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 소감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도연명이 이 술을 맛보면 깊이 고개 숙이고, 굴원이 맛을 보면 홀로 깨어 있으려 할 것”이라는 표현으로 증명한다.
조선 후기 문인인 김창업은 1713년 연경에 머물면서 일기에 “오늘 죽통에 넣어두었던 초장(炒醬)을 꺼내어 먹었다”고 썼다. 글만으로는 고추장인지 된장인지 알 수 없으나, 해외에 갈 때 필수품처럼 챙기는 요즘 한국인의 습성과 닮은 대목이다.
한반도에 새로 유입된 두 가지 채소 중 이옥(조선후기 문인)은 고추를 유별나게 좋아했다. 겨자장보다 고추장을 즐겨 먹은 그는 술집에 갈 때마다 붉은 고추 가운데를 찢어 씨를 발라 장에 찍어 안주로 씹어 먹었는데, 주모가 흠칫 놀라며 두려워하기까지 했다.
영조의 ‘고추장 사랑’은 유별났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도제조 김약로가 “장을 잘 담갔다”고 아뢰자, 영조는 “고추장은 근래 들어 담근 것이지. 만약 옛날에도 있었다면 틀림없이 먹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승정원일기에서 고추장과 관련된 단어들만 무려 22건이 검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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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세 영조는 스스로 “송이, 생복(生鰒, 익히지 않은 전복), 아치(兒雉, 어린 꿩), 고추장 이 네 가지 맛이 있으면 밥을 잘 먹으니, 이로써 보면 입맛이 영구히 늙은 것은 아니다”고 말할 정도로 고추장을 즐겨먹었다.
조선 선비들이 미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남겼으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은 가치는 ‘절제’였다. 허균은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본성이요. 특히 식욕은 생명과 관계된다”며 “옛 선현들이 먹고 마시는 일을 천히 여겼던 것은 먹는 것을 탐해 이익을 좇는 일을 경계한 것이지, 어찌 먹는 일을 폐하고 음식에 관해서는 말도 꺼내지 말라는 것이겠는가”라고 탐식을 경계했다.
이옥 또한 글을 통해 음식 사치에 대해 비판했다. 특히 지역 사람들끼리 자기네 음식이 더 낫다며 다투는 모습을 지적했다. “각기 좋아하는 것이 다를 뿐인데, 어느 것이 짧고 어느 것이 길단 말인가. 먹을거리는 다만 맛으로 취하여야 하고 명성으로 취하지 말아야 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다들 이식(耳食, 귀로 먹는다)을 하여 이름만 취하고 맛으로 취하지 않는다.” 맛집 소문에 대한 허상을 꼬집는 지적은 300년 전에도 여전했던 모양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지식인 중 가장 많은 잔소리를 글로 남겼다. 그가 쓴 ‘사소절’에는 △음식이 나오면 즉시 먹을 것 △남의 집에서 식사할 땐 그 집의 형편을 염려할 것 △집에 색다른 음식이 있거든 아무리 적어도 노소와 귀천을 따지지 말고 고루 나눠 먹을 것 등 먹는 일에서 지켜야 할 작은 예절을 꼼꼼하게 제시했다.
남성들이 주로 먹는 데 치중했다면 여성들은 주로 요리법을 글로 남겼다. 조선 시대 여성이 쓴 가장 유명한 요리책은 ‘음식디미방’과 빙허각 이씨가 쓴 ‘규합총서’다. 두 책엔 딸과 며느리에게 전해준다는 말이 있다. 전근대 시기 요리법은 어머니에게서 딸에게,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에게 대대로 전해졌고, 같은 당파나 혼인으로 맺어진 집안 사이에 공유되기도 했다.
‘음식디미방’의 마지막 쪽엔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이 책을 이리 눈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을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자식들은 각각 베껴 가되, 이 책을 가져갈 생각일랑 생심 내지 말며 부디 상하지 말게 간수하여 쉽게 떨어져 버리게 하지 말라.” 덕분에 17세기 경상도 북부 지역에서 살았던 영민한 한 부인의 요리 지식이 온전하게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저자는 “한 사람의 음식 경험에는 개인의 삶은 물론이고 그 사람이 사는 시대의 정황과 역사가 담겨있다”며 “‘음식 글’을 통해 조선시대 음식 역사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선의 미식가들=주영하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352쪽/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