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는 주연·모빌리티는 들러리…'혁신' 빠진 공유경제

머니투데이 김지영 기자, 서진욱 기자, 강미선 기자 2019.07.1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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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또다른 택시회사 탄생"…렌터카 등 유휴자원 활용 못해…해외‧대기업 잠식 우려

플랫폼 택시의 3가지 유형/자료=국토교통부플랫폼 택시의 3가지 유형/자료=국토교통부


정부가 17일 택시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했지만 렌터카 등 다양한 운송 방식의 시장 진입 장벽을 높이면서 스마트 모빌리티 성장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차량공유를 하려면 택시 면허를 사야 해 또 다른 택시가 아니냐는 비판이다. 기존 택시산업을 중심으로만 모빌리티 정책이 마련되면서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 더 나아가서는 공유경제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택시회사 나오는 꼴"=이날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택시제도 개편 방안의 핵심은 정부가 카카오, 타다 등 플랫폼 업체에게 '운영 가능 차량 대수'를 정해주고, 그 안에서 플랫폼 업체가 사업하는 모델을 만든다는 것. 플랫폼 업체는 차량을 할당받은 대가로 기여금에다 차량 구입비까지 추가로 내야 한다. 타다가 지금처럼 렌터카를 이용하는 건 허용되지 않는다. 타다가 플랫폼 운송사업자가 되려면 차량을 새로 사고 기여금도 내야 한다. 탄탄한 자본력 없이는 시장 진입 자체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병태 카이스트 IT경영학과 교수는 "공유경제와 모빌리티 사업은 유휴 자산을 최대한 활용해 다양한 형태로 활용하는 것이 기본인데 이제 택시 틀에서만 경쟁하라는 것"이라며 "결국 다양한 서비스 모델과 접목 가능한 모빌리티 사업을 기존의 택시사업 틀로 재단해 혁신을 가로막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렌터카를 활용한 서비스의 경우 정부가 이미 합법이라고 인정했던 것인데 다시 번복하는 것"이라며 "타다는 이름만 유지되고 새로운 서비스는 결국 택시 회사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버, 그랩 등 외국 플랫폼사업자는 자가용 차량 등 유휴 자원을 이용한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정부 정책대로 라면 우리는 사실상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운전기사도 반드시 택시기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야 해 플랫폼 운송사업은 택시회사를 차리는 셈이다.

정미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책팀장은 "렌터카 조달을 불허하게 되면 사업자가 차량을 직접 구매하는 방법으로 서비스를 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사업자 부담이 커지고 새로운 서비스 유형 개발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경욱 국토교통부 차관은 "렌터카를 통한 차량 확보에 대해서도 협의하려고 했으나 택시업계 거부감이 강해 반영하지 못했다"며 "타다도 플랫폼 운송사업제도로 단계적으로 흡수돼야 한다.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찾겠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외부사진사진제공=외부사진
◇"대기업·해외자본 잠식 우려"=대기업 위주로 모빌리티 시장이 재편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정책위원은 "면허 임대를 위해서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이 직간접적으로 모빌리티 사업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럴 경우 총량이 정해진 면허 사업이 대기업들의 대리전 형태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해외 사업자들의 국내 모빌리티 시장 진입 가능성도 커졌다. 국토교통부는 '웨이고 블루'와 같은 가맹사업 방식에 대해 진입 규제와 차량 외관 등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할 방침이다. 이럴 경우 택시가 우버 등 해외 사업자와 손을 잡으면 국내에서 사업을 허가 받을 수 있는 우회로가 열리는 셈이다. 차 위원은 "지금과 같은 가맹 사업, 프랜차이즈 형태로 간다면 우버도 국내 시장에 진입이 가능하다"며 "우버 뿐 아니라 자본력을 갖춘 해외 기업에 시장을 열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공유경제 큰 틀에서 모빌리티 정책 펴야=이동수단 플랫폼인 '카카오T'와 같은 중개형 플랫폼 사업 활성화 방안도 기존 사업에 대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교수는 "잘 운영되고 있는 서비스를 정부가 제도권 내로 편입해 활성화하겠다는 것은 관치"라고 꼬집었다.

업계 전문가들은 공유경제, 미래 모빌리티 산업 등에 대한 장기적 비전 아래 정책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합리적인 요금, 맞춤형 택시 등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 개선도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이미 해외 서비스에 비해 뒤쳐진 상황에서 나온 모빌리티 정책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국토부는 이날 발표한 대책들과 관련해 실무협의체를 통해 세부안을 가다듬은 뒤 법률 개정안을 오는 9월 또는 연말에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카카오, 타다 등 플랫폼 업체가 택시 면허를 사서 직접 운송사업을 하려면 해를 넘겨야 할 전망이다.

차 위원은 "뒤늦게 나온 정책에 대한 업계 아쉬움이 크지만 사업 불확실성을 낮췄다"며 "개편안에 구체적인 정책 보완을 통해 골격에 살을 붙이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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