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왜 못 끊냐며, 쉽게 말했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19.08.31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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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끊고 싶어요" 흡연자 26명 모인 '금연캠프', 운영팀 직원으로 도와보니…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담배 끊으실 수 있어요." 42년 동안 담배를 피웠다는 오복근씨에게 용기를 건넸다. 담배를 피우면 아내가 싫어한다고, 이젠 건강을 챙기겠다던 그였다. 절박한 맘으로 금연캠프에 들어왔단다./사진=윤병진 운영파트장"담배 끊으실 수 있어요." 42년 동안 담배를 피웠다는 오복근씨에게 용기를 건넸다. 담배를 피우면 아내가 싫어한다고, 이젠 건강을 챙기겠다던 그였다. 절박한 맘으로 금연캠프에 들어왔단다./사진=윤병진 운영파트장


담배 왜 못 끊냐며, 쉽게 말했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나이가 지긋한 노신사 한 명이 다가왔다. 딸과 손자가 뒤따랐다.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혹시 담배 가지고 오셨어요? 여기 다 넣으시면 됩니다." 노신사에게 보라며 가리킨 통 안엔, 앞서 지나간 이들이 입맛을 다시며 넣은 담배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는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밖에서 마지막으로 한 대 피웠지. 그리고 다 버렸어. 미련 없어."

유리문을 지나면 담배는 끝이었다. 절대 피울 수 없었다. 이젠 그 안으로 향할 시간이었다. 오랜 세월 담배를 피웠다는 노신사는 "이젠 정말 끊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딸이 제발 좀 끊으라고 할 때도 아랑곳 않던 그를, 작심(作心)하게 만든 건 귀여운 손자였다. 할아버지 맘을 아는지, 손자는 "할아버지 금연 파이팅!"하며 품에 쏙 안겼다. 노신사의 입가에 주름이 깊이 패었다.



그렇게 스물여섯명이 담배를 끊겠다며 한데 모였다. 최소 20년갑(하루 평균 소비량 X 흡연기간) 이상 피워왔던 애연가들이다. 하루 담배 1갑씩 20년 넘게, 혹은 2갑씩 10년 넘게 피웠던 이들이다. 새해면 "올해는 꼭 끊는다"고 다짐하고, 얼마 안 가 담배를 물며 무너졌었다. 그리고 난 의지가 약하다며 자책하기도 했었다. 하다하다, 도저히 안 돼 벼랑 끝에선 기분으로 여기까지 왔다.

20년갑(하루 평균 흡연량 x 흡연년수)이 넘는 이들이,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어 절박한 마음으로 모이는 곳이, 이 곳 금연캠프다./사진=윤병진 파트장20년갑(하루 평균 흡연량 x 흡연년수)이 넘는 이들이,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어 절박한 마음으로 모이는 곳이, 이 곳 금연캠프다./사진=윤병진 파트장


이곳은 '금연캠프'였다. 들어가면 4박5일 동안 동병상련 흡연자들과 함께 숙식을 한다. 담배는 당연히 피울 수 없다. 그 뿐 아니라, 담배를 잘 끊을 수 있도록 심리와 약물 치료를 병행한다. 운영팀 직원, 보조 직원, 의사, 간호사, 심리치료사 등이 함께 물심양면으로 금연을 돕는단다. 2015년부터 보건복지부 지원으로 시작했다. 6개월간 금연 성공률이 무려 60%에 육박한단다. 스스로 금연에 성공할 확률이 2~3%에 불과한 걸 감안해보라. 전국 각 지역별로 있는데, 서울에선 카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서 진행하고 있다. 비용은 전액 무료다.

그래서 금연캠프 운영팀 직원이 돼 보기로 했다. 금연캠프가 전반적으로 잘 돌아가도록, 지원하는 역할이다. 흡연자들이 담배 끊는 걸 도와주고 싶었다. 그런 맘이 들게 된 계기는 이랬다.

공교롭게도, 여섯 살 때 할아버지가 이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위암이었다. 그게 뭔지도 잘 몰랐던 내게, 엄마는 "할아버지가 담배를 많이 피워서 그래"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병상에 누워 있던 할아버지는 앙상해보였다. 자전거 바람을 채워주던 건강한 모습이 아녔다. 그 장면은 평생에 걸쳐 내 뇌리에 강렬히 남았다. 그 때 생각이 났다. 그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겠지 싶어서.


