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One]"우유처럼 고소해"…프랑스 그르노블 자랑인 '호두'

뉴스1 제공 2019.11.2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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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와 누에 경작 실패 후 호두에 눈돌려
프랑스 정부의 원산지 보호 인증인 'A.O.P' 획득

(그르노블=뉴스1) 정경화 통신원[편집자주]정통 민영 뉴스통신사 뉴스1이 세계 구석구석의 모습을 현장감 넘치게 전달하기 위해 해외통신원 코너를 새롭게 기획했습니다. [통신One]은 기존 뉴스1 국제부의 정통한 해외뉴스 분석에 더해 미국과 유럽 등 각국에 포진한 해외 통신원의 '살맛'나는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현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생생한 이야기, 현지 매체에서 다룬 좋은 기사 소개, 현지 한인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이슈 등을 다양한 형식의 글로 소개합니다.

그르노블의 호두 나무들 © 정경화 통신원 제공그르노블의 호두 나무들 © 정경화 통신원 제공


(그르노블=뉴스1) 정경화 통신원 = 인류가 가장 먼저 먹은 나무 열매 중 하나는 호두다. 고고학자들이 약 8000년된 호두껍질 화석을 발견한 데서 보듯 호두는 오랫동안 인간의 사랑을 받아왔다. 호두하면 보통 캘리포니아를 떠올리지만 우유처럼 고소하고 아삭아삭한 그르노블에서 생산되는 호두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프랑스 남동부에 위치한 그르노블 시 근처에는 오래된 호두 건조장을 개조한 '그르노블 호두 박물관'(Le grand séchoir)이 있다. 호두 수확철인 10월이 되면 그르노블 호두에 대해 배우고 갓 딴 신선한 호두도 맛보기 위해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다.

맛과 영양가가 풍부해 프랑스 국내외에서 애호받는 그르노블 호두는 프랑스 정부의 원산지 보호 인증인 'A.O.P'를 처음으로 획득했다. 그르노블에서는 약 1000명의 호두 농민들이 유럽에서 가장 많은 호두를 생산해 낸다.



그르노블 시를 관통하는 이제르 강 유역은 1870년 전까지 포도밭과 실크 제조에 필요한 누에를 채집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포도나무뿌리진디병과 누에 백강병의 습격으로 이 두 산업이 적자를 내자, 농민들은 그 몇 세기 전부터 포도나무 사이에 자리잡고 있었던 호두나무 재배로 눈을 돌렸다.

이 지역의 토양은 호두나무가 자라기에 적합했다. 호두나무는 포도 경작보다 품이 네 배나 덜 들어 금방 마을 소득의 중심이 됐다. 이 지역은 '호두의 고장'으로 새로 태어났고 농민들에게 호두는 '효자 작물'이 됐다.

세계의 호두 ©  정경화 통신원 제공세계의 호두 © 정경화 통신원 제공
19세기 말 그르노블 호두 생산량의 80%는 미국으로 수출이 될 정도로 미국은 그르노블 호두의 주요 수입국이었다. 그러나 몇 해가 지나 비양심적인 도매상인들이 저렴한 외국산 호두와 섞어 미국으로 수출해 팔기 시작했다. 이것이 문제가 되면서 프랑스 정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1938년 그르노블 호두를 A.O.P로 승인했다.


지난 2007년부터 10년동안 그르노블 호두의 프랑스 내 판매량은 56%, 수출량은 16% 증가했다. 소비자 수요가 크게 늘어 일년에 이 지역에서만 1만톤(1000만㎏)의 그르노블 호두를 생산하지만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농민들은 시장 수요에 맞추기 위해 현재 있는 프랑케트, 마예트, 파리지엔느의 세 개의 품종 외에도 A.O.P 규정에 맞는 새 품종을 개발해 호두 생산을 더 늘리려고 계획 중이다.

이 지역에는 이미 259개의 마을이 호두 재배에 종사하고 있지만, 오래된 호두나무 옆에 묘목들을 심어 호두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2009년과 2011년에는 이곳 호두나무밭들 대부분에 살포된 농약으로 꿀벌들이 떼죽음을 당했고, 새들도 농약에 노출돼 죽거나 번식력을 잃어 이 지역 생물 다양성이 감소하는 위기가 발생했다. 주변의 주민들도 키가 큰 호두나무에 뿌린 농약이 사방으로 퍼지며 증발해 대기오염 피해를 호소했다.

지난 4월 그르노블 지역의 호두 연구소에서는 농약 대신 호두나무 병충해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을 찾았다고 발표했다. 몇 년 동안 추진된 연구 덕에 농민들은 병충해로 인한 호두 생산 피해도 줄일 수 있게 되었으며 그르노블 호두는 농약없던 시절의 친환경 열매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르노블 호두 박물관 안내소 앞에는 관람을 마치고 나온 사람들이 호두를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소 직원은 사람들에게 '농약을 쓰지 않은' 유기농 호두와 현재 유기농 재배로 전환 중인 농민이 생산한 일반 호두를 소개했다.

농민과 주민들은 환경보호와 경제발전 모두를 잡은 친환경적 농업 방안들이 더 많이 개발돼 그르노블 호두가 전 세계에서 더욱 이름을 날리길 바라고 있다.

그르노블 호두 박물관 © 정경화 통신원 제공그르노블 호두 박물관 © 정경화 통신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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