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트라우마' 지울까? 트럼프 잡으러 온 두 女전사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2019.07.07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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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人세계IN]초부유세 등 급진 진보정책들로 중무장한 엘리자베스 워런…민주당 지지율 1위 조 바이든 얼굴서 웃음기 뺀 카말라 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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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트라우마' 지울까? 트럼프 잡으러 온 두 女전사


#유권자들은 토론에서 카말라 해리스와 엘리자베스 워런에게 최고 점수를 줬다(폴리티코, 2019년7월2일)
#엘리자베스 워런과 카말라 해리스가 쇼를 훔쳤다(살론, 2019년 6월30일)

2020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지난 26~27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민주당 첫 TV 토론의 주된 관전평이다. '나에게는 계획이 있다'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시종일관 논리정연한 연설로 좌중의 감탄을 자아내며 '우위'를 지켰고 '여자 오바마'를 꿈꾸는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은 정치 9단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진땀 흘리게 하면서 치고 올라왔다.



◇엘리자베스 워런, 못난이 토론광→월가 저승사자→트럼프 저격수로=첫 날 토론에서 돋보인 민주당 예비 대선주자는 워런 의원이었다. 그는 이날 밤에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나에겐 그것에 대한 계획이 있다(I have a plan for that)"라며 복지, 교육, 세제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의제들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논리정연하게 전달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워런은 민주당 내에서도 급진적인 진보정책들로 이미 숱한 화제를 낳았다.



대표적 예가 초부유세 도입이다. 자산 500만달러(약 586억원) 이상을 가진 부자들을 대상으로 연 2% 과세를 하고 10억달러 이상 부자들에겐 3%의 세금을 부과하자는 내용이다. 고율 과세를 피해 미국 국적을 포기하는 이들에겐 40%에 달하는 국적포기세를 물리자고 주장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과 같은 거대 테크 기업들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기 때문에 해체를 하자고 주장했고 1억달러가 넘는 이익을 본 기업은 초과 이익의 7%를 세금으로 납부케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복지정책도 과감하다. 연소득 10만달러 이하 가구 중 학자금 부채를 지고 있는 이들의 빚을 5만달러까지 탕감해주자는 공약을 내걸었다. 연방 빈곤 수준의 200% 미만의 소득이 있는 가구의 아이들을 국가가 무상보육 해줘야 한다는 전면적 보편 복지도 내세웠다.


재원은 초부유세나 법인세로 마련할 수 있다는 설명인데 일각에서는 초부유세를 통해 10년간 2조7500만달러(약 3085조원)의 세수가 걷힐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의 그는 금융 소비자 권익 보호에 앞장서 왔다. 금융업계에 각종 규제 도입을 주장해 '월가의 저승사자'로도 불린다.

정당도, 공약의 성격도 정 반대인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과 일찌감치 대립각을 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미국 원주민 혈통인 것을 두고 '포카혼타스'라고 조롱했고 워런은 '러시아 스캔들'을 들어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고 강경 대응했다.

문제점 분석과 대안 제시가 명료한 것은 아마도 어릴적부터 갈고 닦은 토론 실력 덕분인 듯하다.

뉴욕타임스는 '엘리자베스 워런은 어떻게 싸우는 법을 배웠나'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그녀는 고교 시절 토론자들을 상대해 정기적으로 이겼다"며 "그녀는 메디케어나 핵무기 등 큰 주제들에 대해 배우는 것을 사랑했고 젊은 여성에게 결혼이 우선이던 시절, 토론은 남성들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장소였다"고 전했다.

저소득층을 위한 파격적인 복지 정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그가 파산법을 강의하면서 낭떠러지에 몰린 숱한 가정들의 생생한 사연을 들어온 영향도 있지만 그 자신도 어린 시절,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실직 위기에 놓이고 어머니가 '시어스' 백화점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한 것을 봐온 경험이 각인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3남1녀 중 막내딸이던 워런에게 "우리 못난이, 살다보면 나아지더라"라고 말했다지만 워런은 지금의 미국은, 적어도 중산층에게 만큼은 수십 년 전보다 더 나빠져 나아질 수 없는 상황이라 항변한다.

워런은 자신의 저서 '이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다'에서 "시어스의 그 일자리 덕분에 엄마는 세 식구의 생계를 책임졌지만 오늘날 정규 직장에 다니며 최저임금을 받는 어머니는 미국 어느 곳에서도 일반적인 방 두 개짜리 아파트 월세를 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녀가 급진적인 공약들을 내놓은 이유다.
엘리자베스 워런 美 상원의원/사진=AFP엘리자베스 워런 美 상원의원/사진=AFP
◇'형언할 수 없는 카리스마' 카말라 해리스=첫 토론의 백미는 둘째날이었다. 지지율 상위 5위 인사 중 워런을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이 모두 나왔기 때문이다.

그 백미의 날 중에서도 압권은 카말라 해리스 미국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이 자신보다 23살이나 많은 정치판 백전 노장이자 지지율 1위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맹수처럼 밀어 붙이던 2분여에 걸친 장면이었다.

해리스 의원은 바이든 전 부통령이 인종차별주의자였던 두 상원의원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최근 한 것에 대해 "상처입었다(hurtful)"고 말하는가 하면 "(1970년대 유색 인종과 백인 아이들의 통합 교율을 위해 도입됐던) 강제 버스통학 제도에 반대했던 이력이 (당신의) 잘못이란 점을 인정하는가"라고 물어 압박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던 바이든 전 부통령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진 순간이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통학버스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교육부 주도 방식에 반대했던 것"이라며 "(통합에 실패한 지역은) 지역 시의회가 그런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항변했다.

해리스 의원이 이에 대해 "그래서 그것이 연방정부가 개입해야 할 부분이다"며 "왜냐면 국가가 모든 사람들의 시민권을 보존해주지 못할 순간이 있기 때문"이라고 매섭게 받아치자 좌중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이날의 토론 이후, 여론조사기관 파이브서티에이트에 따르면 해리스 전 의원의 지지율은 토론 전 7.9%에서 16.8%로 두 배 넘게 올랐다. 반대로 바이든 전 부통령의 지지율은 38.5%에서 31.0%로 내려왔다.

해리스 의원은 또 토론 방영 이후 24시간 동안 200만달러(23억4300만원) 모금에 성공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해리스 의원은 줄곧 법조인의 길을 걸어온 인물로서 바이든 전 부통령에 비하면 정치인으로서의 경력이 짧다. '강경 투사(tough fighter)'로 이미 정평이 나 있던 미 샌프란시스코 검사장을 거쳐 2011년 최초의 유색인종으로서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 자리에 오르면서 관심이 집중됐다. 2017년,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본인이 자메이카계 아버지와 인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소수 인종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트럼프의 이민정책에 반대하는 데 앞장선다. 특히 불법 이민 아동을 추방하는데 반대한다.

한편 칼럼니스트 미셸 골드버그는 뉴욕타임스에 여성 민주당 예비 대선 후보들의 급부상에 "힐러리 클린턴 패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며 "이제 질문은 이번 승자들이 '여성이 트럼프를 이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한번 더 확신을 줄 수 있을지이다"라고 평가했다.

민주당 경선의 주자들은 이달 30~31일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CNN이 중계하는 2차 TV 토론에 나설 예정이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왼쪽)과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오른쪽)/사진=AFP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왼쪽)과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오른쪽)/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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