괜찮으면 아빠한테도 담배 끊으라해야지, 그런 맘으로 금연캠프에 왔다. 지난달 19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됐다. 4박5일 내내 참여하고 싶었지만, 사정상 2일만 참여했다(다른 일도 바빠서ㅠㅠ).



담배 피웠다간, 딱 걸려요
여기 다녀간 흡연자들 10명 중 6명은, 무사히 흡연 유혹을 잘 이기고 금연에 성공했단다. 햇살이 따사롭다./사진=남형도 기자여기 다녀간 흡연자들 10명 중 6명은, 무사히 흡연 유혹을 잘 이기고 금연에 성공했단다. 햇살이 따사롭다./사진=남형도 기자


오전 8시30분, 서울성모병원 별관에 도착했다. 윤병진 운영팀 파트장(34)이 맞아줬다. 금연캠프서 일하지만, 그 역시 한때는 '흡연자'였다고 했다. 스무 살부터 10년간 피웠다가 끊었다고 했다. 애연가였던 그의 아버지가 건강검진에서 안 좋단 얘길 듣고 담배를 끊은 게 계기가 됐다. 그걸 본 윤 파트장도 독하게 맘을 먹었다. 그렇지만 대다수가 그리 못하는 걸 알기에, 잘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흡연자들을 돕고 있단다.

10층에 올라가니 금연캠프 숙소가 있었다. 간호사들 공간이 중심부에 있고, 인근에 방 4개가 있었다. 여기서 입소자들이 머물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잠을 자고, 식사를 한단다. 화장실엔 '흡연감지기'가 작동 중이란 경고문이 있었다. 욕구를 못 참고 담배를 피웠다가는, 바로 퇴소해 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

흰 가운을 입었다. 윤 파트장이 "잘 어울린다"고 해서 쑥스럽게 웃었다. 금연캠프 입소 시간은 낮 12시30분. 이르면 12시부터 온다고 하니, 바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텅 빈 숙소에 들어가니, 창가에 따사로운 여름 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침대에 시트를 깔고, 이불을 놓았다. 베개에도 덮개를 씌웠다. 금연을 도와줄 약 복용 안내문도 사물함마다 붙였다. '꼭 금연에 성공하길', 그런 마음으로 꾹꾹 눌렀다.

CO(일산화탄소) 측정기. 하루 2회 측정하는데, 몰래 담배 피웠다가는 딱 걸린다./사진=남형도 기자CO(일산화탄소) 측정기. 하루 2회 측정하는데, 몰래 담배 피웠다가는 딱 걸린다./사진=남형도 기자
일산화탄소(CO) 측정기를 쓰는 방법도 배웠다. 음주 측정기처럼 입으로 부는 방식이었다. 하루에 두 번 정도 한단다. 운영팀 최재원 선생님은 "혹시 담배를 몰래 피우나 체크하기 위한 이유도 있고, 처음에 들어올 때에 비해 얼마나 나아졌는지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 통상 0에서 6까지가 정상 수치인데, 담배를 피우면 심한 경우 30까지도 나온다고 했다. 궁금해서 한 번 측정해보니 4가 나왔다(비흡연자 인증).

대략적인 준비를 마치고 보조인력 직원 3명과 함께 운영팀 회의를 했다. 원활하고 안전한 캠프 진행을 위한 주의사항을 서로 얘기했다. 질병이 뭔지, 수면장애가 있는지, 알러지가 있는지 등 입소자별 특이사항을 살폈다. 금단 현상 때문에 예민해져 욕설을 하는 이도 있단다. 또 성희롱 등을 할 경우, 날짜와 시간을 명확히 기록해 파트장에게 보고해달란 당부도 했다. 퇴소는 물론이고, 경찰과 함께 단호히 대처한다고.

담배 피운 게 벌써 40년, 50년…
가져온 담배는 이곳에 다 넣어야, 금연캠프에 들어갈 수 있다./사진=남형도 기자가져온 담배는 이곳에 다 넣어야, 금연캠프에 들어갈 수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이번에 들어올 이들은 총 26명이라고 했다. 올해 열네 번째 캠프라고 했다. 여성 흡연자들이 참여할 때도 있는데, 이번엔 남성 흡연자만 참여한다고 했다.

