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멈춘지 2년, 고리 1호기를 가다

머니투데이 기장(부산)=권혜민 기자 2019.07.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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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시프트, Newclear 시대-②]40년 운전 마치고 국내 원전 최초 '해체' 앞둬…원자로 가동 멈췄으나 사용후핵연료 관리·해체 준비 작업 분주

편집자주 2017년 6월19일 0시. 국내 첫 상용 원자력발전소인 '고리1호기'가 영구정지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1호기를 직접 찾아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청정에너지 시대, 이것이 우리 에너지정책이 추구할 목표"라고 말했다. 국가 에너지정책 패러다임이 원자력(Nuclear)에서 신·재생 등 청정에너지(Newclear)로 40년 만에 첫 전환한 순간이다. 눈 앞에 다가온 'Newclear 에너지 시대' 과제를 진단하고 정책 대안을 모색해본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 전경. /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제공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 전경. /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제공


[르포] 멈춘지 2년, 고리 1호기를 가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 국내 첫 상업용 원전이자 최초의 '영구정지' 원전인 이곳을 지난 3일 찾았다. 가동을 멈춘지 2년이 지났지만, 내부로 들어가는 길은 험난했다. 일주일 전 사전출입허가는 물론 두 차례 신분 확인과 사전 교육을 받고서야 부지 안으로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국가중요시설 '가급'으로 분류되는 만큼 보안이 철저해서다. 휴대전화, 노트북 등 소지품도 모두 반납해야 했다.

짠내 가득한 짙은 해무를 뚫고 부지 안으로 걸음을 옮기자 사무실 건물 벽에 "우리는 원전 역사의 주인공입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입구 바로 앞 파란색 크레인에는 '대한민국 원전의 자존심 고리1발전소'라고 적혀 있었다.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해 지난 40년간 에너지 자립과 '한강의 기적' 실현의 밑거름이 됐던 고리1호기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고리1호기는 2017년 6월19일 자정 영구정지 됐다. 그리고 국내 원전 최초로 해체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 생산한 전력은 15만6922GWh(기가와트시), 부산 전체가 8년간 사용 가능한 양이다. 고리1호기가 공식 퇴역하던 날 문재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신규 원전 백지화와 수명연장 중단을 골자로 한 '에너지전환'을 선포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리1호기는 국내 원전사(史)의 굴곡을 함께 한 셈이다.

고리 원전 1호기의 터빈건물 전경. /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제공고리 원전 1호기의 터빈건물 전경. /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제공
먼저 들어간 곳은 터빈 건물이었다. 원자로에서 발생한 열로 물을 끓여 만든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시설이다. '원전'하면 떠오르는 돔 형태 격납건물은 핵분열이 일어나는 원자로가 있어 일반인 진입이 불가능하다. 건물 입구에 일회용 귀마개가 놓여 있었지만 관계자는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영구정지 이후 주요 시설이 가동을 멈췄기 때문이다. 정상운전 중이라면 터빈이 돌아가는 소리에 옆 사람의 목소리조차 듣기 어렵다고 한다.



멈춰선 원전인 만큼 문을 닫은 공장처럼 어수선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내부는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40년된 시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안전한 가동을 위해 설비를 계속해서 새 것으로 교체해 왔기 때문이다. 검사·정비를 위해 오고가던 인력과 근무자들 간 연락을 위한 호출 횟수가 줄어 활기가 사라진 게 보통 때와 다른 점이다.

이어 들어선 주제어실(MCR)도 상황은 비슷했다. 주제어실은 원전 운전과 관련한 모든 사안을 실시간 감시하고 제어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곳이다. 빼곡히 들어선 계기판에서는 오래된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고리1호기는 설계수명 30년이 만료된 2007년 계속운전 허가를 받아 10년을 더 운영했다. 이후 한 차례 더 수명연장에 대비해 시설을 모두 최신식으로 교체했다.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모든 시설이 거의 새 것과 다름 없고 건설·유지보수 등에 들어간 비용도 상당하다"며 "업계 관계자들은 충분히 더 가동할 수 있는 시설을 영구정지하게 돼 안타까워 한다"고 귀띔했다.


