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으로 기업 통제"…경총, '5%룰 개정' 반대

경총,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 '전면 철회' 의견서 제출...재계 "정부의 반시장적 정책의 상징"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가 정부의 '5%룰'(주식대량보유 보고제도) 개정에 강력히 반대했다. 국민연금을 통해 정부가 민간기업의 경영에 간섭할 수 있어서다. 재계에서는 '기업 길들이기의 상징'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경총은 16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이하 개정안)의 전면 철회를 건의하는 경영계 의견을 정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경총은 "최소한의 경영권 방어기제를 훼손한다"며 "전면 철회를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9월 6일 입법예고된 개정안은 일명 '5%룰'을 완화하면서 주주의 주주권 행사를 더 쉽게 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특히 국민연금 등 연기금은 기업의 정관 변경까지 요구할 수 있다.

◇사실상 '국민연금' 위한 개정…정관변경 추진까지= 현행 자본시장법은 지분 보유(5% 이상) 목적을 '경영권 영향 목적'과 '경영권 영향 목적 없음(단순투자)'으로 나누고, 경영에 목적이 있는 투자자는 5일 이내 지분변동과 함께 자금 조성 내역 등을 상세보고 해야 한다.

단순투자는 월별 약식보고로 대체할 수 있지만 △임원 선임·해임, 직무정지 △정관 변경 △회사 자본금 변경 △배당정책 변경 등 경영개입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법령이 개정되면 약식보고를 하면서 경영권에 일부 개입할 수 있다. '경영권 영향 목적이 없는 투자자'에 '일반투자'를 신설하면서 임원이 위법한 행위를 하면 해임을 청구(해임청구권)할 수 있고, 배당정책 변경 등도 요구할 수 있다.

특히 연기금은 일반투자일 경우 지분 보고기한(월별)과 방식(약식)을 더 완화했다. 또 기업의 정관변경까지 추진할 수 있다. 국민연금 지금까지 상세보고 의무에 막혀 정관변경 등을 요구하지 못했다. 정관은 지배구조 등 기업 경영의 가장 핵심적인 규율을 담고 있다.


경총은 "경영권 개입 확대 혜택이 모든 기관투자자라고 하나 현실적으로 주요기업의 지분을 5% 이상 대량 보유한 투자자는 국민연금과 외국계 투기펀드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정부의 주된 목적은 국민연금의 민간기업 개입을 더 쉽게 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강남구 국민연금 강남사옥에서 직원들이 이동하고 있다./사진=홍봉진 기자

◇재계 "현재도 국민연금 부담"…5%→3% 강화해야= 재계는 이미 국민연금의 주주권 개입이 부담스럽다며 개정안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까지 기업을 길들이려 하는 정부의 반시장적 정책의 상징과 같은 조치"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올해 3월 고(故)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의 연임에도 반대했고, 그 결과 조 회장은 경영에서 물러났다. 향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횡령·배임죄가 확정되면 국민연금이 이 부회장의 해임을 청구할 수 있다.

경총은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있어 비금융적·비경영적 정책 판단으로 기업지배 구조에 직접 개입할 개연성이 크다"며 "금융정책당국이 사회정책부처(보건복지부)에 경영 개입 문제를 완전히 위임하는 모양새가 된다"고 지적했다.

경총 관계자는 "국민연금을 매개로 정부나 정치권, 시민단체의 기업 경영권에 대한 영향력이 확대되고 상대적으로 기업 경영권 방어능력이 무력화된다"며 "오히려 5%룰을 3%룰로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