12시가 되자 입소자들이 하나 둘씩 도착했다. 이들에게 이름을 묻고, 갈아입을 흰색 반소매 티, 그리고 관련 생활용품들을 나눠줬다. "담배나 라이터 가져왔으면 여기 내세요"란 말도 잊지 않았다. 혹여나 담배를 몰래 피우지 않도록 방지하는 차원이다. 이들이 가져온 담배와 라이터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막상 내려고 하니 아쉽네, 허허"하며 멋쩍게 웃는 이도 있었다.

흡연자들 이야기가 궁금했다. 대체 어쩌다 금연 캠프까지 오게 됐는지.

입소자 4명이 있는 504호로 향했다. 분홍색 카라티에 중절모가 멋스러운 공수동씨에게 말을 건넸다. 아까 손자 응원을 받고 들어왔던, 그 노신사다. 담배를 피운 게 벌써 55년 됐단다. 공씨는 "담배를 끊으려 애를 썼는데, 3개월 정도 됐을 때 성묘를 가러 고속도로 운전을 하다 헛것이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휴게소에서 한 대 딱 피웠더니 사라졌다고 했다. '금단현상'이었다.

처음 보는데 왜 낯이 익나 했더니, 전두환 전 대통령을 쏙 빼닮았다. 방 안에 있던 다른 입소자들 3명이 "맞다"며 폭소를 터트렸다. 실제 한 백화점에 갔더니 "전 전 대통령이 왔다"며 수군대기도 했단다.

수전증이 있는 오복근씨를 위해 입소를 위한 서류 작성을 도왔다./사진=윤병진 운영파트장수전증이 있는 오복근씨를 위해 입소를 위한 서류 작성을 도왔다./사진=윤병진 운영파트장
가르마가 잘 어울리는, 방원규씨는 스무 살 때부터 담배를 피웠다. 올해까지 40년 정도 흡연을 했다. 그러다 딸이 임신을 하면서 금연을 결심하게 됐다. 미국에 함께 여행을 갔는데, 휴게소에서 담배를 피우고 왔더니 잔향 때문에 무척 힘들어했단다. 아빠 담배 끊으라고, 걱정 어린 반 협박을 했단다. 그래서 방씨는 인터넷을 찾아보다 금연캠프에 들어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들은 들어오기 전에 피웠던 담배 이야길 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아쉬웠던 걸까. 평소 아침에만 5~6대씩 담배를 피웠다는 공씨는 "오기 직전에 담배 한 대를 피웠다"고 했고, 방씨도 "오늘 아침에 한 대 피웠다"고 고백했다.

504호에 가장 늦게 들어온 건 오복근씨였다. 그가 침대에 짐을 풀자 42년 흡연자인 송방호씨는 "마지막까지 담배 끊기 싫어서 제일 늦게 오시네"하고 농담을 건넸다. 서로를 잘 아는 이들의, 유쾌한 환영 인사였다.



니코틴이 뇌까지 7초, 담배는 '중독'이다
담배 왜 못 끊냐며, 쉽게 말했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이라. 흡연자들은 알 필요가 있었다. 그들이 오랜 시간 마주해왔던 담배의 실체가 뭔지.

그래서 첫 날 입소자들에게 알려준단다. 금연캠프 전혜란 팀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의 명(名)강의를 풀어서, 알기 쉽게 정리해봤다.

담배엔 유해물질이 4000여종 넘게 있는데, 이중 핵심은 '니코틴'이다. 담배 맛을 내는 물질이란다. 뇌혈관, 심혈관 질병을 일으키는데 가장 큰 악영향을 끼친다.

니코틴이 정말 나쁜 건 '중독'을 일으키기 때문. 담배를 피우면 니코틴이 혈액에 녹아 단 7초 만에 뇌까지 간다. 뇌에는 니코틴을 받아들이는, 꽃봉오리 모양의 '니코틴 수용체'가 있다. 니코틴과 수용체가 만나면 도파민(기분 좋게 만드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그게 담배를 피웠을 때 느끼는 효과다. 집중력을 좋게 해준다던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던지.

담배를 피울수록 뇌에 점점 니코틴 수용체가 많아진다. 그러면 수용체가 "니코틴을 더 공급해줘"란 신호를 자꾸 몸에 보낸단다. 그럼 담배가 당기고, 또 피우게 된다. 그렇게 쉽게 중독된다.

담배 효과도 불과 20~30분 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마약, 알콜 등 다른 중독 물질과 비교해도 굉장히 짧은 편이란다. 그만큼 중독성이 크단 뜻이다.

