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은 대비했는데 홍수가"…日 재해 대책 '재점검' 중

머니투데이 정인지 기자 2019.10.28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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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AP/뉴시스】11일 일본 미에현 남부 기호에 제19호 태풍 하기비스의 영향으로 대형 파도가 방파제를 때리고 있다.   일본 기상청은 태풍 하기비스가 이번 주말 동일본 지역으로 접근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강한 바람과 집중 호우에 대비할 것을 당부했다. 2019.10.11.【기호=AP/뉴시스】11일 일본 미에현 남부 기호에 제19호 태풍 하기비스의 영향으로 대형 파도가 방파제를 때리고 있다. 일본 기상청은 태풍 하기비스가 이번 주말 동일본 지역으로 접근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강한 바람과 집중 호우에 대비할 것을 당부했다. 2019.10.11.


"지진에 대비해 왔는데 홍수가 문제였다"

'방재 대책 선진국'으로 불리는 일본조차 잇따른 태풍 피해에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5년간 '기존 상식을 뛰어넘는' 대형 태풍이 몰아치면서 '수재(水災)'에 보다 효율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8일자 닛케이비즈니스에 따르면 일본손해보험협회가 조사한 역대 '풍수해에 따른 보험금 지급액 상위' 10건 중 4건이 과거 5년에 발생한 태풍이나 호우에 따른 것이다. 지급 보험료가 가장 높은 것은 작년 9월에 발생한 서일본호우(1조678억엔)로 간사이국제공항이 높은 파도에 침수된 영향이 컸다. 올해도 대형 태풍이 연속으로 찾아와 이번달에만 태풍 19호 하기비스로 88명이 사망하고, 21호 부알로이로 19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일본 기상정보기업인 웨더뉴스 관계자는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사회 시스템이 고도화되고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는 지금, 재해발생 시의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층아파트 전력 시설 지상으로 옮겨야"=주민들의 생활에 가장 큰 불편을 주는 것이 전력 문제다. 고층 빌딩의 전력 시설은 주로 지하에 있는데, 이곳이 침수되면 정전과 단수가 발생하기 쉽다.



일본 가와사키시 무사시코스기역 주변에 밀집돼 있는 초고층 아파트는 최근 '살고 싶은 곳' 중 한 곳으로 뽑히기도 했지만, 이번 태풍으로 전기 설비가 있는 지하실이 침수돼 정전과 단수가 발생했다. 엘리베이터가 정지하고 배수 펌프가 멈춰 화장실 물이 내려가지 않아 각 세대에 음료수와 함께 간이 화장실이 설치됐다. 일상 생활이 불가능해지자 많은 주민들이 임시거처로 옮겨갔다.

이 지역은 강 근처인데, 시내 배수를 위해 지하 배수관을 열어둔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됐다. 폭우로 강 수위가 높아지자 강물이 배수관을 타고 시내로 역류한 것이다. 역의 자동개찰기는 침수되고 도로는 흙탕물로 뒤덮였다. 가와사키시 관계자는 "(역류방지와 호우의 배출 중) 어느 쪽을 선택할 지 판단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고층아파트를 분양하는 한 건설사 관계자는 "이러한 침수에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려면 전기 설비를 지하가 아니라 지상에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태풍 피해를 입은 간사이공항에서는 재발 방지를 위해 지하에 있던 전원 설비를 지상으로 옮기고 있다. 그러나 전기 설비를 지상으로 옮기면 한 가구당 공급 면적이 줄 수밖에 없고 이는 아파트 분양 가격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정전되도 24시간 버틸 수 있는 기지국 세워라"=전력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기지국이 마비돼 핸드폰 등의 사용도 불가능해진다. 피해 정보 등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태풍 19호로 NTT도코모, KDDI, 소프트뱅크 통신 3사의 기지국 중 2000곳이 넘는 기지국이 정지됐다. 주로 전력 공급이 멈춰서다. 일본 정부는 통신사가 기지국에 예비 전원(축전지)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축전지의 용량은 제각각이다. 통신 3사는 각각 10만~20만 기지국을 보유하고 있지만 정전에 24시간 이상 버틸 수 있는 기지국은 극히 일부다. KDDI의 경우 15만여개의 기지국 중 2000곳 정도로 전체의 약 1%에 그치고 있다. 반면 태풍 19호로 정전이 복구될 때까지 약 일주일이 걸렸다.



기지국들이 어느 정도 바람에 버텨주느냐도 문제다. 전력회사 송전선 등의 내풍 기준은 최대 순간 풍속 40m다. 휴대전화의 기지국도 같은 수준의 강풍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지만, 태풍 15호 당시에는 최대 풍속 60m의 강풍이 불어 기지국과 전봇대가 속속 쓰러졌다. "내풍 기준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재해 발생시 통신 3사간의 회선 공용 사용도 좀처럼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 통신사를 제한하지 않고 모든 이용자가 살아있는 회선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한 회선에 이용량이 집중되면 그 회선조차 과다사용으로 제 기능을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 정부는 기지국의 축전지 용량에 대해 "정전 후에도 24시간 가동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할 것을 검토하고 있으나 비용이 통신요금에 전가될 것으로 우려된다. 자연재해에 철저히 대비할 수록 휴대전화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나가노=AP/뉴시스】일본 나가노 시에 있는 고속철 신칸센 차량들이 13일 물에 잠겨있다.태풍 하기비스의 '물폭탄'으로 나가노의 하천 시나오가와의 제방이 무너지면서 홍수가 발생했다. 2019.10.13【나가노=AP/뉴시스】일본 나가노 시에 있는 고속철 신칸센 차량들이 13일 물에 잠겨있다.태풍 하기비스의 '물폭탄'으로 나가노의 하천 시나오가와의 제방이 무너지면서 홍수가 발생했다. 2019.10.13
◇지자체가 만든 '해저드 맵' 피해 예방에 유용=지자체가 작성하고 있는 '해저드맵'은 이번 태풍 19호에 따른 실제 침수 피해를 비교적 정확히 예측해 유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저드맵은 자연재해에 따른 피해범위를 예측해 이를 지도에 표시하는 것이다. 재해의 발생 지점, 피해 범위 뿐 아니라 피난 경로, 피난 장소 등도 표시해 주민들의 신속한 대피를 권고하고 있다. NHK의 조사에 따르면 피해가 컸던 후쿠오카현 등 8개 강하천 지역에서 실제 침수된 지역이 지자체가 작성한 해저드맵과 대부분 일치했다.

그러나 해저드맵의 정보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수해 예측에는 범람하는 물의 '깊이' 뿐 아니라 '속도'가 중요한데 아직 속도를 표기하지 않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칸센 차량이 다수 수몰된 일본 나가노시의 신칸센 차량기지 일대는 물의 깊이가 예상대로 4m였다. 반면 근처의 주택지역의 침수 깊이는 2m로 예상됐으나 많은 주택이 붕괴되는 등 주택가의 피해가 더 컸다. 강물이 제방을 부수고 순식간에 세게 넘쳐 흐르면서 주택을 파괴한 것이다. 이후 물은 낮은 곳으로 계속 흐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침수 깊이는 2m에 그치게 됐다.

나고야 대학원의 나카무라 신이치로 준교수는 "제방의 어느 곳이 무너졌는지 누구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택 가까이에 있는 제방이 무너진 경우 물이 어떻게 흐를지 지형을 참고해 생각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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