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 이춘재는 교도소에서 왜 괴롭힘을 당했을까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2019.10.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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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권한-지배적 연쇄살인범… 여성 등 약자만 노려 통제하는 데서 '쾌감'느끼고 강한 대상에는 순응

민갑룡 경찰청장이 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 이춘재 관련 질의를 받고 있다. 2019.10.4/뉴스1 민갑룡 경찰청장이 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 이춘재 관련 질의를 받고 있다. 2019.10.4/뉴스1




화성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 이춘재(56)가 살인 15건과 강간·강간미수 30여건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화성 9차례를 포함해 6건(화성 4건, 청주 2건)의 살인 범행을 더 저질렀다는 것이다. 4차, 5차, 7차, 9차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해자 속옷 등으로부터 이춘재의 DNA(유전자)가 검출됐다는 경찰의 압박과 회유를 통해 이춘재는 결국 입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이춘재를 둘러싼 다양한 증언들도 속속들이 나왔다. 그가 평소 교도소 내에서 바른 생활을 해온 모범수였고,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해왔다는 것이다.



◇'모범수' 된 연쇄살인용의자, 괴롭힘 당했다?

이춘재가 한 것으로 여겨지는 연쇄 살인 사건들은 매우 잔혹하고 무시무시하다. 사건들만 놓고 보면 이춘재는 흉악범 그 자체다. 하지만 일반 상식과는 다른 증언들이 연달아 쏟아져나왔다.



먼저 이춘재는 교도소 안에선 1급 모범수였다. 그는 1994년 1월 처제를 강간·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고 부산교도소에서 25년째 수감 중이었는데, 24년간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 징벌이나 조사를 단 한 차례도 받지 않았다.

4등급으로 이뤄진 수감자 등급에서 1급(S1)에 해당하는 모범수로 분류됐다. S1급은 수감자 사이에서 어렵다고 소문 난 경비처우다. 꾸준히 작업장에 출역하면서 가구제작기능사 자격을 땄고 교정작품전시회 입상 경력도 있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사건 발생 30여년 만에 경기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를 수사 중이라고 18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다른 범행으로 교도소에 수감 중인 50대"라고 말했다.  경찰은 올해 주요 미제 사건 수사 체제를 구축하고 관계 기록 검토와 증거물을 분석하던 중 7월 화성연쇄살인사건 증거물에서 채취한 DNA와 일치하는 인물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진은 7차 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의 모습. 2019.09.18. (출처=블로그 캡처, 뉴시스)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사건 발생 30여년 만에 경기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를 수사 중이라고 18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다른 범행으로 교도소에 수감 중인 50대"라고 말했다. 경찰은 올해 주요 미제 사건 수사 체제를 구축하고 관계 기록 검토와 증거물을 분석하던 중 7월 화성연쇄살인사건 증거물에서 채취한 DNA와 일치하는 인물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진은 7차 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의 모습. 2019.09.18. (출처=블로그 캡처, 뉴시스)
이춘재의 의외의 모습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춘재는 수감자들에게 괴롭힘을 받는 처지였다. 수십명을 살해한 흉악범이 겪는 일이라고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춘재와 함께 수감됐던 적 있는 교도소 동기 A씨는 MBN에 "이씨는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며 "그럴 때 이춘재는 혼자 벽을 쳐다본다거나 땅을 쳐다봤다"고 말했다.


A씨는 그러면서 이춘재가 그럴때마다 혼잣말을 했다고 증언했다. A씨는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이씨는 '25년 전에 살인사건을 여러 건 저질렀다'고 혼잣말을 했다"면서 "또 이씨가 '몇 년 동안 살인사건을 여러 번 저질렀는데 경찰이 증거를 단 하나도 찾지 못했다'고 혼자 중얼중얼댔다"고 주장했다. A씨는 "이씨가 십몇차례 정도 혼잣말을 했던 걸 정확히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이춘재 피해자는 모두 여성

