혜선 한국트라우마연구교육원 원장, IMF 계기로 영문학도에서 트라우마 연구로 전환

주혜선 한국트라우마연구교육원 원장(39). 이화여대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경찰, 지자체 등 다양한 기관과 트라우마 심리치료 활동을 하고 있다. / 사진=이동우 기자주혜선 한국트라우마연구교육원 원장(39). 이화여대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경찰, 지자체 등 다양한 기관과 트라우마 심리치료 활동을 하고 있다. / 사진=이동우 기자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관리가 한창이던 시기. 뉴스에 나온 일가족의 비극은 평범한 영문학도의 삶을 바꿔놨다. 생활고에 빠져 자신의 세 아이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했던 한 엄마의 이야기였다.

그렇게 주혜선 한국트라우마연구교육원 원장(39)의 시선은 '위기에 빠진 사람'에게 향했다.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교육원에서 만난 주 원장은 "뉴스를 보며 의미 있는 도움이 있었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스스로 물음 끝에 주 원장은 전공을 심리학으로 바꿔 석사와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현재는 이화여자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지방자치단체, 교육청, 경찰청 등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심리치료가 필요한 다양한 기관과 협력하고 있다.

주 원장이 심리학에 발을 들인 이후 20여년이 흘렀지만 '성북동 네 모녀' 사건처럼 비극은 되풀이되고 있다. 주 원장은 "미디어를 통해 극단적 소식을 접할 때마다 늘 무거운 마음이 든다"며 "개인의 잘못과 우울감으로 비극이 생겼다기보다는 사회가 책임이 있다는 생각으로 활동한다"고 말했다.



트라우마 고위험군인 경찰·소방관 중에도 많은 이들이 주 원장을 찾는다. 반복적인 범죄나 사고 등에 노출되는 경우 트라우마가 나타나기 쉽기 때문이다. 그는 "개별적으로 찾아오는 분들 외에도 심리지원을 하시는 전문가 인력의 교육을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최근에는 트라우마 생존자(피해자)를 마주하는 전문상담 인력을 대상으로 강의·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전문성 있는 인력풀이 넓어질수록 사회 전반의 트라우마 관리도 수월해진다는 생각이다.

주 원장은 "역경으로부터 개인이 회복하려면 그를 둘러싼 가족 환경이 중요하고, 가족을 지원할 수 있는 지역사회 역할이 중요하다"며 "다양한 직무에 맞는 심리상담 주제를 소개하고 이분들을 중심으로 지역 네트워크가 형성되길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상대방의 아픔을 가까이서 지켜봐야 하는 트라우마 치료 과정에는 어려움도 많다. 주 원장은 매주 20여명의 심리치료를 직접 진행하고 있다. 그는 "로봇이 아니다 보니 극단적 고통의 경험을 공감하는 과정에서 상대와 같은 악몽을 꾸기도 한다"면서도 "상담으로 눈에 띄게 회복되는 분들을 보면 많은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주 원장은 트라우마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사고나 재난만으로 촉발되는 것이 아닌 만큼 주변의 어려움에 귀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주류층이 말하는 가치나 준거에 의해 개인의 영역을 존중받지 못하고 침해당하는 인권의 문제도 충분히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며 "함부로 판단하기보다는 '어떻게 당신을 도울 수 있을까요?'라고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에 서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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