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준의 효성 3년…회장실에서 사라진 2가지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2019.11.0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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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3년 앞둔 조현준 회장 정중동, 신중한 혁신서 효성 100년 엿본다

조현준 효성 회장이 글로벌 고객사 부스를 찾아 섬유시장 트렌드를 점검하고 있다/사진제공=효성조현준 효성 회장이 글로벌 고객사 부스를 찾아 섬유시장 트렌드를 점검하고 있다/사진제공=효성


"자, 넥타이 푸시죠." 조현준 효성 회장과 마주앉은 효성 임원들이 일제히 넥타이를 풀었다. 조 회장이 취임한지 2년여가 지난 올해 5월 아침이었다. 조 회장은 다음날부터 아예 면바지 차림의 캐주얼을 입고 출근하기 시작했다. 조 회장의 모습을 본 직원들이 하나둘 청바지를 입었다.

넥타이보다 먼저 사라진 건 종이다. 조 회장은 회장실로 들어오는 각종 보고에 대해 "페이퍼(서류) 없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카카오톡과 MMS문자메시지를 가리지 않고 업무지시와 피드백이 이뤄졌다. 신속한 소통이 중요하다는 조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변화다.



효성이 내년 1월 1일 조현준 회장 체제로 만 3년을 맞는다. 효성 구성원들은 조현준 3년을 '정중동', 내지는 '신중한 혁신'으로 요약한다. 중후장대 제조업을 주력으로 하는 효성인 만큼 변화에 신중하지만 결단 후 실행은 빠르고 의욕적이었다.

조현준의 효성 3년…회장실에서 사라진 2가지
◇조현준의 '신중한 혁신'=조 회장의 색깔은 취임 직후가 아닌 1년 후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여름 한시적으로 실시하던 비즈니스 캐주얼을 연중 전체로 확대한 것도, 회장실에서 본격적으로 서류 보고를 줄이기 시작한 것도 취임 1~2년이 지나고 나서부터다. 직관에 기대기보단 신중하게 검토한 끝에 실행하는 스타일이다.



더 큰 변화는 사업 스타일에서 드러난다. 효성그룹의 경영활동 자료에서 언제부턴가 조 회장 본인의 발언 비중이 높아졌다. 효성 관계자는 "조 회장이 현장을 찾는 만큼 현장발 메시지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전임 회장들과 다른 조 회장만의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효성은 섬유로 시작해 타이어코드와 첨단소재로 차세대 성장동력을 정했다. 국내외 다양한 소재전시회에 조 회장은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응우웬 쑤언 푹 베트남 총리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만나 사업기회를 타진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혁신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조 회장을 움직이게 한다. 재계 관계자는 "효성의 사업은 대부분 글로벌 메이저들과 경쟁하는 영역"이라며 "국내만 보고 사업할 수 있는 시기는 진작 지났다는 게 조 회장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야구광 조현준의 데이터경영, 1조 클럽 시험대=조 회장의 신중한 성격은 취미생활에서도 드러난다. 조 회장은 유명한 스포츠광이자 특히 야구광이다. 미국 유학시절 선수생활을 했고 지금도 사회인야구단에 속해 있다.

야구는 겉보기엔 공을 던지고 치는 스포츠지만 본질은 데이터를 놓고 승부하는 스포츠다. 경영과 일맥상통한다. 조 회장은 언젠가 야구에 대해 "차곡차곡 점수를 쌓는 팀을 이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타이어코드를 비롯해 세계 1위 제품을 갖고도 수소경제에 대비해 탄소섬유 등 신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시기도 좋았다. 일본과 기초소재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효성이 투자한 탄소섬유는 천군만마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효성의 전주 탄소섬유 공장을 찾기도 했다.

조 회장의 혁신을 바탕으로 효성은 올해 영업이익 1조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효성 계열사들은 2분기까지 3942억원, 3분기 2306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과세추징 등 악재가 (주)효성 실적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낙관은 어렵지만 4분기 실적에 따라 조 회장 취임 이후 첫 1조클럽 가입 가능성이 있다.

◇광야에 선 조현준, 100년 효성 기틀 다질까=아직 확신보다는 도전 단계다. 효성은 지난해 6월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4개 사업회사를 인적분할했다. 그룹 운영이나 인사시스템에도 큰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효성은 회장 중심의 중앙집권적 체제였지만 지주사 전환 이후 각 계열사 대표의 권한이 강화되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며 "체질 개선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 회장 본인이 송사에서 자유로운 몸이 될지도 변수다. 조 회장은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돼 지난달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으나 배임 혐의액 중 상당부분이 무죄로 판단돼 법정 구속을 면했다.

복잡한 그룹 안팎 사정에도 불구하고 조 회장의 눈은 미래를 향한다. 조 회장은 지난 1일 효성 창립 53주년을 맞은 자리에서 "100년 효성"을 선언했다. 그는 "지금까지 해온 기술과 경험에만 의존하지 말고 숲을 보는 자세로 100년 효성의 역사를 이뤄내자"고 말했다.
조현준 효성 회장이 창립 53주년 기념식에서 근속상을 시상하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조 회장만 노타이 차림이다./사진=효성조현준 효성 회장이 창립 53주년 기념식에서 근속상을 시상하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조 회장만 노타이 차림이다./사진=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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