이춘재가 교도소를 들어가게 된 1994년 '처제 강간·살해 사건'을 비롯해 그의 DNA가 검출된 화성연쇄살인사건 중 4차, 5차, 7차, 9차 사건 등 이춘재 범죄의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었다.
'흉악범' 이춘재는 교도소에서 왜 괴롭힘을 당했을까
예컨대 △1986년 12월14일 4차 사건의 피해자는 맞선 후 귀가하던 이모씨(23)로 스타킹으로 결박된 상태로 피살됐다. △1987년 1월10일 5차 사건의 피해자는 귀가하던 여고생 홍모양(18)으로, 스타킹으로 결박돼 살해된 채 발견됐다. △1988년 9월7일 7차 사건의 피해자는 귀가하던 주부 안모씨(52)로, 블라우스로 양손 결박된 채로 시체가 발견됐다. △1990년 11월15일 9차 사건의 피해자는 귀가하던 여중생 김모양(13)으로, 스타킹으로 결박된 상태에서 시신이 발견됐다.

이춘재가 여성이나 어린이, 노인 등 약자만을 살해의 대상으로 노린 건 다른 연쇄살인범들의 범죄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권한-지배적 연쇄살인범(The Power-Control Serial Killer)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신체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며, 이 과정 피해자를 정복하고 통제하면서 희열을 느낀다. 이에 따라 제압이 쉽고 약한 대상만을 피해자로 고른다.

권한-지배적 연쇄살인범들은 '강약약강'의 특징을 보이기 때문에, 더 강한 존재가 있거나 자신이 거부할 수 없는 사회 규범이 존재할 경우 이에 순응하고 누구보다 잘 적응한 모습을 보인다. 이에 따라 모범수 등의 특징으로 나타나지만, 이것을 체화하지는 않는다.

노인 연쇄살인범 지춘길 역시 이에 해당했다. 지춘길은 사이코패스 등 정신적인 문제가 없음에도 경북,안동,청송,봉화 등지 외딴집 노인들만 6명을 살해한 살인범이다. 그는 수차례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사회에 규범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고, 이를 지켜야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나 또 다시 살인을 저질러 약자를 복속시키면서 희열을 느꼈다.

◇이춘재의 '강약약강'(強弱弱強)… 여성·어린이·노인에게만 강하다

이춘재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자신이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여성만을 범죄 희생양으로 삼았고, 이들의 성기를 훼손하는 등의 행위를 통해 피해자들을 정복했다는 쾌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자신이 저항해도 소용 없는 교도소 시스템에는 순응하고 잘 따랐으며, 교도소 수감자들을 이춘재를 괴롭히더라도 반항하지 못하는 등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모습을 보였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씨의 '강약약강'적 태도는 다른 연쇄살인범들에게서 잘 나타나는 특징이다"라면서 "이 때문에 일반 살인에서 피해자가 여성인 비율에 비해 연쇄 살인에서 피해자가 여성인 비율은 10배 정도 높다"고 말했다.

공 교수는 "이씨의 범죄 역시 이 같은 특징을 보였기에 상당히 '치졸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씨처럼 다른 연쇄살인범들도 주로 교도소 등에서는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유영철, 강호순 등도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강한 시스템'인) 교도소 안에서는 순응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 프로파일러 출신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교수도 유사하게 설명했다. 그는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교도소 시스템은 폭력에 순응한 시스템으로, 거기선 생활을 잘할 수밖에 없다"며 "일반적인 사회관계에서는 폭력적인 상황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씨가) 자기보다 힘이 센 사람들한테는 조용히 있다가 자기보다 약한 사람한테는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는 방식, 그게 보통의 폭력적 연쇄살인범의 특징"이라고도 말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경찰대 교수)도 이춘재가 교도소에서 '강약약강'의 모습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그는 MBN에 "(이씨는 교도소에서 괴롭힘을 당할 때 중얼거렸는데, 그 의도는) '나 그렇게 만만한 사람 아냐. 사실 난 여러 명을 죽였고 이 부분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일 것)"이라며 "실제 자기가 한 행위의 분위기를 남들이 느끼기를, 그래서 자기를 괴롭히지 말고 두려워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중얼거림을 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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