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설리 라이브' 뜨니, 기사 230개…포털에 갇힌 언론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19.10.1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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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살인 下]'실검→조회수 경쟁→자극적인 기사→악플 양산' 악순환, 유통 구조 문제…"우리도 쓰기 싫다" 기자들 자조도

편집자주 악플에 시달리던 가수 겸 배우 설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거대 포털사이트와 사회관계망(SNS) 등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악플들이 또다른 '설리'들을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댓글망국론'이 나올 정도에 이른 악플 뒤에는 이를 양산하는 거대 포털 및 언론 생태계가 존재하고 있다. 

/삽화=김현정 디자인기자/삽화=김현정 디자인기자




지난달 29일 오전 11시50분쯤, 기사 하나가 떴다. 제목은 이랬다. '노브라 운동 전략일까… 설리 또 인스타서 노출'. 내용은 단순했다..

설리가 전날 밤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실시간 방송)에서 머리를 손질하는 걸 보여주다, 가슴 일부가 노출됐단 것. 설리 인스타그램서 이미 삭제된 영상이건만, 아무렇지 않게 기사화가 됐다. 순식간에 '악성 댓글'이 달렸다. "노출증 환자", "진짜 관종" 정도는 양반이고, "그냥 벗고 다녀라", "노출 즐기냐"라며 성희롱도 서슴잖게 이뤄졌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하나 둘씩 기사가 나오다, 급기야 이날 오후 2시18분 전후로 실시간 검색어(이하 실검)에 '설리'란 키워드가 진입했다. 그러자 온갖 언론이 달려들어 기사를 썼다. 조회수를 늘리기 위한 심산이었다. 같은날 오후 6시 쯤엔 이미 실검 1위를 차지했고, 뒤이어 '설리 라이브', '설리 인스타그램'이란 실검도 함께 떴다. 경쟁이 붙자, 제목은 더욱더 자극적으로 달렸다. '설리 신체노출 논란, 이 정도면 고의?', '경범죄, 공연음란죄 적용될까?'란 기사까지 나왔다. 과거 논란까지 다시 소환되기도 했다. 기사 갯수만큼 '악플'도 늘어갔다.

그렇게 지난달 29~30일 이틀 동안 '설리 라이브'란 검색어로만 모두 233건의 기사가 나갔다. 거의 모두 비슷한 내용의 기사들이었다. 실검이 내려간 뒤에야, 논란은 겨우 끝났다.



설리 사망을 계기로 포털사이트에 갇힌 '언론사 유통구조'를 바꿔야한단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악플을 부르는 무분별한 기사들이 쏟아지는 이유가, 포털사이트에 의존토록 만드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단 것이다. '실검'으로 대표되는 포털사이트를 통하지 않으면, 기사 자체가 소비되지 않는 기형적 언론 구조가 됐다. 이에 원치 않아도 관련 기사를 써야만 읽히는 상황. 중요한 의제가 밀릴 뿐 아니라, 독자들도 자극적 기사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실정이다.

언론은 왜 포털에 '종속'됐나?
/그래픽=김지영 디자인기자/그래픽=김지영 디자인기자
독자들은 어디서 뉴스를 볼까. 주로 네이버·다음·네이트와 같은 '포털사이트'를 통해 보고 있다. 지난해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영국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가 공동 발간한 '디지털뉴스 리포트 2018'에 따르면, 포털사이트로 뉴스를 보는 독자들 비중은 무려 77%에 달했다. 반면, 언론사 홈페이지에 직접 접속해 기사를 보는 비율은 5%에 불과했다. 이는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쉽게 말해, 머니투데이에서 생산한 기사도 머니투데이 홈페이지가 아니라 '네이버'에서 주로 본단 얘기다. 언론사들이 네이버와 제휴를 맺고, 기사를 제공하기 때문에 가능한 형태다.


종이신문 구독율은 2017년 기준 9.9%, 두자릿수도 안 되는 상황이 됐다. 더 이상 신문을 펼쳐서 보지 않는단 의미다. 여기에 온라인마저 포털 위주로 돌아가며 여의치 않자, 언론사는 그야말로 존폐 기로에 놓였다. 절치부심해 모바일 앱을 개발하고, 묘안을 궁리했지만 유통구조가 공고해진 뒤 바꿀 수 있는 건 없었다. 자연스런 수익 악화에, 뉴스를 생산해도 읽히지 않을 거란 위기 의식까지 팽배해졌다.