간호사와 상담을 진행 중인 입소자. 금연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개인별로 최적화된 상담을 한다. 어떻게 동기를 확실히 끌어올릴 수 있을지. 그걸 지켜보고 있는 기자./사진=윤병진 파트장간호사와 상담을 진행 중인 입소자. 금연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개인별로 최적화된 상담을 한다. 어떻게 동기를 확실히 끌어올릴 수 있을지. 그걸 지켜보고 있는 기자./사진=윤병진 파트장
니코틴 수용체는 심지어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담배를 오랜 시간 안 피워야 하는데, 보통 못 견디고 담배를 피운다. 그래서 끊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금연캠프에서도 심리상담과 함께 꼭 병행하는 게, 금연약물 치료다. '챔픽스'라 불리는 약물을 쓴다. 니코틴 수용체를 빨리 없애도록 도와주는 게, 금연약물의 효과다. 금연캠프에선 3개월 동안 이 약물을 무료로 제공해준다.

흔히들 "담배는 습관"이라 했다. 잘못된 말이란다. 전 팀장은 "금연은 '니코틴 중독'이란 병으로 접근해야 한다. 중독이 됐고, 이걸 치료하는 방법으로 접근하는 게 가장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이걸 잘 몰랐던 흡연자들은, 강의를 들으며 때론 고갤 끄덕이고, 때론 부지런히 받아 적었다.

"당연하죠, 너무 힘들죠" 그 맘 알아줬더니…
담배를 피우고 싶은 마음을 인정해준다고, 그게 심리상담의 시작이란다. 그러면 금연하려는 의지가 커질 수 있다고. 그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천은주 심리파트장과 인터뷰 중인 기자. 턱살이 많아 블러를 진하게 처리했다./사진=윤병진 파트장담배를 피우고 싶은 마음을 인정해준다고, 그게 심리상담의 시작이란다. 그러면 금연하려는 의지가 커질 수 있다고. 그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천은주 심리파트장과 인터뷰 중인 기자. 턱살이 많아 블러를 진하게 처리했다./사진=윤병진 파트장
담배의 실체를 아는 건 시작에 불과하다. 알고 있어도 금단이나 흡연 갈망 때문에 대부분 실패하기 때문이다. 이를 다스리기 위한 '마음먹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진행하는 게 입소자들과의 '심리 상담'이다. 4박5일 동안 개별 상담 두 번, 집단 상담을 두 번 한다. 이걸 위해 입소 후 아주 디테일한 심리 평가를 진행한다.

개인 프라이버시 때문에 실제 취재는 어렵다고 했다. 대신, 천은주 심리파트장에게 어떤 식으로 금연 동기를 강화하는지, 얘길 듣고 정리해봤다.

오랜 시간 금연에 실패한 이들은 마음이 이렇단다. 결심을 수십 번하고, 계속 실패하고, 그러면 결국 자포자기에 이른다. 하고 싶지 않다고, 어차피 실패할 거라고.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중독돼 있어서 맘대로 안 된다. 그 두 가지 감정이 계속 싸운다. 그게 괴롭단다.

그걸 주위에선 '의지 부족'으로 치부한단다. "야, 너 주위에선 끊었다던데 왜 못 끊냐" 이런 식이다. 근데 흡연자 스스로도 비흡연자 시각으로 그리 생각한단다. 자괴감이 커지고, 부정적인 에너지를 쏟는다. 사실 중독은 그런 게 아닌데도.

그래서 심리 상담에선 담배를 피우고픈 마음을 인정해준단다. 그걸 부정하면 안 된다고 했다. "당연하죠, 너무 힘들죠." 이렇게 얘기해준다. 그럼 어린 아이처럼 그동안 표현 못한 것들을 막 얘기한다. 분노도, 두려움도 쏟아진다. 그러다 입소자들이 비로소 이렇게 얘기한단다. "선생님, 그래도 담배 끊어야겠죠?"

그 때부턴 금연하고자 하는 의지를 최대한 키워준다. 이 과정에서 각자 삶의 가치를 들여다봐야 한다. 왜 담배를 끊고 싶은지를. 누군가는 가족, 또 누군가는 건강, 정직함, 존엄함이라 한다. 단지 그 정도론 안 된다. 굉장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끌어낸다. 그걸 이미지로 만들어 훈련시킨다. 막연하면 행동 변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담배를 대체할 것들을 정해야 한다. 흡연을 습관적으로 반복하려 했을 때, 입과 손을 묶을 수 있는 행동을 대신해야 한다. 그래서 호두를 돌리고, 시집을 읽고, 물을 마시고, 사탕을 먹는 것이다. 이런 '원리'를 알려주는 게 상담의 핵심이다.



