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2002년생, 2017년생(3)

머니투데이 강기택 금융부장 2019.10.07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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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과 고령화는 하나로 이어지지만 별개의 사안이기도 하다. 두 가지를 구분하면 적어도 저출산에 관한 한 한국은 문제 제기는 있되 문제 해결은 전혀 하지 못한 사회다.

통계청이 8월 발표한 지난해 출생아는 32만6800명이었다.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었다. 합계출산율은 0.98명으로 역시 사상 처음 1명이 되지 못했다. 올 1~7월 누계 출생아 수도 18만3787명으로 1 년 전보다 7.6% 적다. 이대로라면 올해 출생아 수가 20만명대로 내려 갈 수도 있다. 같은 기간 혼인건수도 8.6% 줄었다. 출생아수 반등은 앞으로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런 추세는 어제 오늘 시작된 게 아니다. 2002년에 한국은 출생아수 40만명대로 내려섰다. 2017년엔 출생아수 30만명대로 접어 들었다. 변변한 반전 없이 감소 속도가 빨라 지고 있다. 이 기간 동안 당장의 표가 중요한 위정자들은 같이 늙어 가는 그들 또래집단의 정년연장이나 연금수령액엔 민감했지만 저출산엔 상대적으로 둔감했다. 대책은 레토릭 수준에 머물렀다.

그렇게 십수년을 흘러 보낸 사이 2002년생 이후 세대의 성장에 따른 파괴적 결과는 시한폭탄처럼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현재 고2인 2002년생들이 성장하는 동안 산부인과 병원과 유아용품업체들이 먼저 존망의 갈림길에 섰다. 교사 1인당 학생수는 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줄기 시작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권을 향해 가고 있다. 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2021년 이후부터 한국사회는 전례 없던 일이 계속 될 것이다. 몇몇 대학이 문을 닫고 교수와 교직원들은 거리로 내몰릴 것이다. 병력자원이 확 줄어든 군대는 장군 수를 줄이고 기술집약형으로 변하는 것은 물론 모병제 전환도 논의해야 할 것이다.



기업들 역시 저출산에 따른 내수시장의 축소를 경험할 것이다. 1992년~2001년 출생아수는 668만여명, 2002년~2011년 출생아수는 468만여명이다. 대략 200만명이 적다는 건 확정된 사실이다. 아이들의 장난감 회사들이 겪은 일은 ‘어른들의 장난감’인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에서도 벌어질 것이다. 자동차의 내수판매 위축은 곧 정유업체의 매출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2002년 이후 세대가 결혼적령기에 진입하면 그렇지 않아도 혼인건수가 급감해 낭패스러웠던 가구, 가전 등 결혼 관련 산업의 타격도 커질 것이다. 은행은 대출상품을 이용할 신규 고객 수가 예전 같지 않아 당혹스러울 것이다. 벌써부터 지방소멸을 체감한 지방은행들이 수도권에 점포를 더 냈다. 보다 건강한 몸을 가진 가입자를 원하는 보험사의 수입보험료는 쪼그라들 것이다. 역마진에 저출산이 더해지면 망하는 곳도 나올 것이다.

무엇보다도 2002년생 이후 세대의 사회진출은 정부에 광범위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들이 생산가능인구에 잡히면서 진작에 통계청의 고용지표가 달라졌다. 소비와 물가 관련 지표를 바꿀 시기도 머지 않았다. 교육부와 국방부 외에도 납세자와 연금 납부자가 준다는 점에서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보건복지부 등도 정책을 달리 해야 하는 시점이 조만간 다가 온다. 아직 표로 결집될 수 없는 데다 표수가 현저히 적은 미래세대의 몫을 미리 가져오는 재정이나 연금 정책도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수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것이다.

[광화문] 2002년생, 2017년생(3)


저출산은 준비해도 감당하기 벅찬 과제인데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 사이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왔다. 출생아수와 혼인건수 감소로 한국의 미래는 이미 ‘확정’돼 있다. 그 미래를 조금이라도 개선하려면, 그래서 저출산 그 자체의 해결 뿐만 아니라 저출산으로 인한 파급효과에 대처하려면, 정파적 이익이나 세대이기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행은 미래세대만 덮치는 게 아니라 어느 시점에 현 세대도 덮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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