이는 대부분 언론사가 포털사이트에 매달리게 하는, '기형적 유통 구조'를 야기했다. 언론사마다 조회수(트래픽)가 떨어지면 안 된단 사활을 걸고, 어떻게든 읽히는 기사를 쓰게끔 주문했다. 이에 각사마다 형태는 다르지만, 온라인을 주로 맡는 부서를 만들어 대응토록 했다. 언론사 홈페이지 트래픽이 사실상 '위상'을 결정하게 돼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실검→조회수 경쟁→자극적 기사' 악순환
[MT리포트]'설리 라이브' 뜨니, 기사 230개…포털에 갇힌 언론
말이 좋아 '온라인 대응'이지, 사실상 '실검' 대응이나 다름 없다. 네이버·다음·네이트 등에서 독자들이 보는 기사는, 언론사 홈페이지가 아닌 포털사이트 내부 조회수(인링크)로 잡히기 때문. 쉽게 말해, 네이버에서 기사를 보면 언론사 홈페이지(아웃링크)가 아닌 네이버 조회수로 들어간단 의미다.

가령 스마트폰서 기사를 보면 전부 네이버 내부 링크로, PC로 보면 독자가 선택한 언론사의 뉴스스탠드를 통한 기사만이 언론사 홈페이지로 아웃링크 된다. PC를 통한 아웃링크 채널을 일부 열어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대부분의 뉴스 트래픽이 모바일로 옮겨간 상황에서 '눈가리고 아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언론사들이 그나마 돌파구로 삼을 수 있는 게 '실검'이다. 과정은 이렇다. 독자들이 PC에서 '실검'을 누르면, 기사 검색 결과가 뜬다. 그때 제목을 누르면, 언론사 홈페이지로 연결된다. 그게 조회수로 잡힌다. 그나마도 모바일에선 검색을 해서 기사를 클릭해도 인링크로 포털 내의 기사를 보게 된다.

언론사들이 조회수를 가져가는 또다른 아웃링크 경로는 인링크로 포털에서 읽히는 기사들의 하단에 걸 수 있는 주요 기사 3~5개(네이버 5개, 다음 3개)를 통해서다. 이 하단 링크 기사의 경우에는 클릭하면 모바일이든 PC 등 상관없이 언론사 홈페이지로 아웃링크 된다. 몇 단계를 그쳐야 하지만 이를 통한 트래픽이 각 언론사들의 전체 조회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그만큼 포털들이 뉴스 트래픽의 대부분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시간 검색어 위주로,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하게 나오는 포털 기사들./사진=네이버 검색 결과 화면 캡쳐실시간 검색어 위주로,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하게 나오는 포털 기사들./사진=네이버 검색 결과 화면 캡쳐
이처럼 어떻게든 포털에서 기사를 읽히게 해야 하다보니 모든 언론사들이 '실검'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실검이 뜨면, 어떻게든 그 키워드를 제목에 넣어 기사 작성을 하는 실정이다. 예컨대, '일본 태풍피해'가 실검에 뜨면, 우후죽순으로 비슷한 기사들이 쏟아진다. 전국 모든 언론매체를 따지면, 수천개에 달하는 터라 그야 말로 '총성 없는 경쟁'이다.

기사도 점점 자극적으로 악화됐다. 무리한 기사를 쓰고, 선정적인 제목을 달았다. 팩트 확인, 뉴스의 질보단 어떻게든 빨리 써서 실검 검색에 걸리도록 하는 게 주요 목표가 됐다. 언론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기자 대신 '기레기(기자+쓰레기)'란 말이 판을 치게 됐다.

기자들도 원치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A언론사 온라인 부서 기자 B씨는 "하루 종일 연예인 SNS를 뒤지고, 더 자극적으로 기사를 쓰는데 양심의 가책이 든다"며 "이러려고 기자가 됐나 회의감이 들 때가 많다"고 했다. C언론사 온라인 담당 기자 D씨도 "말이 좋아 온라인 대응이지, 사실상 실검팀이나 다름 없다"며 "기자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기사를 써야하니, 사내 기피부서가 됐다"고 토로했다.



중요한 의제 밀리는 '부작용', 독자들도 피로감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더 큰 문제는 포털 위주의 언론사 유통구조가, 온갖 부작용을 부른단 점이다. 14일 사망한 배우 겸 가수 고(故) 설리가 시달린 '악플 문제'가 그렇다. 악플러들 잘못이지만, 그 이면엔 기자들의 무분별한 기사 작성도 큰 몫을 했다. 온갖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연예인 기사를 쓰는 통에, 악플러들이 활동하기 좋은 장(場)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연예인은 여기에 가장 좋은 기사거리가 된다. SNS만 뒤져도 기사를 쓸 수 있고, 품을 들이는 것 대비해 관심도가 높으며, 조회수 또한 잘 나오기 때문. 특히 설리 같은 경우, '노브라(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것)' 등 파격적인 사진도 자주 올리니 언론의 좋은 타겟이 됐다. 이에 설리가 SNS를 올릴 때마다 적게는 수십개씩, 많게는 수백개씩 기사가 떴다. 성희롱 등 온갖 악플이 난무했다.

