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피플]10년후 IS 수괴로 돌아온 알 바그다디

뉴스1 제공 2019.10.2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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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소수종파 집단학살…잔혹한 통치 보여줘
예언자 무함마드 후손 자처…암살·배신 두려워해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이슬람국가(IS) 수괴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 생전 모습 © AFP=뉴스1이슬람국가(IS) 수괴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 생전 모습 © AFP=뉴스1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미국이 이슬람국가(IS)의 수괴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48)의 사망을 27일(현지시간) 공식 발표했다. IS 선전매체는 아직 알 바그다디 사망 발표에 대해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알 바그다디가 이끄는 IS는 그 어떤 테러단체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약 100개국에서 대원 수만명을 끌어모으며 전 세계를 두려움을 떨게 했다. 미국은 그에게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액수인 2500만달러(약 300억원) 상당 현상금을 걸고 수배해왔다.



알 바그다디는 1971년 이라크 바그다드 북부에 있는 도시 사마라 인근 가난한 마을 톱치에서 태어난 6남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이슬람 종파 가운데 하나인 수니파 극단 원리주의자. 다른 종파와 종교들은 모두 이단으로 본다.

이는 IS가 중동에서 오래된 소수민족 종교 가운데 하나인 야지디스를 포함해 다른 종교를 믿는 소수민족들을 집단 학살하고 성노예로 삼는 등 잔혹하게 탄압한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알 바그다디는 2002년 석사 학위를 받고 2006년 바그다드에 있는 사담대학(현 나레인대학)에서 이슬람학 박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친구들은 나중에 그가 테러단체를 이끄는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징후를 전혀 보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알 바그다디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던 2003년 살라피 지하드 반군에 가입했다가 포로로 붙잡혔었다. 가디언에 따르면 알 바그다디가 이라크 남부에 있는 악명 높은 부카 수용소에 수감됐는데, 한 수감자는 그가 중재자 역할을 하며 교도관들로부터 신임을 얻고 권위를 쌓았다고 전했다.

미군은 1년 뒤 그를 단순한 민간 선동가로 보고 풀어줬다. 그가 10년 뒤인 2014년 7월4일 검은 예복을 입고 모술에 있는 이슬람사원 단상에 올라 이슬람 세계의 지도자(칼리프)를 자처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당시 영상에서 알 바그다디는 과거 이슬람의 황금시대로 여겨지는 압바시드 시대(750~1517)를 언급하며 자신이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신이 우리에게 그의 적과 싸우라고 명령했다"며 자신을 믿음의 지도자라는 뜻의 '칼리프 이브라힘'으로 지칭했다.

알 바그다디의 연설이 담긴 영상이 배포된 후 곧이어 시리아와 이라크에는 칼리프의 군대를 자처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IS는 프랑스, 영국, 독일, 터키,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여러 국가에서 발생한 테러 공격의 배후를 자처하며 위세를 떨쳤다. 특히 가장 세력이 컸던 2016년 당시 IS는 시리아 북부에서부터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계곡에 이르기까지 넓은 영토를 차지하며 수백만명을 통치했다.

알 바그다디는 가장 충성스러운 살라피 지하드 간부들조차 반대 의견을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제거하며 권력 확장과 유지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2013년 알카에다 시리아 세력인 누스라 전선의 지도자 알자와리와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2017년에 들어서면서 연합군의 공격이 거세지자 IS는 대부분의 영토를 모두 잃고 모술을 중심으로 휘하 조직을 점조직으로 운영하며 연명했다. 알 바그다디는 운전사와 경호원 2명의 호위를 받아 시리아와 이라크 국경 지역에 있는 은신처로 비밀리에 피신했다.

이후 알 바그다디는 암살과 배신을 두려워해 전화도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아이야드 알 오바이디 국방장관과 아야드 알 주마일리 비서실장 등 주요 측근과 소수 통신원만을 신뢰했었다.

이들은 알 바그다디 사망 이후 그의 뒤를 이을 유력한 후보들로 여겨졌지만 주마일리는 2017년 4월 살해됐고 오바이디는 현재까지도 행방불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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