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못될 줄은…" '강제징용 2심 승소'에도 가슴아픈 이유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2019.06.2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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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항소심 늘어지지 않았다면 생존하신 상태에서 젊은 날 배상 받았을 텐데"

지난 4월29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지방변호사회관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광주전남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전범기업 대상 1차 집단소송 기자회견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광주전남지부와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관계자, 소송에 참여한 원고들이 회견문 낭독을 마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스1지난 4월29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지방변호사회관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광주전남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전범기업 대상 1차 집단소송 기자회견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광주전남지부와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관계자, 소송에 참여한 원고들이 회견문 낭독을 마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스1


"기업은 왜 아베 총리 뒤에 숨어서 나서지 않는지…세계로 뻗어가는 기업이 이렇게 못됐을 줄은 몰랐어요."(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이 대표는 서울고법에 3년 넘게 계류돼 있던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들고 이렇게 밝혔다. 이 대표는 20년 넘게 진행된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을 이끌어온 인물이다.



판결 후 이 대표는 "강제동원 문제 갖고 반성은커녕 (피해자들이) 다 돌아가신 시점에 그걸 정치적으로 이용해먹으려는 건 파렴치하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나 아베 총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며 "깊이 있는 기사를 써달라"고 취재진에 당부했다.

이 대표와 함께 소송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재성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이번 승소 판결을 보지 못하고 눈감은 점에 대해 "가슴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월 이상주씨가 94세의 나이로 별세한 것을 언급하면서 "항소심이 3년7개월이나 늘어지지 않았다면 생존하신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을 것이고 젊은 날에 대해 배상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임 변호사는 "(일본 전범기업들이) 판결에 대해 책임있게 답변하고 어떻게 (배상 책임을) 이행할지 얘기해야 할 것"이라며 "피해자 7명 모두 젊은 나이에 끌려가 음식과 월급을 받지 못한 채 노예 같은 삶을 살았다. (전범 기업들과) 피해자들과의 협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한일 양국의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과거 일제는 침략전쟁 목적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인적·물적 자원을 수탈했다. 특히 좋은 조건으로 일을 시켜줄 것처럼 우리 국민들을 속여 광산·토건·군수산업 현장으로 보낸 뒤 착취했다. 이번 사건 당사자인 신일철주금의 전신 일본제철과 후지코시, 미쓰비시 등 전범기업들이 강제징용에 관여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생활은 비참했다. 연명하기도 힘든 식사를 제공받았고, 다쳐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다. 말을 듣지 않거나 도망을 치려 하는 피해자들은 폭행당하고 형무소로 끌려갔다. 일제와 전범기업들은 피해자들에게 턱없이 낮은 임금을 책정했다, 이마저도 몰래 빼돌려 전쟁자금으로 사용하려 했다. 이런 식으로 최소 300만명이 일제에 착취당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원폭 투하 후 일본 항복을 받아낸 점령군 총사령부는 광복 이듬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임금을 국책은행에 공탁해놓을 것을 일본 정부에 지시했다. 2009년 일본 정부가 일본 의회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액면가 기준으로 2억1500만엔이 일본에 보관됐다고 한다. 현재 가치로 따지면 6조원에 이르는 액수라고 한다. 군인·군속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몫도 액면가로 9100만엔이 보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후 단절됐던 한일 외교관계는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을 맺으면서 정상화됐다. 이 조약에 문제의 '한일 청구권 협정'이 포함돼 있었고, 협정에 '한일 양국 간에 국가는 물론 국민의 재산, 권리, 청구권이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내용이 있었다. 일본은 이 협정을 근거로 우리 국민들에 대한 전후 배상은 이미 끝난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임금과 배상금 지급을 거부해왔다.
"이렇게 못될 줄은…" '강제징용 2심 승소'에도 가슴아픈 이유
일본제철 강제징용 피해자인 여운택씨 등은 이 대표와 함께 1997년 일본 법원에 임금과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지만 2003년 패소가 확정됐다. 이들은 2005년 우리 법원에 다시 소송을 냈고, 2012년 5월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취지로 사건을 2심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사건 당사자인 곽씨 등은 대법원이 여씨 등의 손을 들어주는 것을 보고 소송에 나서게 됐다고 한다.

여씨 사건에서 서울고법은 여씨 등이 1억원씩 배상받아야 한다고 판결했고, 공은 다시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대법원은 5년 넘도록 판결을 내지 않았고, 곽씨 소송도 기약없이 미뤄지기만 했다. 그동안 소송에 나선 곽씨 등 피해자들은 모두 유명을 달리해 유족들이 소송을 이어나갔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이 돼서야 전원합의체를 통해 한일청구권 협정과 상관없이 강제징용 피해자 개인의 배상 청구권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검찰은 양승태 사법부가 박근혜정부와 뒷거래를 하느라 5년이나 판결을 끌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판결 직후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 537명이 손해배상 소송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일본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반발했고 한일 외교관계는 냉각된 상태다.

강제징용 외에도 근로정신대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사건 소송이 진행 중이다. 근로정신대는 일본 유학을 시켜준다는 등 거짓말에 속아 일본 전쟁산업에 징용된 피해자들로, 성 착취를 당한 일본군 위안부와 성격이 다르다.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미쓰비시가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에게 1억~1억20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이 사건에서도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은 한일 청구권 협정과 상관없이 유효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현재 후지코시를 상대로 한 근로정신대 손해배상 소송도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는 우리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과 일본을 상대로 한 소송 두 갈래로 나눠 진행 중이다. 우리 정부에 대해 피해자들은 2015년 12월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는 합의를 일본과 멋대로 맺은 책임을 묻고 있다. 1심 재판부는 합의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불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은 소 제기 후 3년이 지나 최근 재개됐다. 일본 정부가 주권 침해를 이유로 소장 접수를 거부해왔기 때문이다. 일단 재판부는 소송 서류를 법원 홈페이지에 일정기간 게시하는 '공시송달'로 서류 전달을 갈음하고 재판을 시작하기로 했다.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 배상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포괄적으로 마무리된 일이며,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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