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수 금융위원장(왼쪽)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사진=머니투데이DB
과거 정부 주도 경제개발 시기 산은은 현재 대기업 육성의 ‘개발금융’을 담당했고, 20세기 말 외환위기로 시중은행이 ‘줄도산’한 탓에 구조조정 업무까지 떠맡았다. 그러나 ICT(정보통신기술) 중심의 벤처·중소기업이 국가 성장동력으로 성장하며 개발금융 주도권은 시장에 넘어갔고, 구조조정 역시 자회사로 이관했다.
그러나 현실성은 떨어진다는 게 중론이다. 산은과 같은 개발은행과 ECA의 합병이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고, 산은(금융위)과 수은(기획재정부)의 관할 주무부처가 다른 탓에 ‘부처 이기주의’가 작동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수은이 이 회장이 제시한 합병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수은은 WTO(세계무역기구) 체제에서 ECA 지위를 인정받고 있는데 국내 산업진흥 역할이 큰 산은과 합병하면 ECA 지위에 위협을 받을 수 있고, 이는 수출 보조금 지원 대출 등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수은으로서는 산은과의 합병으로 얻을 실익이 많지 않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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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위원장이 강한 어조로 합병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낸 것은 수은 뿐만 아니라 금융당국의 기류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은 위원장 자신이 직전 수은 행장으로서 합병 이슈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게다가 수은 행장이 공석인 와중에 산은 회장이 합병론을 공론화한 것도 부적절하다는 게 당국의 시각이다. 금융위에서는 ‘이 회장이 갑자기 왜 얘기를 꺼냈는지 모르겠다’는 말들이 많다. 한 관계자는 “산은에 물어봐도 ‘사전에 없던 돌출 발언’이라더라”며 “당장 시급하지도 않은 얘기”라고 말했다.
한편 이 회장의 통합론에는 정책금융 전반의 구조조정 필요성에 대한 여권의 구상이 들어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해 11월 여당 싱크탱크 ‘더미래연구소’의 정책위원장으로 복귀하면서 펴낸 보고서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김 전 원장은 보고서에서 “더 이상 수행할 필요가 없어진 기능, 민간 영역에서 할 수 있어 정책금융기관이 할 필요 없는 기능 등을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통합정책금융기관 구성 논의의 시간표로 △2019년 안의 마련 △2020년 상반기 법안 제출·논의 △2020년 말 법안 통과 △2021년에는 통합 실무 추진을 제시했다.
다만 보고서는 개별 정책금융기관의 통합 대신 독일의 정책금융기관 KfW을 모델로 산은·수은·기업은행·무보 등 8개 정책금융기관을 자회사로 두는 지주회사 체제의 설립을 제안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산은·수은 합병의 현실성보다는 여권의 정책금융 재편 구상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게 이 회장의 발언을 통해 확인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