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보다 더 싫은 '일빠'?

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2019.07.06 06:01
글자크기

일제 불매 운동 확산…일본 문화 소비하는 이들 향한 비난 목소리 높아져

/사진=게티이미지뱅크/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반도체 소재의 수출을 규제하는 경제보복 조처를 단행했다. 이에 뿔난 국내 소비자들은 '일본산 불매운동'으로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고 있다. 온라인에선 일본 기업 제품 리스트, 관련 포스터 등과 함께 일본산 불매운동을 장려하는 글이 급속도로 퍼졌다.

반일 감정이 치솟으며 일본 문화를 좋아하고 소비하는 한국인도 비난의 대상이 됐다. '일본식'을 선호하는 이들은 '일빠(일본 극성팬)' '친일파' '매국노'라고 불리며 집중 공격을 받는 모양새다. 자생적인 친일부역자를 뜻하는 '토착 왜구'라는 말도 이들을 지칭하며 비난하는 표현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반일 감정 확산…이시언 일본 여행 논란에 일본 출신 연예인 퇴출 요구까지



배우 이시언은 최근 SNS(사회연결망서비스)에 일본 여행 인증샷을 올렸다가 '일빠' 논란에 휩싸였다. 이시언은 지난 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고마스 도착. 버스 타고 시작. 생일 기념 여행.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이 생일"이라는 글을 올리며 일본 여행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게시물이 올라온 직후 누리꾼들은 이시언을 향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반일 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시언의 행동이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이었다. 게시물을 두고 누리꾼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지자 이시언은 해당 사진을 삭제하고 "여행 목적이 아닌 지인 부부 초대로 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한 누리꾼은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그게 변명이 안 된다. 세상 돌아가는 흐름 읽고 최소한 분위기 파악 정도는 하고 살자"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한국에서 활동 중인 일본 출신 연예인의 퇴출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룹 '트와이스'의 사나, 모모, 미나와 '아이즈원'의 미야와키 사쿠라, 혼다 히토미, 야부키 나코 등 일본인 멤버들이 주타깃이 됐다.

누리꾼 A씨는 "일본 연예인을 소비하는 것도 식민지 잔재 청산을 막는 '잠재적 공범'이다. 이스라엘에서 인기 있는 독일 연예인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보라. 바로 답 나오는 문제다"고 주장했다.

◇먹는 것부터 입는 것까지…한국 휩쓴 거센 일본풍(風)
유니클로와 무인양품/사진=류원혜 인턴기자유니클로와 무인양품/사진=류원혜 인턴기자
이 같은 흐름은 일본 문화 자체보다 이를 소비하는 이들이 더 문제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에서 일본 문화 대중화 현상이 뚜렷해지자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 최근 경제보복뿐 아니라 일본에 식민지배 당한 아픈 역사가 있고, 그 역사에 대한 청산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문화를 소비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일본 문화 대중화 현상에 대한 우려는 그 근거가 뚜렷하다. 최근 한국에서 일본풍(風)이 거세게 불고 있기 때문. 외식 분야는 일본 문화 대중화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 중 하나다. 일본 음식이 크게 인기를 끌면서 일본어로 된 상품, 식당 등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디저트 시장도 '왜색'이 짙어지고 있다. 모찌(찹쌀떡), 산도(샌드위치) 등 일본식 디저트를 찾는 소비자가 많아지며 이를 판매하는 음식점도 많이 생겨났다. 편의점 업계도 '모찌롤', '타마고 산도' 등 일본식 명칭이 붙은 디저트 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일본어는 인기 해시태그다. 7일 SNS에서 '모찌'를 검색하면 39만개 이상의 게시물이 나온다. '산도'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은 1만여개에 달한다. 이 밖에도 △맛챠(말차·가루녹차) △코히(커피) △케키(케이크) △스테키(스테이크) △앙버터(팥버터빵·あんこ(앙꼬·팥)バター(버터)의 준말) 등도 자주 쓰인다.

국내 의류 시장은 '일본 브랜드 전성시대'다. 일본 기업인 유니클로, 무인양품 등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 2005년 한국에 들어온 유니클로는 진출 10년 만인 2015년 단일 패션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넘겼다. 이후에도 매출은 △2016년 1조1822억원 △2017년 1조2376억원 △2018년 1조3731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무인양품도 국내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무인양품의 한국 매출액은 1378억원으로 2003년 한국 진출 이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일본보다 '일빠'가 더 싫어요"
일본 제품 불매 리스트/사진=온라인 커뮤니티일본 제품 불매 리스트/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일본 문화 대중화 현상에 대해 누리꾼 B씨는 "소비하는 사람이 많으니 유행하는 것이다. 문화가 일상에 스며드는 건 진짜 무서운 일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었을 때도 '문화 통치'를 하지 않았냐. 일본 제품을 소비하는 것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누리꾼 C씨는 "포털 검색창에 '일본' '위안부'만 쳐봐도 안다. 검색 결과만 봐도 화가 나고 인상이 찌푸려지는 게 정상이다. 일본 정부와 일본 문화는 별개라서 불매 운동을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왜 한국인이 나서서 일본을 변호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직장인 정모씨(28)는 "일본도 싫지만 '일빠'가 더 싫다. 매국노, 토착왜구라는 말도 너무 약하다. 이를 대체할 만한 강력한 단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모씨(23)는 "이번 기회에 '일빠'들이 눈치보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일본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문화는 문화일 뿐'.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말하는 걸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고 꼬집었다.

한편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지난 4일 일본 정부의 반도체 핵심 부품 수출 규제 조처에 관해 "보복적인 성격으로 세계무역기구(WTO)의 규범 등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하며 일본이 조처를 철회하도록 외교적 대응 방안을 적극 강구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