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경제도발] 한일 경제전쟁, 미국은 누구 편일까?

머니투데이 뉴욕=이상배 특파원 2019.08.0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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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의 뉴욕브리핑] 美 중재 걷어차고 '백색국가' 제외 강행한 일본…美, '한일 양비론'에서 '일본 책임론' 강해질듯

강경화 외교부 장관(맨 왼쪽)이 2일 오후(현지시간)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가운데),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외교장관회담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기념촬영 후 강경화 장관과 고노 다로 외무상을 향해 손짓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강경화 외교부 장관(맨 왼쪽)이 2일 오후(현지시간)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가운데),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외교장관회담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기념촬영 후 강경화 장관과 고노 다로 외무상을 향해 손짓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동안 한일 갈등을 바라보는 미국 행정부의 시각은 '양비론'(兩非論)이었다. 한일 정부가 각각 정치적 이유로 양국간 신뢰를 깼다는 게 미 행정부의 판단이었다.

한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고,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8개월 동안 해결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는 일본의 주장에 경도된 셈이다.



그러나 일본이 미국의 중재까지 걷어차며 한국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수출심사 우대국) 제외를 강행함에 따라 앞으론 일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美, 한미 북핵공조 붕괴·지소미아 파기·중국 견제 차질 우려



미 국무부 당국자는 3일 한국 언론의 서면질의에 "한일 양국간 신뢰를 훼손해온 양국의 정치적 결정에 대해 성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과 일본 정부 모두 반성하라는 얘기다.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가운데 어느 한쪽 편만 들어줄 수 없다는 고민도 깔려있다. 그동안 미국이 "한일 양국이 스스로 해결하라"며 개입을 자제해왔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랬던 미국이 최근 적극 중재에 나선 건 한일 경제갈등이 안보 문제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면서다. 미국이 우려하는 건 크게 3가지다.


첫째, 한미간 북핵 공조의 붕괴다. 익명을 요구한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한일 분쟁은 트럼프 행정부의 최우선 외교정책 중 하나인 북한 비핵화를 위한 대북 협상에 필요한 한일간 협력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한일정치를 연구하는 셀레스티 아링턴 교수도 "한일 공조 붕괴는 북한 비핵화를 위한 미국의 노력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며 "북핵 폐기는 궁극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협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했다.

두번째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 파기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2일 기자들과 만나 "(일본과) 민감한 군사정보 공유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를 포함해 종합적인 대응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지소미아 파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일본에 지소미아 연장 거부 의사를 통보할 수 있는 시한은 오는 24일이다

특히 북한이 최근 3차례에 걸쳐 단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를 단행하면서 미국 입장에선 한일 양국의 북한 관련 군사정보 공유가 더욱 중요해진 터다.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은 괌을 포함한 미국 영토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국과 일본 내 미군기지는 사정권에 들어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 수행의 차질이다.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기 위해선 동북아시아 해역에서 한미일의 군사 공조가 필수적이다. 미국은 한미동맹을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의 린치핀(linchpin·핵심축)'이라고 강조해왔다.

◇美 중재 걷어찬 일본…"일본도 잘못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최근 한일 양국에 추가적인 상호적대 행위를 잠정 중단하는 '휴전 협정'(standstill agreement) 체결을 촉구했다. 갈등이 확대되지 않도록 일본은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보류하고, 한국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위한 일본기업의 한국내 자산 처분을 유예하라는 제안이었다.

그럼에도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강행하면서 미국의 1차 중재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2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만났지만 일본의 태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일본이 미국의 제안을 뿌리치며 사태를 악화시킴에 따라 한일 갈등에 대한 미국 조야의 시각도 일본에 부정적인 쪽으로 바뀌기 시작할 전망이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미국은 지금까지 한국이 잘못했다고 생각해왔다"며 "하지만 한국에 대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일본도 잘못했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뀔 것"이라는 미 행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전했다.

미 주요 언론들도 일본을 가해자, 한국을 피해자로 묘사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이 한국과의 무역분쟁을 촉발했다"고 보도했고, 워싱턴포스트(WP)와 LA타임즈는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분쟁을 격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관건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을 상대로 한일 갈등 해결을 요구할지 여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한일) 양쪽이 모두 원한다면 (관여)하게 될 것"이라면서도 "그건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 '풀타임 직업'(full-time job·상근직)이 될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길 희망한다"며 발을 뺐다.

그러나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에 따른 미국 기업들의 타격이 가시화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개입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달 미 반도체산업협회(SIA) 등 미국 IT(정보기술) 기업 단체들은 일본의 반도체 관련 수출규제에 우려를 표하며 한일 양국에 갈등 해결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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