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반지 팔아 대학 갔던 소녀의 반전스토리

머니투데이 박광범 기자 2019.07.10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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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국내 첫 여성 외환딜러 출신 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장

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장/사진제공=국제금융연수원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장/사진제공=국제금융연수원


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장은 경제계에서 유리천장을 깨려는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그는 오는 9월에 영국 런던에서 '젠더 다이버시티(Gender Diversity·성 다양성)'를 주제로 열리는 WCBI(세계금융연수기관 총회)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한다.

'국내 첫 여성 외환딜러'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실은 대학입학부터 쉽지 않았다. 오빠에게 입주 가정교사까지 붙여준 부모님은 딸이 대학에 가는 걸 원치 않았다. 몰래 입학시험을 봐 합격했지만 아버지는 학비를 대줄 수 없다며 진학을 포기하라고 했다. 3일간 단식하며 무력시위를 하니 어머니가 반지를 팔아 등록금을 마련해줬다.



김 원장이 학창시절을 보낸 1960년대는 많은 사람들의 삶이 그랬지만 김 원장은 시대에 순응하지 않았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서도 일을 하고 싶었던 김 원장은 외국계 회사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971년 외국계 엔지니어링 회사에 들어갔고 1975년 스탠다드차타드(SC) 은행을 거쳐 1977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아멕스) 은행에 비서로 취업했다. 모시던 아멕스 은행의 한국 지부장이 김 원장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놨다. "한국도 곧 외환시장을 개방할 것이고 외환딜러가 필요할 테니 준비해 보라"며 외환딜러로의 변신을 권했다. 싱가폴 출장길에 사온 'Foreign Exchange Market'(외환시장)이라는 영문서적도 건넸다.



고심 끝에 도전을 선택했다. 회사는 김 원장에게 싱가폴, 홍콩, 런던, 뉴욕 등으로 단기 연수를 보내줬고, 1980년 1월 외환딜러로 변신했다. 국내 첫 여성 외환딜러의 탄생이었다.

외환딜러로서의 삶은 탄탄대로였다. 3년 만에 수석 딜러(Chief Dealer)가 됐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여성 행원이 결혼을 하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결혼각서제'가 있던 국내 은행들은 물론 해외에서도 드문 여성 수석딜러였다. 김 원장은 "미국 사람들은 당시에도 오로지 성과로만 직원을 평가했다"며 "조직이 저를 최고의 외환딜러로 만들어 줬다"고 말했다.

외환딜러로서의 경험을 책으로 쓴 '나는 나를 베팅한다'는 많은 여성 금융인들을 배출하는데 기여했다. 박현주 SC제일은행 부행장과 박현남 도이치은행 서울지점장 등이 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환딜러로 꽃길을 걷던 김 원장은 또 한 번 큰 결심을 한다. 억대 연봉을 마다하고 사재를 털어 1995년 한국국제금융연수원을 설립한 것. 그때부터 지금까지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김 원장은 다양한 대외활동을 즐기는 '모임의 여왕'이기도 하다. 가장 애착을 갖는 모임은 2003년부터 대표를 맡고 있는 '여금넷'(여성금융인네트워크)이다. 여금넷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2017년 여성 금융인 국제 컨퍼런스에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를 초청한 일이다. 직접 IMF에 이메일을 보내 여금넷과 행사 취지를 설명해 라가르드 총재를 설득했다.

최근 그의 최대 관심사는 국내 금융회사들의 여성 임원 비중을 30% 이상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김 원장은 "기회가 날 때마다 제가 쌓아온 네트워크와 인맥을 여성 금융인 후배들에게 소개하고 있다"며 "금융계의 유리천장을 깨는 게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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