금연캠프 선배 "할 수 있단 말에, 눈물 핑 돌아"
지난해 10월 금연캠프에 입소했던 권성호 레크레이션 강사가 후배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그 때 이후 계속해서 금연 중이다./사진=윤병진 운영파트장지난해 10월 금연캠프에 입소했던 권성호 레크레이션 강사가 후배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그 때 이후 계속해서 금연 중이다./사진=윤병진 운영파트장
입소 3일차 저녁엔 '금연캠프 선배'와의 대화 시간이 마련됐다.

지난해 10월 금연캠프에 참여했던 권성호 레크레이션 강사가 왔다. 입소자들에게 실질적인 금연유지방법, 위기대처방법 등을 알려주기 위한 거였다.

권 강사는 금연캠프 입소 1시간 전, 편의점에 가서 4500원짜리 담배 한 갑을 샀단다. 그리고 한 자리에서 네 가치를 피웠다고 했다. 담배꽁초를 버리며 "빨리 금연캠프 끝내고 여기 와서 다시 펴야지" 다짐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 버린 게 마지막 담배가 됐다. 올해 8월까지 10개월 동안, 금연을 잘 유지하고 있다.

그는 금연캠프에서의 '심리상담'이 가장 좋았다고 했다. 2시간 동안 이야길 나눴는데, 끝나고 30분 동안 울었다. 이유는 이랬다. "담배를 피우는 게 자랑도 아니라 얘기할 데도 없었는데, 그걸 맘껏 얘기했다"고. 그런데 "그 말에 한 번도 '왜 그렇게 했어요?'라고 묻지 않고 들어줘서 좋았다"고 했다. "할 수 있어"란 칭찬을 들을 땐 눈물이 핑 돌았단다.

지금도 쉽진 않다고 했다. 권 강사는 "매일 3번의 고비가 오는데, 참고 화장실로 직행해 양치질을 하고 가글도 한다"고 했다. 담배 피우고 싶은 1분을 참으라는 것. 그 고비를 넘으면 안 피울 수 있단다.

그리고 담배를 끊고 나서 가장 좋은 건 "담배 냄새가 안 나서 아이들을 안고 뽀뽀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삶에 자신감도 생기고, 건강도 좋아졌다고.



담배 당길 때마다 "참자"고…서로가 가장 잘 알았다
산책하고 있는 입소자들. 함께 있어서, 힘든 시간도 이겨낸다./사진=윤병진 운영파트장산책하고 있는 입소자들. 함께 있어서, 힘든 시간도 이겨낸다./사진=윤병진 운영파트장
흡연자들을 다시 살게 하기 위한 시간들이 그리 흘러갔다. 8시30분엔 운동을 하고, 간호사와 의사가 24시간 그들의 건강을 살폈다. 점심 무렵엔 숙소 인근 미도산과 몽마르뜨 공원에서 산책도 했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미술 치료도 진행됐다. 밤 11시면 불이 꺼졌고, 아침 7시40분이면 다시 하루가 시작됐다. 모두가 인고하는 시간이었다.

캠프 마지막 날인 5일차 아침이 됐다. 이날 8시, 그들을 다시 만나러 갔다.

병원 1층에서 윤 파트장 얼굴을 보자마자 지켜보지 못한 시간이 궁금해졌다. 조심스레 이것부터 물었다. "이번 캠프도 잘 진행된 거죠?" 겉으론 별 일 없었느냐 묻는 거였지만, 속뜻은 달랐다. 입소자 26명 중에 한 명도 낙오자가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던진 말이었다. 그는 내 맘을 알겠다는 듯 웃으며 "그럼요!"라고 자신 있게 대답을 했다. 포기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10층에 도착해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했다. 첫 날, 담배를 반납할 때부터 지켜봤던 이들이었다. 복도를 오가는 이들에게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하고 인사를 건넸다. 짐작건대 공기가 달라졌음이 느껴졌다. 처음엔 걱정과 두려움으로 묵직했던 이곳이, 한결 밝고 가벼워져 있었다. 담배와의 싸움을 이겨낸 이들이, 언뜻언뜻 보여준 웃음에 마음이 놓여서였을까. 덩달아 내 발걸음도 경쾌해졌다.

