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Eat] "고기 줄이자"던 美민주당 '고기 파티' 연 사연

머니투데이 강기준 기자 2019.10.0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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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인싸'되는 '먹는(Eat)' 이야기]
"환경보호 위해 고기 줄이자"더니
당 행사에서 스테이크 1만개 구워
2014년 중단했다가 트럼프에 패배
올해 역대최대 규모로 행사 열어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 /AFPBBNews=뉴스1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 /AFPBBNews=뉴스1


[인싸Eat] "고기 줄이자"던 美민주당 '고기 파티' 연 사연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의 민주당이 '내로남불'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지난달 21일 미국 아이오와주 포크 카운티에서 열린 민주당 최대 연례 기금 모금 정치행사 '스테이크 프라이' 때문인데요. 민주당 대선후보들의 필수 코스로 여겨지며 지난 30여년간 지속돼온 전통이 왜 갑자기 '내로남불' 소리를 듣게 된 걸까요.

"'환경 위해 고기 덜먹자' 주장하더니 스테이크 1만개 구워"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이번 행사에는 민주당 대권주자 17명이 모두 모습을 드러냈고, 참석 인원도 1만2000여명에 달했습니다. 여기서 구워진 스테이크도 1만500여개에 달했습니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엘리자베스 워런 의원 등 유력 대선 후보를 비롯해 채식주의자인 카말라 해리스 의원도 스테이크를 직접 굽고, 참가자들에게 나눠주며 스킨십 보여주기에 바빴습니다.



공화당 측은 이번 행사를 두고 '위선적'이라며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친환경 100% 정책 '그린 뉴딜'에는 고기 먹는 걸 줄여서 소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데, 정작 민주당이 대대적인 스테이크 파티를 열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민주당에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고 2030년까지 100% 친환경을 달성하자는 '그린 뉴딜' 정책이 주류 담론이자 공약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 정책은 민주당의 정치 아이돌로 떠오른 29세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연방 하원의원이 제안해 유력 대선주자인 엘리자베스 워런 의원이 강력히 지지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흔들리고는 있지만 민주당 대권 후보 1위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도 대세에 떠밀려 "현실성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라면서 "화석연료를 완전히 퇴출시키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린 뉴딜 정책에 필요한 자금만 해도 6조6000억달러(약 7900조원)로 미 연방정부 1년치 예산보다도 훨씬 많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공화당은 이 정책으로 사라지는 직업, 건강보험 등 손실을 따지면 93조달러(약 11경1300조원)을 넘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내로남불' 지적에도 포기할 수 없는 '스테이크 행사'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사실 민주당에겐 '내로남불' 지적을 받더라도 '스테이크 프라이' 행사를 강행해야 할 사정이 있습니다.


아이오와주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의 첫 시작을 알리는 곳입니다. 본격적으로 대선 주자들을 추리기 시작하는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승리한 후보는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최종 대선 후보 지명에 굉장히 유리하게 됩니다. 1980년 이후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승리하고 최종 대선 후보까지 올라간 이들은 절반에 달합니다. 이 때문에 아이오와는 대선 표심의 '풍향계'로 일컬어지는 곳입니다.

매년 9월 대선주자들이 이곳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참석한 투표자들의 민심을 읽습니다. 이날 행사가 끝나고 발표된 아이오와주 최대 일간지 디모인 레지스터와 CNN 방송의 합동 여론조사 결과 워런 의원은 22%의 지지율을 기록, 1위로 올라서기도 했습니다. 오차 범위 내 간발의 차이지만 그동안 1위였던 바이든 전 부통령(20%)을 제치고 석달새 지지율을 7%포인트나 끌어올린 것입니다.

스테이크 프라이는 아이오와 남동부 도시 인애놀라에서 개최되는데, 이 지역 상원의원인 톰 하킨 의원이 시작해 30여년 가까이 이 행사를 주최했습니다.

지금처럼 대선 주자들의 필수코스가 된 것은 90년대 들어서 입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스테이크 프라이'에 참석 후 대통령이 되면서 주목받았고 이후 앨 고어, 존 케리 등 쟁쟁한 주자들이 방문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이 행사에 특별손님으로 참가한 후 인기가 급상승하며 대통령 당선까지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하킨 의원이 은퇴하면서 2014년을 끝으로 '스테이크 프라이'는 중단됩니다. 공교롭게도 하킨 의원의 자리를 이듬해 1월 곧바로 공화당의 조니 언스트 의원이 가져갔고, 그 다음해 열린 대선에선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아이오와주에서 50%가 넘는 득표율을 올리며 대권을 가져갔습니다.

결국 민주당은 2017년 스테이크 프라이 행사를 다시 열기 시작했습니다. 올해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막겠다는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한 만큼 민주당 측은 소방차, 놀이기구, 술, 팬케이크트럭 등 역대 최대 규모로 준비했습니다.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공화당에 '문화전쟁' 빌미만 줬다" 커지는 불안감
/사진=로이터통신./사진=로이터통신.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민주당이 햄버거와 플라스틱 빨대 사용금지 같은 공약 때문에 의도치 않게 공화당의 문화전쟁 함정에 빠져들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아직 대다수 미국인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용을 너무 일찍 밀어붙이면서 공화당에게 공격의 빌미만 심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뉴욕매거진은 "햄버거는 미국인이 일주일 평균 3개 먹을 정도로 사랑받는 음식"이라고 했습니다.

지난달 말 공화당 전국위원회(RNC)는 엘리자베스 워런 후보의 뉴햄프셔주 타운홀 미팅장 밖에서 '햄버거'를 들고 시위를 펼쳤습니다. 이들은 시위 도중 민주당 후보들이 "환경을 위해 모든 미국인이 채식주의로 변하는 것도 그리 나쁜 건 아니다"라는 주장들을 편집한 영상을 틀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특히 '그린 뉴딜' 정책의 막강한 지지자이기도 한 워런 의원은 환경보호론을 펼치다 예시로 백열전구, 플라스틱 빨대, 햄버거 등이 환경 파괴에 일조한다고 얘기했는데, 공화당에겐 큰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공화당 측은 "정부에서 무슨 전구를 써야할지 일일이 알려줘야 하는 건가"라고 비난하기도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플라스틱 빨대가 편한데 왜 없애야 하나"라면서 '빨대를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을 걸고 빨대를 팔아 선거자금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또 "그들이 햄버거를 뺏으려 한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그린 뉴딜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습니다. 폴리티코는 민주당 선거전략가를 인용해 현재 민주당에도 이번 사태가 '버거게이트'라고 불리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워런 의원은 잇단 햄버거 공격에 결국 지난달 말 CNN에 "제발 숨쉴 틈 좀 달라"면서 "전구와 햄버거로 물타기하는 것에 현혹되지 말라"며 답답한 속내를 내비쳤습니다. 민주당은 내년 2월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선 후보 추리기에 나섭니다. 아이오와주는 지난해에만 약 5억 부셀(1부셀당 약 27kg)의 가축 사료용 옥수수를 생산한 주이기도 합니다. 민주당은 '버거게이트' 오해를 풀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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