고리 원전 1호기의 주제어실(MCR) 모습. /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제공고리 원전 1호기의 주제어실(MCR) 모습. /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주제어실 벽에 붙은 상황판은 '원자로 출력 0%, 발전기 출력 0㎿(메가와트)'를 표시했다. 계기판에는 비상등이 켜져 있었다. 시스템이 원자로 출력 100%를 정상운전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자로 가동이 멈춘 상황에서도 직원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운전 중단 이후 원자로 안의 핵연료는 모두 제거됐다. 하지만 핵분열을 마치고 남은 폐연료봉인 사용후핵연료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그래서 주제어실도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긴장감 속에 운영되고 있었다. 평소 10~12명이 6조 3교대로 근무하던 인원이 5명 5조로 줄었을 뿐이다.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하고 있는 임시저장시설로 이동했다. 핵심시설인 방사선관리구역에 위치한 만큼 입장이 쉽지 않았다. 우선 낯선 장비 2개를 지급 받았다. 법적선량계(TLD)와 보조선량계(ADR)다. ADR은 방사선 노출이 이뤄졌는지 실시간 측정하는 휴대용 기기다. TLD는 추후 측정을 통해 피폭 여부를 확인한다. 준비구역에서 방호복과 안전모, 전용 신발을 착용했다. 맨살이 노출되지 않도록 긴 장갑과 양말을 신고, 머리카락도 머리캡 속으로 모두 숨겨야 했다. TLD와 ADR을 오른쪽 가슴 주머니에 넣자 준비가 끝났다.

고리 원전 3호기 습식저장시설에 핵분열을 마치고 남은 폐연료봉인 사용후핵연료가 저장돼 있다. /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제공고리 원전 3호기 습식저장시설에 핵분열을 마치고 남은 폐연료봉인 사용후핵연료가 저장돼 있다. /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제공
관계자를 뒤따라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푸른 빛 물이 가득찬 거대한 수조가 나타났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사용후핵연료가 담긴 습식저장시설이다. 수심 12m의 수조에 핵연료 약 480다발이 빼곡히 잠겨 있었다. 사용후핵연료는 열을 냉각하고 방사능 물질이 외부로 유출되는 일을 막기 위해 붕산수가 담긴 습식저장소에서 최소 5년 관리한다. 색이 푸르게 보이는 건 물 속에서 방사선이 일으키는 '체렌코프 효과' 때문이다.

물이 방사선을 차폐하기 때문에 노출되는 방사선 양은 극히 적다. TLD 수치도 '0msV(밀리시버트)'를 가리키고 있었다. 동행한 신상구 고리1발전소 해체준비팀 차장은 "습식저장시설이 있는 공간에서 5시간 동안 있을 경우 노출되는 방사선 양은 병원 엑스레이를 한 번 찍는 수준과 같다"고 설명했다.

수조에 보관된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는 고리1호기 해체 작업에 있어 중요한 과제다. 원전 내부에 저장된 사용후핵연료를 모두 반출해야 본격적으로 원자로를 절단·제염하고 건물과 시설을 철거하는 공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충분히 식은 핵연료는 물 밖으로 꺼내 발전소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에서 임시로 보관하고, 추후 원자력환경공단이 마련할 중간저장시설·영구처분시설 등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문제는 이들 시설 조성 작업이 지지부진하다는 점이다. 2024년 고리본부 습식저장시설 포화에 대비해 추진 중인 건식저장시설 건설도 아직 상세 계획이 없다.

신 차장은 "건식저장시설 건설을 포함해 사용후핵연료, 해체폐기물을 처리·보관할 시설을 구축하는 등 본격 해체 전 하나하나 해야 할 일이 많다"며 "첫 해체 작업이 안전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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