인터뷰하며 많은 얘길 나눴던, 504호로 향했다. 입소자 4명의 안색이 달라져 있었다. 의학적 지식은 전혀 없지만, 맨눈으로 보기에도 첫날과는 낯빛이 확연히 달랐다. 더 맑고, 깨끗하고, 건강한 빛을 띠는 얼굴이었다. 그들은 원래 머물렀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챙기고 있었다. 옷을 개어 넣고, 칫솔과 치약 등 생활용품을 가방에 챙겼다. 퇴소식은 9시30분이라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

분홍색 카라티가 잘 어울리는 공수동씨(왼쪽)와 오복근씨(가운데), 그리고 기자(오른쪽). 얼굴빛이 처음 금연캠프에 들어왔을 때와는 딴판이었다./사진=윤병진 파트장분홍색 카라티가 잘 어울리는 공수동씨(왼쪽)와 오복근씨(가운데), 그리고 기자(오른쪽). 얼굴빛이 처음 금연캠프에 들어왔을 때와는 딴판이었다./사진=윤병진 파트장
실제 컨디션이 좋다고 했다. 전 전 대통령을 닮은 공수동씨는 "담배를 안 피우니까, 기분학(學)상으로 정신이 맑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송방호씨는 "담배를 끊기 전 컨디션이 40이었다면, 지금은 80까지 올라왔다"고 했다. 오복근씨는 "목도 좋아지고, 속도 편해졌다"고 했다.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단다. 1일차엔 괜찮아, 잘해야지 했다가, 2일차엔 화가 나기 시작하고, 3일차엔 폭발했다가 4일차엔 좀 나아지고 5일차엔 웃으며 나간다고. 이들을 지켜봤던, 윤 파트장의 설명이었다. 이번엔 그런 사례가 없었지만, 심할 땐 욕설을 하는 이도 있다고. 금단현상 때문에 예민해지는 탓이다. 그래도 나중엔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떠난단다. 금연캠프 기간이 4박5일인 이유도, 이 기간을 홀로 견디는 게 가장 힘들어서라고 했다.

동고동락했던 금연 동지들이, 힘든 시간에 큰 힘이 됐다고 했다. 40~50년씩 담배를 피운 이들 아닌가. 각자 언제 담배가 당기는지, 그 시간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으니, 무너지려 할 때마다 서로 "참자, 할 수 있다"고 격려를 했단다. 그 말 한 마디가 큰 힘이 됐다고 했다. 그리고 캠프를 도와줬던 모든 이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힘들었던 마음을 알아주고, 건강을 보살펴주고, 운동을 시켜줬다고. 방원규씨는 "가족도 그렇게 못할 것"이라며 "너무 고맙다"고 했다.



10대로 돌아간다면, "담배 안 피워요"
금연캠프 퇴소식. 다들 고생하셨습니다./사진=남형도 기자금연캠프 퇴소식. 다들 고생하셨습니다./사진=남형도 기자
입소자들은 그러면서 사랑하는 가족들 얘길 했다.

방씨는 "이제 임신한 딸을 맘 편히 볼 수 있다"고 했다. 손녀가 태어나기 전에 금연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공씨도 "손자가 하와이에 여행 가 있는데, 떳떳하게 마중나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뽀뽀도 마음 편히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전에도 뽀뽀를 하긴 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단다. 오씨도 "아내가 담배 냄새 난다고 인상을 썼는데, 끊었다고 좋아할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곤 "이젠 흡연자들을 멀리해야지"하며 웃었다.

그리고 40~50년 전을 회상했다. 담배를 처음 폈던, 어린 시절이다. 시작은 단순했다. 그냥 담배 피우는 게 멋있어보여서 배웠단다. 고1 때 담배를 처음 피웠다는 공씨는 "옛날에 신성일이 담배를 피우는데, 진짜 멋있어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친구 세 명과 함께, 좁은 화장실에 들어가 담배 한 가치를 나눠 피웠단다. 나무판자 위에 올라가 "캬, 좋다"고 하고 있다가, 무게를 못 이겨 밑으로 푹 내려앉아 버렸다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물었다. 다시 돌아가면 담배를 안 피울 것 같냐고. 이들은 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절대 안 피우죠. 담배는 백해무익한 거야. 아무리 예찬론을 펴도, 그건 궤변일 뿐이에요." 그 때 송방호씨가 말했다. "한 가지 좋은 건 있어, 어디 종기가 났는데 담배를 피우니까 안 커지더라고." 그러자 방씨가 촌철살인을 날렸다. "그만큼 독하다는 거야."

