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막말·우파 판박이…'영국의 트럼프'에 떨고 있는 EU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2019.06.02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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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人세계IN]보리스 존슨 前 영국 외무장관, 39% 지지율로 차기 보수당 당대표·영국 총리 유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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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막말·우파 판박이…'영국의 트럼프'에 떨고 있는 EU


"보리스 존슨은 유럽연합의 최악의 악몽이다.(Boris Johnson Is the EU’s Worst Nightmare)"

지난 5월24일, 블룸버그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사퇴를 공식 예고한 뒤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외무장관이 후임에 유력 주자로 떠오르고 있는 데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와 더타임스가 함께 858명의 보수당원들을 대상으로 5월10~16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존슨 전 장관에 대한 지지율은 39%로 2위인 도미니크 라브(13%) 전 브렉시트부 장관을 압도적으로 앞섰다.



영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노딜 브렉시트(영국의 합의없는 EU 탈퇴)'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존슨 전 장관의 급부상에 EU가 떨고 있다.

◇대표 강경 브렉시터…"노딜 브렉시트에 대비돼 있어야 한다"=존슨 전 장관은 대표적인 강경 브렉시터다. EU와 완전한 결별을 통해 정치적, 사법적, 경제적 독립을 꿈꾸며 그것이 영국이 부활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는 지난 24일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EU가 제시한 새로운 브렉시트 기한인 10월31일, 탈퇴 합의안에 따르든, 그렇지 않든 EU를 떠나야 한다"며 "좋은 합의를 얻으려면 '노딜'에 대비돼 있어야 하고 일을 해내기 위해 걸어나갈 준비(prepared to walk away)가 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2018년 7월, 외무장관직에서 사퇴한 것도 '소프트 브렉시트'를 주장했던 메이 총리와 마찰을 빚었기 때문이다. 당시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후에도 EU 회원국들과 EU에 머무를 때에 준하는 통상 관계를 유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체커스 계획'을 주장했는데 존슨 전 장관은 이에 대해 "굴욕적"이라고 비난했다.

브렉시트 합의안의 영국 하원 통과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됐던 '백스톱' 조항을 두고 "EU와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앞장 서 주장한 이도 존슨 전 장관이다.


백스톱이란 브렉시트 이후 북아일랜드(영국령)와 아일랜드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혼란을 막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다. 브렉시트 전환기간(2020년 말)까지 북아일랜드를 비롯한 영국 전체가 EU 관세 동맹에 잔류한다는 것인데 보수당을 중심으로 한 영국 의회는 이 조항이 추후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관계 단절에 빌미가 될 수 있다 우려해 왔다.

이같은 존슨의 강경한 태도 때문에 EU 측은 존슨 전 장관의 총리 선출에 대해 부담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는 "지난 4월 EU가 브렉시트 기한을 (10월 말로) 연장할지 말지 논의하는 과정에서 EU 측은 존슨 전 장관이 협상을 방해하는 것을 막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보도했다.

메이 총리가 퇴진을 약속한 다음달 7일이 되면 차기 총리를 위한 경쟁이 본격화해 7월 말에는 차기 총리가 확정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존슨 전 장관은 3년 전에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예기치 않은 혐의를 받고 있어 그 결과에도 관심이 쏠린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캠페인 당시 존슨 전 장관은 브렉시트 촉구를 위해 "영국 국민은 매주 EU에 3억5000만파운드(5258억원)를 바친다"고 외쳤는데 이것이 실제 수치와 달라 국민을 호도했다는 혐의로 사인기소돼 런던 재판에 회부된 것. 사인기소란 검찰이 아닌 피해자 사인이 가해자를 직접 기소해 법원의 판단을 받은 뒤 검찰로 정식 송치할 수 있는 제도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존슨 전 장관은 이에 대해 즉각적인 공식 답변을 내놓지 않았으며 다만 그가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며 변호인단은 "브렉시트 반대자들에 의한 정치적 술수"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AFP/사진=AFP
◇금발도, 막말도, 여성 편력도 비슷…트럼프는 "내 친구 존슨"=브렉시트라는 단편적인 예를 제외하고도 존슨 전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여러가지 면에서 닮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영국 매체 아이뉴스는 "존슨과 트럼프는 둘 다 부유한 배경을 가졌고 금발머리이고 다양한 차원에서 '우파 정책'을 옹호한다"고 평가했다.

실제 존슨 전 장관의 별명은 '영국의 트럼프'이고 트럼프 대통령도 그를 브렉시트를 강하게 밀어 붙여왔다는 측면에서 '훌륭한 총리감'이라 치켜세워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영국을 방문하면서 존슨 전 장관에 대해 "그는 나의 친구"라며 "나에 대해 매우 친절하고 지원적이다"라고 밝혔다.

존슨 전 장관은 1964년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스탠리 존슨은 런던 경제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유럽위원회, 세계은행 등에서 일하기도 했다.

존슨 전 장관 스스로도 영국의 명문이라 할 수 있는 이튼 스쿨,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했다. 중상층이면서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그가 우파적 태도를 지닌 것은 자연스럽다는 평가들도 나온다.

대학 졸업 후 다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한 경력은 그가 인기를 얻는데 도움을 줬다.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고 TV에 출연하거나 책을 쓰면서 대중과 접점을 넓혀왔기 때문이다.

달변인 그는 종종 막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는데 이도 트럼프 대통령과 판박이다.

존슨 전 장관은 영국이 EU에 남아야 한다고 주장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해 "그의 견해는 그가 부분적 케냐인(part kenyan)으로서 선조때부터 내려오는 영국에 대한 혐오(ancestral dislike)에 의해 형성됐을 수 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자신의 칼럼에서 아프리카 흑인 어린이들에 대해 '피카니니(piccaninnies)'란 표현을 쓰기도 했다. 피카니니는 흑인 아이들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단어다.

또 런던 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인 2009년에 데일리 텔레그라프에 주간 칼럼을 써주는 대가로 연 25만파운드(3억7600만원)를 받기로 하자 논란이 일었다. 당시 그는 이 돈을 '닭 사료(chiken fee)'에 빗대기도 했다.

여성 편력으로 종종 도마위에 오르는 것도 트럼프와 비슷하다. 지금까지 두 번의 이혼을 했는데 그 때마다 다른 여성들과의 불륜 행각이 영향을 줬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도 존슨 전 장관이 그동안 런던 사교계 여성, 기자, 미술 평론가, 보좌관 출신 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폭로가 제기되기도 했다.

그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긴 하지만 그는 자신의 확고한 팬층을 기반으로 다년간 하원의원으로 활동했고 런던 시장에는 두 번이나 당선됐으며 외무장관까지 지냈다.

런던시장 재직시절에는 자신의 정책이기도 했던 공공 자전거 활성화에 앞장섰는데 스스로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모습이 종종 카메라에 포착돼 런던 시민들은 공공 자전거를 '보리스'라 부르기도 한다.

/사진=AFP/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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