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사기범은 A씨의 휴대폰을 원격조종해 신용카드사의 현금서비스, 카드론 대출을 실행하고 "정상적으로 이체되는지 시험해보겠다"며 A씨에게 직접 비밀번호를 입력하게 해 다른 계좌로 4900만원을 이체했다.
지난해 이런 식으로 보이스피싱에 당한 피해자는 4만8743명, 금액이 4440억원에 달했다. 피해액은 전년대비 83% 급증했다. 하루 평균 134명이 12억원에 달하는 생돈을 범죄조직에게 뜯긴 셈이다.
'가짜 대출 유혹에 왜 바보같이 속을까' 싶지만 보이스피싱을 의심하는 사람들까지 속일 정도로 범죄조직의 수법은 진화했다. 실제로 정부는 전화나 문자로 대출권유를 받으면 보이스피싱을 의심하고 반드시 금융회사의 실제 존재여부를 확인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이를 그대로 따라도 당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피해자의 휴대폰에 '전화 가로채기' 앱을 설치토록 유도하고 보이스피싱이 의심스러워 해당 금융기관에 확인전화를 걸면 범죄조직이 그 전화를 가로채 안심시키는 수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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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칭형은 검찰이나 경찰, 금융감독원 등을 사칭하거나 SNS, 메신저를 통해 가족 등 지인으로 가장해 금전을 편취하는 방식이다. 작년 사칭형 피해는 1336억원이었다. 대출빙자형에 비해 피해액은 적지만 전년대비 증가율은 116.4%로 대출빙자형(71.1%)보다 크게 높았다. 50대 이하가 대부분 대출빙자형에 당한 것과 달리 60대 이상 피해자의 절반 이상(54.1%)은 사칭형 피해를 입었다.
최근엔 SNS를 활용한 메신저피싱이 급증하고 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타인의 메신저 아이디를 도용해 로그인한 뒤 등록된 지인에게 메시지를 보내 금전을 탈취하는 신종 범죄수법이다. 작년 피해건수는 전년대비 582.4%, 피해액은 272.1% 폭증했다. 특히 자녀, 조카 등을 사칭해 거절하기 힘든 부탁을 하는 등 50~60대를 겨냥한 메신저피싱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사칭형이 고령층에게만 집중된 것은 아니다. 작년 20~30대가 사칭형 피싱을 당한 금액도 371억원에 달한다. 금감원이 지난해 9월 대학생 13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검찰이나 금감원이 돈을 안전하게 보관해준다"고 잘못 알고 있는 비율이 35.2%나 됐다. 사칭형 보이스피싱의 대표적인 수법이 검찰이나 금감원이 안전하게 보관해줄테니 돈을 보내라는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누가 바보같이 보이스피싱에 속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누구나 노출돼 있는 범죄"라며 "특히 20대의 피해가 급증하는 등 전 연령에 걸쳐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