또 다른 문제는 정작 중요한 기사거리가 '자극적 이슈'에 밀린다는 점이다. 실검에 뜬 이슈에만 언론이 집중하다보니, 그새 다른 중요한 의제들은 자연스레 밀리게 된다. E언론사 10년차 기자 F씨는 "품을 많이 들인 좋은 기사가 읽혀야하는데, 연예인 SNS를 보고 쓴 1분짜리 기사보다 안 보니 한숨이 나올 노릇"이라며 "근본적인 문제라 어떻게 바꿀 방법도 없다"고 했다.

포털사이트에 종속되는 유통구조는 '뉴스 쏠림' 현상을 부른다./사진=네이버 화면 캡쳐포털사이트에 종속되는 유통구조는 '뉴스 쏠림' 현상을 부른다./사진=네이버 화면 캡쳐
그런가 하면, 아예 이슈가 되는 주제에만 기사가 쏠리기도 한다. 14일 기준 네이버 '많이 본 뉴스' 중 사회 분야 1~30위를 살펴본 결과 30개 중 25개가 '설리' 관련 기사였다. 지난달 19일엔 사회 분야 '많이 본 뉴스' 30개 중 19개가 '이춘재(화성 연쇄 살인 용의자)' 관련 기사기도 했다.

이에 독자들도 피로감을 호소한다. 제목만 바꾼 비슷한 자극적인 기사 때문에, 뉴스 보기가 싫어진다는 것. 직장인 김성훈씨(39)는 "죄다 자극적이고 나쁜 뉴스만 넘치니, 뉴스 보는 게 몹시 피로하다"며 "독자들도 좋은 뉴스, 중요한 뉴스를 보고 싶다. 뭐가 문제인지 개선됐으면 싶다"고 했다.



"언론사 홈페이지서 보도록, '아웃링크' 법제화해야"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언론사 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논의는 있다. 포털에서 기사를 클릭하면, 해당 언론사 홈페이지로 넘어가서 보는 '아웃링크' 방식을 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럴 경우, 포털이 아닌 언론사의 '의제 설정' 권한이 강해져 자정 작용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실검'이 아니라 탐사, 심층보도처럼 좋은 뉴스를 생산하면 수익으로 연결되는 유통구조다.

학계·언론계·시민단체가 참여한 '디지털저널리즘복원특별위원회'는 지난 1월 보고서를 통해 "독자들이 포털 내에서 기사를 보는 '인링크' 방식 때문에 흥미 위주로 기사가 편집·노출되는 등 뉴스의 가십화가 초래됐다"며 '아웃링크'를 대책으로 제시했다. 양대 포털 점유율이 77.8%에 이르는 상황에서, 모든 독자가 똑같은 뉴스를 보는 탓에 여론 다양성이 훼손됐단 것이다. 특위는 이 보고서를 국회, 정부, 신문사, 언론계 등에 제출했다.

법제화가 요구되는 이유는 모든 포털·언론사가 일괄적으로 움직이지 않을 경우, 시장 경쟁 상황에서 사실상 현실화가 될 수 없기 때문. 뉴스 소비와 댓글 집중 문제가 제기되면서 네이버 등 포털 들도 지난해 인링크 뉴스 서비스 계약을 맺고 있는 언론사들을 대상으로 아웃링크 선호 여부에 대한 이메일 설문을 실시하는 등 도입을 검토했지만, 여론이 잠잠해지자 유야무야됐다. 당시 설문도 해당 언론사의 절반 가량이 답변을 유보하는 등 형식적인 절차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네이버의 경우 지난해 모바일 첫 화면에서 뉴스와 실시간 급상승검색어를 뺐지만 아웃링크 이슈는 그대로 덮었다. 독자들이 언론사를 선택하는 뉴스스탠드를 통해 뉴스를 볼 경우에는 해당 언론사의 조회수로 잡히지만 이는 PC로 뉴스를 볼 경우에만 해당된다. 뉴스 트래픽에서 모바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미 절대적이고 점점 심화되는 현실에서 거대 포털이 구축한 아웃링크 체제는 사실상 더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신문협회는 이와 관련해 "문제가 자율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법령 등을 통해 바로 잡는 게 국가 책무"라며 "모든 포털이 동일 규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뉴스 서비스 시장 전체를 바꿀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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