퇴소식을 하러 지하로 내려가던 엘리베이터. 입소자들 중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어? 담배 냄새 나는데, 누구야?" 그랬더니 또 다른 누군가 답했다. "우리 처음에 입고 왔던 옷에서 나는 거잖아." 그러자 또 다른 이가 말했다. "그 땐 몰랐는데, 이제 냄새가 나네."



'흡연자'들을 잘 몰랐었다
금연에 완전히 성공할 때까지 파이팅, 건강과 가족과 행복을 위해./사진=윤병진 파트장금연에 완전히 성공할 때까지 파이팅, 건강과 가족과 행복을 위해./사진=윤병진 파트장
그렇게 금연캠프가 끝났다. 물론 아직 금연에 성공했다 말할 순 없다. 그래도 중요한 첫 발을 뗐다. 4주 성공률은 무려 99%에 달한단다. 이들은 금연캠프를 떠나며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있는, 주위의 소중한 이들을 떠올렸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여기 꼭 오라고 하고 싶다고.

비흡연자라 잘 몰랐다. 그냥 담배 냄새가 지독히 싫었었다. 내 얘기다. 왜 저렇게 담배를 피우냐고, 못 끊는다고, 의지가 약하다고, 쉽게 얘기했었다. 담배 냄새를 맡을 때마다 온 신경이 곤두서서, 왜 아무데서나 저렇게 피우냐고 나무랐었다. 물론, 지금도 담배 냄새가 좋은 건 아니다. 그래도 이젠 많이 알게 됐다. 그들이 끊으려 해도, 마음처럼 잘 안 됐다는 것을. 가벼운 습관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중독'이었다는 것도.

담뱃갑의 무서운 그림보다 더 중요한 게 뭘까, 그런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사진=뉴스1담뱃갑의 무서운 그림보다 더 중요한 게 뭘까, 그런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사진=뉴스1
그러니 부디, 으름장을 놓는 정책만 많이 벌이진 않기를. 이들은 어쩌면 담뱃갑의 무서운 그림보다, 도움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무작정 흡연구역을 없애고, 담뱃값을 올리고, 인상을 찌푸리며 코너로 내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담뱃값에 포함된 세금으로 '니코틴 중독'이란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실질적 지원책을 많이 늘리면 어떨지. 크나큰 서울시내에 이처럼 금연캠프를 할 수 있는 병원이 아직 한 곳밖에 안 된다고 한다. 흡연자들을 바라보는 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했다.

금연캠프를 떠나며, 밝게 감사하다며, 두 손을 맞잡는 입소자들을 보며 한 공익광고 문구가 생각났다. "담배는 강하지만, 우리는 더 강하다"는. 빌딩 구석에서, 집 앞에서, 화장실 한쪽에서, 몰래 피워야했던 이들이 혼자가 아니라 함께였다면. 좀 더 빨리 그랬다면 괜찮지 않았을까, 어쩌면 말이다.



에필로그(epilogue)

담배 왜 못 끊냐며, 쉽게 말했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아빠가 담배를 피우는 게 싫었었다. 이따금씩 밤에 까끌까끌한 턱을 비비며 내게 뽀뽀를 했다. 그 때마다 담배 냄새 난다고, 숨을 꾹 참았다. 때론 아빠 담배가 보이면, 몰래 숨기기도 했다. 그럼 끊을 거라 순진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면 또 다른 담배가 생겼다.

아무 것도 몰랐다. 아빠가 담배를 왜 피우는지. 금연캠프에서 심리상담사가 그랬다. 담배는 일종의 기능이고 역할이라고. 단순히 피우는 게 아니라고. 스트레스 받을 때, 쉬는 시간에 피우지 않느냐고. 그게 친구일 수도, 쉼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퇴근해 집에 와선 쉬이 힘들단 얘기도 못했던 아빠에게, 담배는 어떤 의미였을까. 마흔 즈음이 되니 이제야 그게 궁금해 진다.

오랜만에 안부 전화 한 통을 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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